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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 정연복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먼 길도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황소처럼


유유히 바다로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넓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저 구름처럼


꾸물꾸물 제 갈 길을 가는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담벼락을 오르는

담쟁이처럼


일 년에 단 하나의 나이테를 만드는

나무처럼


초침과 분침에게 시치미 떼고

제 속도로 살아가는 시침(時針)처럼


느리게

느리게


느리게 / 정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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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먼저 달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머뭇거리는 마음에겐

천천히 뒤따라오라 이야기하며

마음은 저만치 놔두고

몸부터 달려가던

뜨거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달리던 몸은 시간보다 천천히 움직이는데

이젠 마음이 달려갑니다.

굼뜬 몸은 저만치 두고

마음만 서둘러 달려갑니다.


다 그런가 봅니다.

몸이 달릴 땐 마음이 머뭇거리고

이젠 달려볼까 마음먹으면

여기저기 덜그럭거리며 몸이 주춤댑니다.


시간과 세월이 어긋나는 어느 날에,

정연복 님의 '느리게'라는 시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황소처럼 강물처럼,

구름처럼 달팽이처럼,

일 년에 한 줄 나이테처럼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살아야 함을

이제야 생각해 봅니다.


거친 숨 몰아쉬며 달리다 달리다가

삐걱이는 세월 마주 보며,

이제야 한 마디 떠올립니다

'느리게 느리게'


정작 그 이치를 깨달을 즈음엔,

하루의 시침은 빨리도 달려갑니다.


벌써 시간이 이리되었네요.

하지만 오늘은 잠시 손을 놓고,

느리게 느리게 하루를 보내 보자고요.


세상 모든 이들의 여유로운 시간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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