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창의적인 판매 방식일 수도
GRANDMA
제가 고등학생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지내게 되셨습니다. 익산에 있는 곳이었는데, 틈틈이 저는 그곳을 홀로 방문했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요청이었으나,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제게 그만큼 쉼표 같은 순간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롯이 저만의 소중한 추억이네요.
할머니께 대략 도착 시간을 말씀드리면, 그 도착 예정 시간 1시간 전부터 요양원 바깥으로 나오셔서 서성이고 계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도착하면 요양원에 계신 다른 어르신들께 손자가 왔다며 우리 할머니 특유의 덤덤하지만 그래도 자랑스러운 듯한 말투로 저를 소개하시곤 하셨죠. 연신 고개를 숙여 어르신들께 인사드리고선 할머니의 호실로 들어가면, 냉장고엔 저를 위해 일주일 간 드시지 않고 모아두신 요구르트, 요거트 등과 같은 부식들이 가득했습니다. '아이고, 제때제때 챙겨 드시지..' 생각이 들면서도 이를 모아둔 할머니의 성의를 위해 저는 최대한 허겁지겁 먹어댔던 기억이 납니다.
요양원은 일주일에 한 번씩 어르신들을 모시고 근처 대형마트를 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했습니다. 할머니와 바람도 쐴 겸 필요하신 것도 구매할 겸 같이 다녀왔는데, 그 마트 1층 화장품 코너에서 제 인생 첫 스킨과 로션(세트였어요)을 사주셨던 분이 다름 아닌 할머니였습니다. 그날 밤 씻고 그 아빠 스킨 로션 향을 콧 속 가득히 채워 넣으면서, 어쩌면 제 자신이 제법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을 겁니다.
할머니는 꽤 일찍 잠이 드셨는데, 저는 할머니 침대 맡에 이불 깔고 누워서는 할머니 주무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끔 잠꼬대를 아주 심하게 하실 때면 '내가 할머니랑 대화하고 있는 것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러다가 자세히 할머니를 들여다보면 곤히 주무시고 계셔서 혼자 허허하고 허탈해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제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면, 할머니는 얼른 가야 속이 후련하다며 떠날 채비하는 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익산역까지 택시를 탔던가 버스를 탔던가. 아무튼 나오지 마시라 그리 말씀드려도 할머니는 기어이 나오셔서 배웅해 주셨는데, 그 배웅엔 후련함은커녕 아쉬움만 묻어나 있음이 분명한데도 할머니는 그 순간까지 "얼른 가라"라는 말씀만 연신 하셨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신 지 어엿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요양원 입구 쪽에 서계시던 할머니 모습이 제 머릿속에 선하네요.
MAMA
MAMA 때 지드래곤의 무대는 참 대단했습니다. 는 농담이고요. 이번엔 제 어머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초등학생 때 제 글씨는 아주 깨알처럼 작았습니다. 제 기억에도 공책에 옹졸한 글씨로 이것저것 무언가를 많이 써 내려갔던 기억이 나긴 해요. 그렇지만 30대가 된 지금.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뭐 유난스럽게 심각해야 할 일인가 싶은데요. 아무튼 그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우리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꽤나 심각하게 말씀하신 모양이에요. 물론 소심하고 내성적인 제 성격이 글씨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 여기셨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그런 담임선생님의 지도 편달을 받으신 어머니는 날 잡아 회초리를 들고 저에게 글씨 연습을 시키셨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왜 그러지?' 도무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던 저로서는 어머니의 다그침에 서럽게 울면서 한 글자 한 글자 한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더 크게 크게 쓰라고! 이 녀석아!" 닭똥 같은 눈물이 공책 위를 물들수록 제 글씨는 조금씩 조금씩 커져갔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다그침 덕분에 달필까지는 아니더래도 전 단정하고 큼지막한 글씨를 쓰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 서기(요즘은 서기란 역할이 있으려나 싶네요)도 여러 차례 했을 정도로요. 그런데 그때 혼났던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또박또박 글씨를 쓸 때마다 손에 필요 이상으로 힘을 많이 주는 편입니다. 가령 편지 한 장 정도 쓰고 나면 손이 아주 저려 올 정도니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신기한 것은 어머니와 제 글씨는 아주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딱히 의도된 바가 아니었는데 그리 되어 썩 신기합니다. 아버지 글씨를 닮았을 수도 있는데, 저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누가 봐도 엄마 아들 글씨를 지니게 되었어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사사로이 참 많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DAUGHTER
(이 글이 성 관념에 있어 편견으로 똘똘 뭉친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딸 이야기입니다. 미래의 제 아들에겐 꽤 섭섭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저는 늘 '딸'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딸바보' 아빠들은 만연하지만 '아들바보' 아빠라는 말은 좀 어색하듯. 딸 자체가 아빠들에게 더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지기 쉽기 때문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딸이 갖고픈 가장 큰 이유는 세월이 흐를수록 딸은 MAMA에게 있어 '한 세대 아래' 란 느낌보다는 동등한 친구가 되어 간다는 점이 참 좋아 보였어요. 물론 세상 모든 엄마 딸들이 그런다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엄마 아들에 비해서 높지 않겠습니까.
제 동생만 봐도 그렇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있어서 제가 어머니랑 가져가는 관계보단 제 동생이 어머니와 가져가는 관계가 훨씬 편해 보이고 좋더라고요. 시시콜콜 하루 있었던 일도 이래저래 이야기하고. 어머니 눈썹도 다듬어주기도 하며. 쇼핑할 때 서로의 검수자가 되기도 하고. 물론 때론 투닥거리기도 하지만요.
아무튼 SNS에 임신 후 성별이 아들이란 사실에 조금은 속상해하는 아빠들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이던데, 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GRANDMA MAMA DAUGHTER
GRANDMA MAMA DAUGHTER
브랜드 소개를 참 개인적인 이야기로 구구절절했죠. 그렇지만 누구나 각자만의 할머니, 엄마, 딸(아들) 이야기를 지니고 있을 겁니다. 매우 행복한 기억일 수도. 가슴 사무치게 아픈 기억일 수도 있겠죠.
저는 이 일본 브랜드 명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취지가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대를 가르고 가른 세대마다 추구하는 패션 또한 가르기 쉬운데, 그렇지 아니하고 할머니 엄마 딸 삼대가 착용해도 어색함이 없을 아이템들을 만든다고 하니까요. 세대를 아우르는 일은 꽤나 어렵고도 숭고한 일이죠. 제가 일전에 언급했던 '폴로 랄프로렌(POLO RALPH LAUREN)' 생각도 났습니다. 폴로 랄프로렌은 청소년이 입든 청장년이 입든 노년이 입든 크게 어색함이 없는 거의 유일무이한 브랜드이니까요. 브랜드 명을 통해 그런 미션을 표명하고 있는 바가 개인적으로 참 좋았어요.
태그모어에 이 GRANDMA MAMA DAUGHTER 재킷이 입고되었습니다. 과하지 않는 오버핏으로 정말 누구나 입기 좋은 재킷입니다. 실내 일정이 있어서 코트나 패딩 말고 좀 더 간출한 보온성이 필요할 때, 딱 안성맞춤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이런 그린 색감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위에 레인보우 스프링클을 뿌린 듯한 디테일이 어여쁜 재킷입니다.
문득 'GRANDPA PAPA SON'이란 남성 브랜드가 나와도 꽤 재미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부디 이런 취지를 지닌 브랜드가 세상에 많아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