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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03. 2017

엄마에게 보낸 첫 번째 메시지

지금 메시지 하나만 보내줘

어느 바쁜 하루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엄마에게서 자꾸 전화가 왔다.


아침에 한 번.

"딸, 일어났어?"

"응. 이제 준비하고 나가려고."


점심에 한 번.

"딸, 밥 먹었어?"

"아직. 이따가 먹으려고."


한 시간쯤 지나서 한 번.

"딸, 뭐해?"

"일해. 엄마, 내가 이따가 전화할게."


그리고 10분 뒤에 또 한 번.

"딸, 엄마 지금 시내 나왔는데..."

"엄마! 나 바빠. 이따가 전화한다니깐!"


결국 난 짜증을 내버렸고. 엄마는 '우리 딸 많이 바쁜가 보네. 미안.' 소곤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인상 팍, 한숨 폭.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30분쯤 지났을까. 엄마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울리는 휴대폰. 액정 위에 뜬 ‘엄마’라는 두 글자를 보며 나는 잠시 망설였다. 받을까 말까.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멀뚱히 쳐다만 보다가 한숨 한 번 내뱉고 전화를 받았다.


"엄마, 왜?"

"바쁜데 미안. 있잖아. 엄마 방금 휴대폰 바꿨어."


"뭐? 엄마 혼자서? 서울 올라오면 내가 바꿔 준댔잖아."

"아니... 휴대폰 액정이 다 깨진 데다가 통화할 때도 자꾸 끊기고. 전화 오는 사람들이 불편하대잖아. 그래서 아까 시내 가서 휴대폰 바꿨어. 얘기할랬는데 너 바쁜 거 같아서. 괜찮아. 엄마도 혼자서 이런 거 할 수 있어."


아. 그제야 지난 설 연휴 엄마를 만났을 때, 휴대폰 액정이 깨져 있었던 게 생각났다. 엄마 유릿가루 위험해. 나는 금이 간 액정 위에 넓적한 투명 테이프를 붙여준 게 전부였다. 그러다 또 깨달았다. 손가락을 꼽아 세어보니, 엄마의 휴대폰은 이미 4년이나 훌쩍 넘은 고물이었다는 걸.


나의 시간은 바쁘게 흘렀지만, 엄마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엄마, 바빠 바빠. 하면서 미루고 쌓인 시간이 알고 보니 4년이었다. 그제야 내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아니, 기어들어갔다.


"뭐로 바꿨어? 좋은 거로 바꿨어?"

"제일 싼 거로. 요새 뭐라고 하더라. 보급형? 그런 게 있대. 그래서 그걸로 바꿨어."


"이왕이면 좋은 걸로 바꾸지..."

"통화만 잘 되면 됐지 뭐. 그런데 딸..."


엄마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지금 많이 바빠?"

"아냐. 괜찮아."


"그럼 엄마 부탁하나만."

"응. 뭔데?"


"엄마가 휴대폰을 바꾸면서 문자 메시지 500개 저장된 걸 다 지웠어. 문자는 옮길 수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휴대폰에 메시지가 하나도 없어. 네 문자도 지워진 거 있지. 다 저장해 놨었는데... 그러니까 지금 메시지 하나만 보내줘. '사랑해'라고."


"부탁이 겨우 그거야?"

"메시지가 하나도 없으니까 엄마 너무 쓸쓸해. 바빠도 지금 바로 '사랑해' 메시지 하나만 보내줘. 꼭! 알았지? 그럼 얼른 일해. 엄마 끊을게."


모바일 앱 메신저는 내용을 저장할 수 없다고 문자 메시지만 사용하던 엄마였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모두 저장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통화를 마치고, 나는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진지하게 보내기가 영 쑥스러워 장난스러운 말투로.


엄마 사랑해! 뿅뿅!


그동안 엄마와 주고받은 메시지들을 읽어 보았다. 메시지보다 엄마 번호가 찍힌 캐치콜 알림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보이는 엄마의 메시지들.


일하고 있니. 바쁜데 고마워 딸. 고생하렴. 오냐 딸. 그래 딸. 어서 씻고 자렴. 사랑해 딸.


마음이 얼얼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다. 엄마 새 휴대폰의 첫 번째 메시지는 '엄마 사랑해! 뿅뿅!'일 테니까.



다시 일을 해야 할 시간.

'딸아 딸아 개딸아. 더도 덜도 말고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서 키워봐라. 나쁜 기지배.' 나는 제 머리통을 쥐어박고선 키보드를 두드렸다. 자꾸만 눈자위가 시큰거렸다. 모니터 글씨들이 꼬불꼬불 흐려졌다.


입을 앙다물고선 생각했다.

정말 이따구로 못난 딸이지만, 그래도 엄마를 사랑하는 나의 메시지가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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