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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계학 서설 II Dec 27. 2024

#9 그땐 그랬다(1)-만타 사건

CH II. 한없이 좋고 마냥 즐거운 오픈워터(OpenWater) 시절

I Still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만타-바다의 코끼리는 착한 우주선이다

  가장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수중생물 하나를 선택하라고 묻는다면 두말없이 나는 '만타'를 꼽는다.


  바다의 수호신, 그 이름 만타

  플랑크톤을 먹고사는 식물성이라 성격은 유순하면서도 강인하고 힘찬 모습 역시 함께 지니고 있다. 수중 이동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직각, 대각선, 수직, 수평 등 어느 방향, 어떤 각도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주선과 닮았다.


  다이버라면 누구나 만타를 처음 만난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바다의 수호신이다. 만타는 얍(YAPP)과 같은 먼바다, 넓은 대양에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그랬다.


  한동안 해양보호지역으로 묶여 출입이 금지되었던 남해 백도는 20여 년 전만 해도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였다. 그곳 그날, 이미 안전감압을 마치고 섬으로 나와있던 나만 제외하고 남은 11명의 다이버는 출수 도중 수중에서 만타를 보았다.


  물밖에선 만타 겉표면에 붙어있던 빨판상어의 지느러미만 수면 위로 약간 보였다.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만타다!


  남해 백도에서 그 여름 무슨 일이?

  출수를 위해 바다 수면에 있던 몇몇 다이버조차 공기가 얼마 남아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1분이었는지 10분이었는지 아니면 그 보다 더 시간이 흘렀는지는 기억에 없다. 오로지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장면과 소리는 '만타의 죽음'이었다.


  왜? 그땐 그랬을까? 많은 설명과 해명이 이어졌지만 나에겐 지금도 풀 수 없는 의문이고 숙제로 남아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만타는 물론 관련 다이버들조차 '다이빙계'에서 영구제명이란 '죽음'의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날 죄인들인 물뽕 사부를 비롯한 이파리님을 중심으로 부산, 경남지역 다이버들만의 다이빙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이 모임을 만타방이라 불렀고 직접 행위 관련자는 아니지만 '증인', 참고인 자격으로 나도 그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만타방 모임은 지속되고 있다.


   이젠 모임의 이름을 바꿀 때도 된 것 같다. '사죄와 반성'의 의미를 담아 '만사보모(만타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모임)'라고 하면 어떨까? 방장님의 승인을 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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