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대도, 아무렇지 않지
무슨 글을 어떻게 처음 써야 하나 참 고민이 많았어.
그런 날 있잖아 왜, 펜을 잡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감도 안 오고,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답답하게 뭘 써야 할 것만 같은 날.
딱 오늘이 그랬어.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그냥 내 얘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
3년 전, 지금처럼 후덥지근하지 않았을 때
‘아 추워’라고 생각이 들 즈음에
결코 어리지 않았음에도 어리다고 느끼고 싶었을 때쯤, 나는 좋지 않은 일을 하나 했어.
나쁜 짓이었지만, 나는 그때 일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어요’ 정도였으려나.
그때의 나는 많이 외로웠고, 사무치게 연애를 해야 하는 방식도 그리고 연애라는 걸 하면 상대방에게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이 좀 있었나 봐.
물론 만나던 사람들 마다 조금씩 달랐던 건 사실이지만, 그때 만나던 그놈은 그랬던 거 같아.
처음엔 그놈이 좋아서 만나야겠다 생각하고 들이댄 것도 아니었고, 단지 낯선 곳에서 뭐라도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였는데 어떤 여자에게도 안 넘어갔다길래 아 얼마나 미친놈이길래 그럴까 궁금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만났었지 그놈을 소유욕 강하고, 심지어는 내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데, 본인이 본 친구들이 아니면 모든 내 머릿속에 허구고 거짓으로 생각해버리는 놈을 말이야, 진짜 미친놈이 구나 하면서 만났는데 만나다 보니 그 미친놈이 좋은 거지,
딱 한 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관계가 있었고, 그 관계들 중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을 때 이미 나는 늦었다는 생각과 함께 병원에서 나오고 있었어.
물어볼 건 아니었지만 겁이 났었거든,
왜냐면 준비도 안되어 있었고, 내 멋대로 살았던 내 인생에 대한 죄책감을 심어주기 위한 지뢰 같은 건가 이대로 인생이 끝나는 건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뱅뱅 돌아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거든.
근데, 말 한번 심플하게 하더라. ‘지워야지 몇 주래?’ 뭔가 둔기로 뒤통수를 한대 기가 막히게 세게 맞은 기분이었지만 뭐 그러려니 했어. 수술대 앞에 가기 전까지는 막상 가니까 참 긴장이 되더라. 솔직히 한 시간도 안돼서 그 자리를 나오는데 심지어 걸어서 세상 서러움의 눈물과 아픔과 미안함이 쏟아져서 한동안 엄마도 못 볼 만큼 그렇게 울었던 거 같아.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놈하고는 마무리를 지었지.
번호는 있었지만 받지 않을 요량으로 지우지 않았었고, 나도 인간인지라 그냥 잊고 살았어.
그리고 나선 나는 진짜 그냥 그 동네에 있기 싫었거든 그래서 멀리 떠나온 어느 날 심야영화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울리는 거야. 그놈이었어. 어이가 없어서 마지막 부분은 영화에 집중도 못하고, 겨우 끝이 나서 전화를 했는데, 내가 있는 쪽으로 놀러을 오겠다 뭐 이런 내용이어서 아 그렇구나 하고 시답지 않은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를 묻고 끊었지. 그랬더니 카톡이 오더라. 왜 그렇게 반응이 싸늘하냐고. 한참을 어이가 없어서 진짜 미친 듯이 웃었어.
이제 와서 연락을 했는데, 연락을 한놈이 단지 놀러 오겠다는 말을 하고 왜 그렇게 반응이 싸늘하냐는 걸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그냥 무슨 말을 하냐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리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 미안하지만 네가 찾고 있는 그 가련하고 애절했고 너만 바라보고 너만 좋아하던 그런 애는 없다고, 근데 카톡을 막 쓰다가 에라이 하고 그냥 보내지 않았어.
이유야 이제 와서 이랬네 저랬네 하기도 솔직히 짜증이 났었지만, 어이가 없다는 게 가장 컸어.
내가 뭐 때문에 저런 놈을 만났을까 보다는 아 정말 너 주변에는 괜찮은 여자가 없어서 과거에 만났던 나한테 까지 연락을 하는구나 무슨 일이 있었던, 그건 상관없이. 정말 간사하구나라고 생각했어.
물론,
지금의 나도 참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너도 그냥 인간인데 하고 포기하게 되더라.
그냥 뭐라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주저리주저리 뭘 많이 쓴 거 같아.
그냥 나는 그랬어. 내가 잘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아, 하지만 참 뭐라도 쓰고 싶었는데,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줄 나도 몰랐네,
그래,
오늘도 내일도 더 살 거야. 그리고 인간이어서 간사하지만 그렇대도 아무렇지 않게 살겠지.
그냥, 나는 그런 날에 그런 나에 만족하고 살기로 했어.
안녕:)
*2018년 글이야
오랜만에 찾아서 다시 올려보는 것 같아
다른 좋은 글을 써서 찾아올게
2025년의 seiren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