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히 싸우고 있었다.
육지의 바다에서 온 ‘그’를 보내고, 나는 본격적으로 내가 가진 병과 싸우면서, 병원생활에 적응해야만 했어.
하루가 지나면 내 앞 침상에 있던 사람이, 또 하루가 지나면 내 옆 침상에 있던 사람이,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침상에 있던 사람이 요란한 기계소리와 함께 우르르 달려오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오고 한참이 지나면 꼭 사망선고가 들려왔어.
무서웠지 나는 앞도 옆도 볼 수 없었지만 정확하게 들려왔으니 말이야.
혹시나 저 무서운 기계소리와 우르르 달려오는 치료진들이 나에게 올까 봐. 그리고 내가 결국은 이 차가운 계절에 잊힐까 봐.
하루에 두 번 있는 면회시간에 (코로나 바로 직전이어서 운 좋게 하루에 두 번이나 면회를 할 수가 있었어.) ‘힘내야 해’ 하는 엄마와 아빠의 응원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의 기운 덕분에 다시 숨 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무 어렵게 살았잖아. 억울했어.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힘을 내보기로 했어.
그렇게 꼬박 한 달이 지나고 “이제 병실 옮기실 거예요”라는 말에 나는 너무 행복했지. 중환자실 마지막날 코에 있던 콧줄을 빼는 괴로움을 남긴 채(물론 중환자실에서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여기저기 바늘이 있었기에 그리고 턱을 벌릴 수 없어서 콧줄을 끼고 그쪽으로 영양분을 받아야만 했어) 병실을 옮길 수 있었지.
현실은 내 상상과 달랐지만 말이야.
일반병실으로 갈 줄 알았던 나에게 보여진건 “준”중환자실이었어.
뭐지.. 신경외과의 세계는 이런 건가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울먹울먹 한 표정을 한 엄마 그리고 아빠 이런 모습을 보이기에 너무 미안했던 동생이 날 보고 있었어.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지. 사실 엄마에게 정말 너무나도 미안했어. 쓰러지기 전 나는 전화 한 통을 했었어. 앞이 까맣게 하나도 안 보이고 정신은 아득해져 가는데, 앞에 보이는 건 엄마 얼굴뿐이었거든.
더듬더듬 핸드폰을 붙잡고 겨우겨우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난 가장 큰 불효를 하고 말았지.(덕분에 지금도 화가 나면 엄마는 이 이야기를 하곤 해)
“엄마… 나 죽을 것 같아.. 숨이 안 쉬어져.. 너무 어지럽고 눈앞도 안 보여.. 어떻게 해야 해?” 하면서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는데, 정말 단호하게 엄마는 “내가 지금 가려면 너 진짜 큰일 나. 잊어버리면 안 돼 지금 전화를 무조건 끊고, 119를 눌러 그리고 지금 네 상태 그리고 네가 어떤 수술을 했었는지 무조건 말하고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해 달라고 말해야 해. 알았지? 절대정신 잃지 말고 지금 엄마랑 전화를 끊고 무조건 119에 전화를 해야 해 알았어? 대답해!!!!!!”
나는 겨우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대답을 했어.
그리고 119에 전화를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는 기억이 나지 않았어.
하지만, 엄마의 말에 힘을 얻어서 인지 나는 정말 놀랍도록 정확하게 내 질병이 어떤 병인지, 내가 누구에게 수술을 받았는지 그래서 내 상태가 어떻고 그러니 나를 이 병이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을 해 달라고 이야기를 했더라고.(이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빠가 너무 감사한 마음에 나를 이송해 준 119 대원님을 찾아갔었고, 그때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라서 이야기를 해줬어. 참 운이 좋았지 뭐야)
어찌 됐든, 그 ‘준’중 환지실로 옮겨진 나를 맞이한 건, 오랜만에 보는 ‘거울’이었고, 2009년 이후 또다시 보게 된 내 모습에 너무 충격이라 한 동안 충격이었어.
물론 ‘뇌’ 수술이었으니 머리는 박박 밀려있었고, 밀려진 머리보다 더 충격이었던 건 또다시 두피 안쪽으로 연결된 피통…
실시간으로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데, 눈을 옆으로 보면 그게 보인다는 게 제일 충격이었는데, 그 모습을 내가 또 하고 있더라고.
절대, 다신, 마주치지 말자 했던 모습이었는데, 거울로 직접 그 모습을 보고 나니 거울이 정말 싫어지더라. 어차피 일어나지도 못하고, 턱도 다 벌리지 못해서 입술 사이로 빨대를 밀어 넣어 영양죽밖에 먹지 못하니까 난 그냥 거울을 보지 않기로 했어.
후회를 해도 벌어진 일이었고, 그나마 다행인 건 육지의 바다를 떠나와 내가 본가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본가 근처에서 쓰러져 살 수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신이 그냥 더 살라고 날 도와주셨구나 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내가 쓰러졌었고,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어.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그리고 이렇게 약해진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컸어. 그건 약해진 모습이 아닌데 말야. (그래도 코에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는 모습은 보여주기가 좀 그렇긴 했어. 찍어놓은 사진도 있지만 잊지 말아야지 하고 찍어놓았을 뿐이니까)
12월 24일, 12월 26일 총 세 번의 머리를 열었던 나에게 화도 나고 후회도 되고, 그냥 익숙해지지 않는 내 모습에 나는 서러웠던 것 같아.
글쎄, 글을 쓰다 보니 그때의 내 생각이 나서 울컥하는데,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 그리고 난 다시 앞으로 걸어가고 있어.
그래도 오늘은 좀 줄일게.
다음엔 좀 더 행복한 이야기로 올게. 오늘까지만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쓰고 싶거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는 몰랐을 테니 말야.
그 들에게 약해 보이긴 싫었거든. 그리고 아픈 이야기를 쓰면 괜스레 계속 수술부위가 따끔따끔한 느낌이야.
다음 편엔 지금의 ‘나’로 이 기억을 풀어놓을 수 있던 이유를 가지고 올게!
오늘도 읽어줘서 고마워:) 내 친구들
라이킷과 후원 항상 감사합니다!
seiren y.
202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