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내가 살았던 세상이라고??
시리도록 파아랗고, 살을 파고드는 추위가 지나고, 한참 빨간색이 잘 어울리는 계절이 오고 있던, 어느 중간즈음 나는 그토록 원하던 ‘퇴원’을 하게 됐어.
진짜 병원에 있는 6개월 내내 생각했어.
저 밖으로 ‘걸어서’ 내가 ‘나’였던 상태로 나갈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집’이라는 ‘공간‘에 다시 갈 수 있을까??라고.
왜냐하면, ‘준’ 중환자실에서의 한 달 그리고 반.
나는 산소호흡기와 멀어져야 했고, 피통을 제거한 공간을 꿰매어야 했고, 침대에서 내 의지로 내려가는 연습을 해야 했고, 가끔이지만 갑작스럽게 입 밖으로 말을 할 수 없고 ‘어버버버’ 거리면서 말문이 막히는 현상을 적응해야 했거든.
그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두 가지.
하나. 내 발로 딛고 일어서고 걷기
둘. 말을 하다가 정말 아무 이유 없이 턱턱 말문이 막히는 현상을 적응하고 기록해서 간호사 선생님께 전달하기.
분명 속으로는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짐승처럼 ‘어어어어어’ 밖에 나오지 않아서 눈물을 흘리기를 수백 번.
내 발로 딛고 서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를 생각하며, 일어나는 연습을 하다 주저앉아 울기를 수백 번.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넘어지고 주저앉아 울기를 수백 번.
정말 수없이 연습하고 하루에 환자복을 세 번이나 갈아입을 만큼 땀이 나도록 반복해서 꽤나 먼 거리(라고 해도 200m−300m였지만)를 걷게 되니까 드디어 ‘일반병동’으로 갈 수 있었어.
‘준’ 중환자실에서는 없었던 밝은 햇빛 그리고 기계음 없이 들려오는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 무엇 보다 영양죽이 아니라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참 감사하더라.
다행히 운 좋게 창가자리를 배정받았고, 그렇게 나는 창 밖의 지나가는 계절을 보면서 파아랗게 시리던 병원 생활을 조금이나마 괜찮게 보낸 것 같아.
사실 어린 시절 잔병치례가 많았고, 중학교 입학식 때도 맹장염으로 중간에 실려나갔을 만큼 입, 퇴원을 자주 했었던 나지만, 이렇게까지 길게 입원했던 건 처음이고, 너무나도 다행(?) 히 코로나19가 퍼지기 직전이라 가족들과도 함께 있을 수 있었어.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대망의 ‘퇴원의 날’
생각보다 회복속도가 빨랐다고는 하지만, 내가 병원 밖을 나가서 지켜야 할 주의 사항을 약 58000개 정고 듣고 나서야 퇴원수속을 마칠 수 있었어.
그리고
환자복을 벗고, 내 옷을 입는 순간 ‘아! 뭔가 잘못됐다!’를 느낄 수 있었어.
생각보다 입원 전의 ‘나’는 퇴원 당시의 ‘나’ 보다 매우 말랐었구나.
간호사 선생님의 위로의 말은 콧줄로 들어가는 하얀색 밀가루 풀죽 같은 영양제의 성분은 ‘탄수화물+지방+비타민+등등 몸을 회복시키는데 중요한 성분들’ 이라서 살이 찔 수 있고, 전보다 활동성이 현저히 줄어 그런 거니 걱정하지 말라며, 날 다독였지만 눈앞이 뿌예졌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너무 기분 좋은 투정인 건가... 여기 병실엔 퇴원이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데...라는 생각이 스쳤고, 순간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겨 “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라고 대답했어.
하지만,
진짜 시련은 그때부터였어.
걷게 됐다고 했지, 일반인들처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빠르게 걷고, 거친 바닥이나 흙바닥에 적응을 했다는 뜻이 아니었거든.
단지 그냥 내가 평소에 걷던 길일뿐인데, 심지어 그 거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왜인지 모르게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바보 된 것 같고, 앞으로 나는 정말 일반인처럼 살 수는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
무려 병실에서 엄마의 차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길은 마치 마라톤 선수들이 뛰는 42.195km 같이 보였거든.
물론, 옆에 아빠가 있었지만 생활한 기간이 길었기에 짐의 양도 상당했고, 다시 외래진료를 보러 오기 전까지 먹어야 하는 약, 해야 하는 일, 하면 안 되는 일, 먹어야 하는 것, 안 되는 것들이 빼곡히 쓰여있는 서류와 짐이 많아 나는 지팡이(?) 같은 것의 도움으로 한 발 한 발 옮길 수 있었고, 가장 큰 단점은 허리를 세우고 걷는 게 불가능해서 구부정하게 걸어야 했어.
수많은 짐과 캐리어까지 끌고 있는 아빠의 부축까지 받으면서 말이야.
그렇게 무려 45분이라는 시간이 걸려 도착했는데, 퇴원 전 나는 사타구니 쪽을 절개해서 동맥 검사를 했기에 지혈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고, 나름 걷기 연습, 무릎 펴기, 허리 펴고 걷기를 꽤나 연습했다고 생각했지만, 병원 밖의 현실은 진짜 어마어마했어.
엄마는 혹시나 머리가 어디에 부딪히거나 급 정거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는지 차창문, 헤드쿠션 그리고 옆자리는 코로나 비말 방어막에 담요를 쌓아서 충격방지석을 만들었더라구.
누가 봐도 ‘딱’ 환자석이었어.
그 와중에도 내가 정말 살려고 본가 있는 쪽으로 올라왔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애구나라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내가 수술한 때는 2019년 말-2020년 중순 까지 병원에 있었고, 그래서 정말 굉장히 너무나도 다행히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팬데믹상태에 빠지기 바로 직전에 집으로 갈 수 있었어.
정말 신의 한수 아니야?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내 입원 이야기는 통원치료로 마무리가 되었어.
혹시라도 나와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없었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절대절대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아픈 것도 서러웠은니 앞으로 남은 건 행복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나는 다음 주 지금 내 옆의 ‘그‘ 와의 에피소드로 돌아올게.
오늘도 어려운 발걸음 해줘서 너무 고마워
항상 힘이 되고 너무 행복해.
그럼 안녕 나의 친구들!
2025.06.05
seiren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