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부꾸미 May 23. 2022

잠든 내가 알아서 해주겠지

때로는 내 속에 잠재된 힘을 믿어보기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었더랬다. 훗날 필요할 지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는, 시험에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런 불확실함이 가득한 책 속을 헤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겁 없고 배짱 좋은 학생이지도 못해서 완벽하게 공부를 내려놓고 ‘내가 책임진다니까?’ 객기를 부릴 정도도 아니었다. 그저 시험 때가 다가오면 책상 앞에 겨우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 머릿속으로는 영양가 없는 (그러나 당시에는 놀랍도록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딴 생각을 하며 한숨만 푹푹 내쉬는 부류였다.


 아는 게 있어야 모르는 게 뭔지도 알지. 나처럼 모르는 것투성이인 애들은 어디서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어디쯤 도달해야 시험지와 맞붙을 수 있는 수준이 되는지 가늠할 길이 없다. 음, 이만큼이면 됐다- 하며 홀가분하게 잠들었던 시험 기간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원래 잘 하는 쪽보다 못 하는 쪽이 공부에 임하는 마음 또한 더 부대끼는 법이다. 아마 공부에 대한 생각도 더 많이 할지도.


 마음이 콩밭에 가있지. 그러고 앉아 책 붙들고 죽상하고 있을 거면 그냥 자라. 엄마의 쯧쯧 소리가 날아들면 그제야 나는 마지못해 잘 준비를 하며, 마음 어딘가 공부에 대한 염려가 아직 남아있음을 표정으로 표현해보려 애썼지만 그게 통했을 거라 보진 않는다.


 그 시절 내가 체득한 놀라운 인체의 신비가 하나 있다. 대충 머릿속에 욱여넣은 지식들이 제자리를 못 찾고 헤매는 불안함을 느끼며 잠이 들 때, 스스로 주문을 외는 것이다. 자는 동안 내 뇌가 알아서 정리해 줄 것이다. 아침이 되면 마구잡이로 흩어져있던 지식이,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들로 알아서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스쳐지나가듯 본 것들도 선명하고 또렷하게 기억날 것이다. 허무맹랑한 것 같아도 잠들기 전 꼭 그렇게 자기에게 강력한 암시를 하고 나면, 다음 날 정말로 공부한 것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주문을 걸기에 양심을 어따 팔아먹은 것 마냥 너무 공부양이 적었던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 이 방법은 통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를 책에서 발견한다. 잠을 자는 동안 뇌가 저장된 방대한 정보 사이의 연결을 시험하고 구축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동떨어지고 전혀 명백하지 않은 연상을 추구하는 쪽으로 편향된 기이한 알고리즘을 써서. 즉, 깨어있을 때에는 뇌가 결코 시도하지 않을 방식으로 별개의 지식을 융합하여 인상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발췌 :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 / 매슈 워커) 내가 경험한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진 않지만, 우리의 뇌가 자는 동안 내 능력 밖의 일들을 우렁 각시처럼 사부작사부작 해내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심지어 그 때의 나는 근거 없는 자기효능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던 터라 더욱 효과를 보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나 자신을 믿다 못해 무의식 속의 나까지도 믿는 시절이 있었다는 게 꽤 까마득하다. 굉장한 세상 풍파를 겪은 건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확신이 수그러들었다. 자신만만했던 일에서 미끄러지기도 하고, 항상 노력한다고 해서 꼭 이루어지리라는 법은 없다는 걸 경험하기도 하고, 상대의 맘이 나와 같을 순 없다는 걸 매번 확인하고… 그렇게 못 미더운 리스트에 올라있던 수많은 타인들을 제치고 나 자신이 슬그머니 순위권에 등장한다. 서글픈 일이다.


 최소한의 공부 양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내 무의식을 믿었던 그 무모함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올릴 때가 온 것 같다. 평균 수명의 반 밖에 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닳고 닳은 양, 삶에 지친 양 굴고 싶지 않다. 겪어야 할 일들은 수도 없이 많고 결국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하는 건 나 자신 뿐이다. 어느새 나를 믿는 게 멋쩍고 익숙하지 않게 되었으니 무의식의 나부터 믿어야 하겠다. 


 푹 자고 좋은 꿈을 꾸는 동안 내가 모르는 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스스로 상처입지 않고 슬기롭게 살아남을 방법을 알아낼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던, 좋은 사람이 되는 소소한 습관들을 일깨워 낼 것이다. 기억 속 따뜻한 바람이나 축축한 흙냄새를 기꺼이 ‘행복’이라는 단어와 연결지어 줄 것이다. 이쯤 되면 나에게 잠은 종교나 다름없다.


이전 09화 낮잠이 필요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