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부꾸미 Jul 12. 2022

"I choose to see the beauty."

일부러라도 긍정적인 감정들을 쌓아보기



 선생님은 오래도록 내 얼굴 여기저기를 살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린 옆머리도 귀 뒤로 넘겨주시고, 삐딱하게 매달린 명찰도 매만져주셨다. 소녀 같은 단발머리에 동그랗고 큰 눈을 한 나의 담임선생님은 그렇게 한참동안 나를 앞에 앉혀놓고 애정 어린 손길을 보내시다, 조심스럽게 손을 끌어 잡으며 나긋하게 말씀하셨다.


“ㅇㅇ아, 수업 시간에 보면 넌 정말 그림처럼 자.”


 교무실 옆 자리의 지리 선생님이 빵 터져 웃으셨다. 칭찬인지 꾸중인지 판단이 서기도 전에 애먼 곳에서 터져 나온 웃음소리에 나는 대충 고개를 푹 숙였고, 언제든 험하게 말하는 법이 없는 우리 담임선생님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이셨다. 다른 아이들은 머리가 툭 툭 떨어지거나 입 벌리고 눈에 흰자위만 보이는 경우도 있고 아예 대놓고 엎드려서 자는 경우도 많은데, 너는 늘 살포시 한 쪽 손으로 턱을 괴고 누가 그려놓은 그림처럼 곱게 자고 있더라. 그래서 한 번도 수업 시간에 지적하지 않았다- 라는 게 선생님의 말씀. 되짚어보면 담임선생님 담당인 국어시간에 맨 정신으로 깨어있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한동안 숙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선생님은 누구에게도 흠 잡듯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평온한 고2 시절을 보냈다. 인생 최대의 고비가 될 한 해를 앞두고 누가 시비 걸지 않아도 마음이 미리 요동치던 그 때, 잔잔한 성품의 선생님 덕에 우리는 누구 하나 큰 상처를 입지 않고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 그 날은 아마도 진학이나 진로에 관한 상담을 하는 날이었을텐데, ‘그림같이 잔다’라는 말의 임팩트가 너무 커 다른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난 늘 좋은 면을 보는 사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예쁘게 말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내 머리 안에서 득과 실, 장과 단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분석되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그런 분석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는 듯 긍정적인 한 마디를 내놓는다. 그로 인해 분위기가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것이 부러웠다. 



 미드 웨스트월드의 안드로이드 돌로레스는 말했다. ‘나는 아름다움을 보려고 해요.’ 온갖 추악함을 드러낸 인간 세계를 앞에 두고도 그 말은 그대로 신념이 되고 희망이 되었다. 


 더 일찍이 포레스트 검프가 있었다. 그는 폭우가 그친 후 밤하늘의 별이 좋았고, 맑은 호수와 석양을 잊을 수 없고, 사막의 일출이 아름다웠다고 했다. 전쟁 중인 베트남에서도, 사랑을 잃고 끝없이 내달린 길 위에서도 그렇게 좋은 것들을 찾아냈다.


 호불호가 뚜렷한 내 성격의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결정을 내릴 때 망설임이 별로 없다. 마음 속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결정을 위한 고민의 시간이 짧다. 나쁜 점이라고 한다면 긍정 회로를 섣불리 돌리지 않는 탓에 무언가에 기쁜 마음으로 임할 수 없다는 것. 또 상황이나 누군가에 대한 좋은 것들도 빨리 짚어내지만, 그만큼 싫고 나쁜 점도 빠르고 정확하게 짚어내서 판단을 빨리 끝내버린다는 것.


 그런데 유난히 이런 긍정이나 부정의 감정은 전염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누군가의 좋은 점에 대해 말하면, 그러니까 예를 들어 ‘누구누구는 웃을 때 입매가 너무 예뻐.’라고 말하면 같이 듣던 사람도 대화 속 인물의 입매에 대해 ‘누군가의 눈에 예쁘다’라는 전제를 두고 보게 되어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하고 느끼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거다. 나쁜 점도 똑같다. ‘누구누구는 자꾸 말할 때 ‘인제’라는 단어를 문장 틈틈이 반복해서 쓰니까 듣고 있으면 너무 산만하지 않아?’ 라고 밖으로 내뱉는 순간부터, 듣고 있던 사람도 대화 속 등장인물의 ‘인제’가 반복되는 순간만 세고 있게 된다. ‘아, 거 되게 산만하게 말하네.’ 하면서 말이다.


 시니컬함이 내 육신을 지배했던 시기에는 그런 긍정의 화신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 뭐가 그리 좋고, 뭐가 그리 아름답고, 뭐가 그리 감사한지. 현실은 실눈 뜨고 바라보면서 꽃밭에만 들어가 있겠다는 건 도피 아닌가. 그런 세찬 감정이 휘몰아치던 혈기 왕성한 나이를 넘어서고 보니, 타고난 긍정의 화신들이야말로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한 수 위의 정신세계를 가졌다는 걸 알겠다.


 선생님이 ‘넌 허구한 날 수업시간마다 자니?’라고 날선 소리를 하지 않아, 나는 지적당하고 있다는 반감보다는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과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그 이후의 수업에 매번 또랑또랑했다고는 할 수 없다.) 유난히 잠이 많은 게 고민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난 적어도 볼썽 사납게 자는 타입은 아니네- 하며 모종의 뿌듯함을 얻었달까. 선생님의 예쁜 말 한 마디로 수업시간마다 깨어있는 꼴을 볼 수 없는 문제학생에서 자는 모습이 고운 아이가 되었다.


 언젠가 같은 과 친구가 내 캐리커쳐를 그려주겠다고 했다. 한참 연필이 종이 위를 바쁘게 오가다 갑자기 그 친구가 하는 말. “이상하다? 너가 지금 자고 있는 것도 아닌데 특징적인 모습을 떠올리다보니 자꾸 눈 감은 걸 그리게 되네?” 나는 그때도 몇 년 전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괜스레 뿌듯해했다.

“내가 원래 자는 모습이 좀 예쁘게 어울려.”


 좋은 감정을 전염시키는 법을 깨우치기 앞서, 좋은 것들을 찾아내는 노력을 해보려 한다. 포근한 이불 속이 딱 좋겠다. 오늘은 더운 날인데도 저녁 바람만큼은 상쾌했지. 우리 강아지 밤비는 하루가 다르게 애교가 많아지고. 아까 저녁에 마신 수정과는 당도가 너무 적당했어. 한 개 한 개 쥐어짜고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좋은 것들을 그러모아 두었다가,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쌈짓돈 풀 듯 훌훌 풀어 인상 쓰지 말고 웃어 보일 수 있도록. 


이전 11화 베개 원정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