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사는 화성인 3

by 김정은

세상의 절반은

상처,

나머지 절반은

눈물,

지구에 와 보니 그래, 그렇더라구


예루살렘에서 보았던

통곡의 벽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

사해를 만들어

그리 짠 것을...


지구가 푸른건

상처로 멍든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서야

지구인들은 영영

모를 테지만


세상의 절반은

전쟁,

나머지 절반은

슬픔,

그 둘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마도...

평온하지만 더럽게도 재미없던 고향 같겠지

물론 가끔 그리워

더럽게 재미없던

황무지의 그 땅이


코끼리 다리를 닮은

바오밥 나무,

초록색 수풀 사이로

어슬렁 대는 비열한 하이에나,

그런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수 천년을 살아보니

조금 알겠어


범고래들의 짝짓기 시절에는

짜릿한 연애를 구경하려고

태평양 깊은 바다로

종종 달려가곤 해

인간들의 연애?

좀 그렇고 그래

너무 잘난척 하거든


근데 말야

사람이란게

묘하게도 지구를 닮았어

상처와 눈물과 전쟁과 슬픔을

한데 뭉쳐 놓으면

동물이 아닌 사람이 돼


나?

나는 아직 화성인이야

유감스럽게도



르네 마그리트, 생활의 예술(1967)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비슷한 화풍으로 유명한 화가에는 스페인 출신의 살바도르 달리(1904-1989)도 있다. 둘 다 워낙 유명한 화가들이라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그림을 보면 단번에 아, 이 그림 본 적 있어! 라며 알 수 있을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1928)
르네 마그리트, 학교장


살바도르 달리,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1945)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1938)


둘 다 초현실주의 화풍을 만든 화가들이지만 나는 달리의 그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과대평가 하고 나 너무 잘났어, 나 완전 천재야라고 그림 속에서 과시하는 듯한 모습이 오만하기도 하고, 또 지나치게 인간적이라서...


반면에 르네의 그림은 몽환적인 서사가 느껴진다. 어딘지 모르게 그리워하고,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그런데 그 미지의 세계를 왠지 알고 있는 듯한 정서가 그림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그래서 난 르네 마그리트를 지구에 사는 화성인의 한명이라고 여길 때가 있다.


지구에 사는 화성인 종족이라고 여겨지는 화가와 아티스트, 디자이너, 배우들이 있다. 그네들은 물론 인간의 유전자 염기 서열과 정확히 99.99999% 일치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이 맞겠지만, 나는 그냥 그들을 화성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구인 사이에 숨어서 철저히 존재를 숨기고 은폐하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그들의 특이하고도 기묘한 습성이 작품을 통해, 연기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찰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 사이에는 무언의 소통이 있는 것도 같다. 그것은 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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