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Jul 15. 2023

Y, H, 그리고 강원도에게(하)

이상국, <집은 아직 따뜻하다>

선림원지에서 양양 진전사지까지 가는 길은 멀기도 멀었어. 버스를 두 번 탔던 걸로 기억난다. 선림원지에서 양양시내까지 오는 버스를 약 4~5시간 타고 다시 그곳에서 진전사지까지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탔다. 지금 이 나이에 그런 여행을 하라면 돈을 받아도 못 할 것 같은데 그 시절에는 그런 장거리 여행이 힘든 줄 모르고 했던 기억이 나. 이상하게 강원도 여행을 생각하면 고생했던 기억은 하나도 없고 방문한 장소마다 즐겁던 기억뿐이다.



진전사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3층석탑과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선사탑이 있어. 둘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옛 절의 모습은 사라진 대신 그 터 옆에 진전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척 재밌는 스님을 만났어. 나이는 30대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스님은 그 절의 지주스님이었는데 서울의 대학 사학과 학생이라고 하니 우리를 얼마나 챙기셨는지 몰라


그동안 여러 곳의 절을 갔지만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고 절밥까지 챙겨주신 분은 그 스님이 유일했지. 지금이야 워낙 사찰음식이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사찰음식 먹어볼 기회가 쉽지 않았던 때라 절의 스님들과 보살님 옆에 앉아 절밥을 먹는데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이었어. 우리 세 사람은 정신없이 먹었다.


그리고 주지스님은 너희 둘에게 툭하면 이런 농담도 던지셨어. '이왕 다닐 거면 이쁜 여학생이랑 다녀야지. 저렇게 못난이랑 같이 다니냐'라고 말이야. 그런데 나는 그 말이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어. 오히려 내 귀에는 세 청춘들이 참으로 이쁘다,라는 표현으로 들렸단다. 여하튼 주지스님은 우리가 떠날 때까지 나보고 내내 못난이, 못난이라고 부르셨고, 9월 말 그곳으로 우리 과 학생들을 이끌고 답사를 갔을 때 저녁 시간에 삼겹살을 사 주겠다고 전화를 주시기도 했어.


답사 저녁에는 밥 먹고 늘 세미나를 했기 때문에 결국 그 스님은 만나지 못했지만 당시에 비싼 휴대폰이 있던 Y 너는 지주스님과 그 후로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었지. 지금도 궁금하다. 그 이름도 모르는 주지스님은 지금도 건강하게 어느 사찰에서 젊은 이들에게 농을 치며 유쾌하게 살고 계실지 말이야.




낙산사 홍련암 가면

벌거벗은 부처님 계신다기에

음력 삼월 샛바람 부는 날

참댓잎 몸 부비는 소리 따라

동해 갔더니

아랫도리 가린 부처님이 웃기만 하네


낙산사 홍련암 가면

벙어리 부처님 계신다기에

구불구불 한계령 넘어 찾아갔더니

넘실대는 파도가 홍련암 감추어놓고

오신 김에 마음이나 씻고 가라 하네

슬픔이나 헹구고 가라 하네



이상득  <소문>




몇 년 전에 양양 낙산사에 화재가 난 적이 있다. 그 화재가 워낙 거세 낙산사 거의가 불에 타고 훼손되었지. 뉴스로 그 소식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어. 낙산사는 정말 보물 같은 사찰인데...


진전사를 떠나 우리는 낙산사로 향했다. 양양의 바다가 보이는 기가 막힌 곳에 위치한 낙산사는 거대한 불상으로도 유명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어. 그곳의 진흙담과 탱화에 나는 넋이 나갔다. 대웅전 벽에 낡아 색이 바랜 오래된 탱화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예술 작품이었어. 종교란 참 신기하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인류사의 가장 훌륭한 예술의 탄생은 대부분 종교에 있으니까.


절대자를 향한 숭고한 믿음은 때때로 연인에 대한 혹은 부모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강렬해서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위대한 예술작품을 많이 만들어낸다. 스페인의 가우디 성당이 그러하고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 그러하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또 어떻고. 나는 그런 예술작품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낙산사에서 만난 흙담과 탱화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곳의 역사적 가치는 다 잊어버렸어. 흙담에 선 나와 H의 사진이 우리 답사지의 표지가 될 정도로 우리는 낙산사를 참으로 좋아했다.




영을 넘는다


동해 어염 지고

인제 원통 바꿈이 다니던 사람들의

길은 지워지고

고래등처럼 푸른 영만 남았는데

이렇게 험한 곳에서도

나무들은 문중을 이뤘구나


북설악 한여름에 무슨 잔치가 있었는데

골짝 물마다 얼굴이 벌건 가재들이 어슬렁거리고

벙치매미도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비탈이 험한 곳일수록 꼿꼿한 나무들이

그들 말로

오늘은 꽤 지저분한 짐승 하나가

지나간다고 하는 것 같은데


물소리가 얼른 지우며 간다



이상득 <샛령을 넘으며>



이제 우리의 사전 답사 여행도 어느덧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양양 낙산 해수욕장에서 바닷바람을 쐰 우리는 남은 돈을 탈탈 털어 허름한 여관방을 빌렸어. 그곳에서 숙박할 건 아니었고 오랜만에 돌아가며 샤워를 했거든.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기에는 우리 세 사람에서 나는 냄새가 좀 심했어야 말이지. 고속버스를 타고 노래로만 듣던 한계령을 넘었던 것도 같아. 가는 길이 어찌나 구불구불한지 멀미가 나는 걸 간신히 참았었다.


상봉 고속터미널에서 우리는 드디어 헤어져 오랜만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또 만나 답사 일정을 확정하고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답사 세미나 자료로 쓸 소논문을 부탁하고, 세미나 담당이었던 나 역시도 화엄종을 주제로 소논문을 쓰는 동안 Y와 H는 답사지를 비롯한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처리했지. 그 해 1998년의 여름은 땀냄새 범벅이었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만큼 찬란했던 청춘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나처럼 너희들도 결혼해서 가장이 되고 아이들의 아빠가 되었지. 또, 나처럼 가끔 그 해 강원도 여행을 추억하는지 궁금하구나. 시를 좋아했던 Y 너는 교과서를 만드는 회사에 일하고 있는 건 알고 있는데 H는 대체 소식을 알 수가 없다. 이제는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서 그런 청춘의 한 추억을 만들어 나가겠지. 그렇게 세대가 이어지겠지. 문중을 이룬 나무들처럼 우리도 문중을 이뤄나가겠지


그 해의 강원도에게도 안부를 전한다.



대문사진: 진전사지 삼층석탑

이전 14화 Y, H, 그리고 강원도에게(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