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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Sep 14. 2023

<별 헤는 밤>을 들려주고 싶은 그대에게

그대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약 24년 전 대학 도서관이었습니다.


청춘 로맨스물에서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반하게 되는 장소로 종종 나오던 바로 그 대학 도서관 말입니다. 진부하게 느껴질 법한 클리셰를 따라 나 역시도 도서관에서 그대를 만났고 첫눈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첫사랑의 강렬한 열병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발견했을 때 그대는 이미 카론의 강을 건넌 후였으니까요. 



*카론의 강: 아케론 강이라고도 하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승과 저승을 가로지르는 강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 기형도 시인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중 詩作 메모(1988.11) -



그대 역시 나처럼 겨울이 힘들었나 봅니다. 육체가 추우면 영혼도 시려집니다. 영혼도 추위를 탑니다. 삶에도 겨울은 찾아옵니다. 다만, 삶의 계절은 자연과 달라 겨울과 겨울, 또 겨울이 지속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계절을 지나 본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도 알아보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육체도 영혼도 추워본 적 없는 사람을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아니, 사랑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그토록 시리게 만든 추위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사랑이 시작된다는 강력한 증거는 바로 호기심입니다. 나는 그대의 첫 문장부터, 첫 단락부터 그대가 궁금했습니다. 그대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무엇이었기에 형식을 찾지도 못하고 공중에 흩어졌는지, 남겨진 시들을 읽으면 그 흩어진 말들의 단서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는지, 흩어진 말들은 영영 사라진 것인지, 사라진 것들을 아쉬워하는 것은 미련인 것인지, 궁금증은 궁금증을 먹고 점점 더 자라납니다. 마치 짝사랑이 그렇듯...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 집> 



그대의 시집은 유작으로 단 한 권만 있을 뿐입니다. 그대는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어느 극장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대의 죽음보다는 그대의 탄생에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죽음도 없었을 테지요. 그러니 죽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탄생입니다. 결과에 매몰되어 아름다운 진실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대는 1960년 3월 13일, 물고기자리로 태어났습니다. 물고기자리에 태어난 사람들은 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던 어느 점성술사의 말이 거짓은 아닌가 봅니다. 내 주위의 가장 예술적인 사람들은 모두 물고기자리 태생입니다. 물병자리인 나는 물고기자리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물 밖으로 나오면 죽을 운명인 물고기들에게 내가 가진 물을 나눠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할 만큼 사막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물고기자리들은 순수하고 연약합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엄마 걱정> 




그대가 열 살, 아, 열 살, 이 얼마나 어린 나이입니까, 아이를 키우고 그 아이가 열 살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열 살은 세상의 모든 불행과 비극이 비껴가야 함이 마땅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열 살일 때 그대의 아버지 역시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어머니는 가장이 되어야 했고 어린 딸들은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막내였고 공부도 잘했던 그대는 누이들의 월급으로 공부만 하고 있는 자신이 미웠습니다.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차마 집에 가져갈 수 없어 그대는 흘러가는 개울물에 상장을 띄워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뇌졸중은 비극의 씨앗이었습니다. 그 씨앗이 어찌나 뿌리 깊었는지 그 질병은 그대로 유전되고 말았습니다. 네, 그래요. 비극도 유전이 되는 것입니다. 유전자의 존재를 몰랐던 그리스 시대 작가들은 비극을 신이 주신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라고 주장하곤 했지요.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라는 말 대신에 '과학적인 유전의 발현'이라고 고쳐 써야 하나 잠시 고민해 봅니다. 이제는 사람의 운명이  '정체불명의 존재가 준 장난'이 아닌 '과학적으로 인과관계를 밝힐 수 있는 실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낭만은 불확실한 시대에나 가능한 것 이더군요.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

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


<나리 나리 개나리>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대가 중학생 소년이 되자마자 그만 공장에 다니던 어린 누나가 죽게 됩니다. 이제부터 그대의 삶에서 죽음은 탄생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불행은 언제나 시를 잉태하고 시인을 탄생시킵니다. 그런 시인의 운명을 그대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누나의 죽음으로 그대는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축제를 벌이는 봄이 되면 그대는 죽어버린 누나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살아 있지 않은 것을 묻지 않는 봄이 서러운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봄 꽃을 꺾어 버리는 것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대는 처음부터 죽음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람입니다. 그대 유작 시집의 제목 역시 <입 속의 검은 잎>입니다. 그대의 시집은 제목에서부터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검은 잎은 죽은 이파리입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망자의 입에 저승길의 노잣돈으로 넣어준 엽전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래서일까,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제목은 제게 늘 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를 연상시킵니다. 젊고 아름다운 조디 포스터의 입 속에 담긴 불온한 나방... 그 이미지 그대로 그대의 시집 첫 페이지를 열기도 전에  나는 어떤 비극을 예감하였습니다.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입속의 검은 잎> 




그런데 그대는 아시나요? 나도 한때 조치원에 살았었다는 것을? 비록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도시도 시골도 아닌 애매한 소도시의 잔상이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그건 그 도시의 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마 그대의 시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내는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하지요.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

서울은 내 둥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방 사람들이 더욱 난폭한 것은 당연하죠

...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마지막

귀향은

이것이 몇 번째일까, 나는 고개를 흔든다

설령 사내를 며칠 후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한들 어떠랴. 누구에게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

...

조치원이라 쓴 네온 간판 밑을 사내가 통과하고

있다.

나는 그때 크고 검은 한 마리 새를 본다. 틀림없이

사내는 땅 위를 천천히 날고 있다.


<조치원> 




쓸쓸하고 적막한 야간열차 안, 피곤으로 졸고 있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대는 우연히 자신의 옆에 앉게 된 어떤 사내와 만났습니다.  그대는 기자 출신답게 그 사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했을 겁니다. 그 사내는 서울이라는 곳에 적응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대도 아시다시피, 서울은 이방인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동네입니다. 이방인인 그에게 서울 살이로 남은 것은 분노와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표뿐이었습니다.



그대는 그 사내에게 서울을 대신해 친절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대가 서울을 대신할 필요도, 그 사내의 실패에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건만 그대는 자신의 불행만큼이나 타인의 불행에 예민한 사람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거겠죠. 나는 그대의 시가 이렇게 읽힙니다. 


실패한 이에게 돌을 던지지 말 것을, 그 실패에 대해 변명해도 그저 들어줄 것을, 누구나 겨울을 위해 한 개쯤의 외투를 갖고 있어야 함을...


그대는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눈처럼 추운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었지만 그대가 그려 낸 시 세계는 참으로 따듯합니다.  세상에서 얻은 추위를 연료 삼으면 영혼도 추워질 법 한데 그대는 그대의 영혼만큼은 춥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추워보지 않은 사람은 추운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없을 테지요.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 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오래된 서적> 




그대는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을 한 권 발견합니다. 마치 내가 그대의 시집을 도서관에서 발견한 것처럼. 그대는 오래된 서적에 쓰인 문장들을 읽기 전에 먼저 그 서적의 이력을 상상합니다. 그 서적은 아주 오래전에, 그리고 무척 두껍게 쓰인 책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아 도서관의 외진 자리에 오랫동안 방치된 그런 책입니다. 그 책에 담긴 내용은 기적과도 같은데 사람들은 한번 읽은 후 다시 찾지 않습니다. 오래된 서적은 스스로를 부정합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라며 사랑받지 못한 설움은 기적조차 믿지 못하는 회의주의자로 만들 뿐입니다. 그 오래된 서적이 진짜로 오래된 서적인지 그대인지 아니면 나인지 나는 조금 헷갈립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기억할 만한 가르침> 일부



그대는 일을 할 때 어떤 사람이었나요? 좋은 직원이었나요? 이런... 좋은 직원... 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지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 좋은 직원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기까지 회사 내 권력과 상사의 갑질과 돈벌이의 고단함과 가장의 애로사항이라는 지난한 생존의 고통이 숨겨져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 단어는 물려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좋은 직원이었나요?라고 묻는 대신 그대에게 신문사는 좋은 직장이었나요?라고 묻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좋은 직원이기를 궁금해하기보다 당신이 다니는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 궁금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안타깝게도 시 속의 서기에게 직장은 좋은 곳이 아니었나 봅니다. 서기는 8급 공무원의 직급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보통의 공무원들은 9급부터 시작하여 잘하면 5급, 운이 좋으면 4급으로 은퇴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6급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30년을 일해도 겨우 3단계만 진급할 뿐이지요. 공무원이 좋았던 시절은 이제 옛말 같아요. 과도한 업무와 집장 내 괴롭힘으로 하위직 공무원이 자살을 한 뉴스가 심심찮게 보도됩니다. 그대가 일하던 80년대 시절에도 직장 내 괴롭힘이 지금처럼 심했는지 궁금합니다. 그 시절의 직장인들은 어쩌면 그것이 괴롭힘이었는지조차 몰랐을 테지요.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런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 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 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 기형도, <가는 비 온다> -




요즘의 시는 참 어렵습니다. 시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면서도 현재의 시 트렌드를 나는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언어로 만들어진 상징과 구조의 세계가 점점 더 정교해져서 어떨 때는 시를 읽다가 아리아드네의 미궁에 빠진 것처럼 난감합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그대의 시처럼 술술 읽히는 오래된 시들만 찾아 읽게 됩니다. 과거의 시인들은 지금보다 좀 더 직관적인 시를 썼던 것 같아요. 하지만  순수시의 시대에도 그대는 시를 쓰는 목적이 좀 더 명확했습니다.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대의 시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것을 늘 경계하는 나였지만 그대는 어쩐지 처음부터 끌렸고 그대의 페이지를 매번 넘길 때마다 더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나는 여전히 내 불행과 내 행복과 내 감정과 내 역사에만 붙들려 시를 쓰곤 합니다. 굳이 변명이라면 지금의 시대는 사랑하기에 너무나 복잡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대가 80년대의 불우한 시대를 사랑했듯, 지금의 시대를 그대 역시 사랑할 수 있을지, 지금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어떤 시를 들려줄지 궁금합니다. 끝내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고 절대 발견할 수 없는 호기심이겠지요.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합니다. 궁금증이 계속되는 한 그대를 향한 사랑은 멈추지 않을 테니까요. 


그대에게 오늘밤은 <별 헤는 밤>을 불러 주고 싶네요. 







이 글은 아래의 두 글을 참고하여 편지 형식으로 다시 썼습니다. 가을이 오니 기형도 시인이 그리워서요...


https://brunch.co.kr/@anessdue/129

https://brunch.co.kr/@anessdue/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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