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결심

by Journey


남편은 믿음이 가는 진로, 적성 전문 명리학자에게 연락했다.

그는 내가 친정 식구와의 갈등으로, 한창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에 읽었던 사주 책의 저자였다.

그는 현재 제주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전화로 상담하기로 했다.


약속 날, 우리 부부는 우리 가족 4명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공책에 가득 적어 그에게 물었다.

장장 4시간이 넘는 전화상담.


그는 '빠르게는 서너 살, 늦어도 초등 때까지만 엄마의 육신*을 필요로 하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중학생 때까지 나의 육신을 원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나는, '전업주부를 하기에는 기(氣)가 강하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아이들 모두를 위해, 아이들 키우는 것을 일하듯이 하라.'고 했다.

더불어 '나, 아이 둘 모두 수(水) 기운이 필요하니 잠시라도 해외에 나가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 아이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 가슴속 깊숙이 담아두어, 한동안 잊고 지냈던 해외살이에 대한 로망에 불이 지펴졌다.

내 아버지는 외국계 기업에 다니셔서 나는 어려서부터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나는 외국인을 만나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영어를 공부로만 받아들여, 영어 울렁증을 넘어서 공포증이 있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는 외국에 못 가겠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국에 던져지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영어를 잘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혹은 좀 이상한, 해외살이에 대한 염원이 있었다.

하지만 내 나이 마흔 살이 넘어서도 타의로 해외살이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남편은 몇 년 전, '직장에서도 보면, 확실히, 어렸을 때 해외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시야가 넓고 일상영어도 수월하게 한다.'며 나와 아이들의 해외살이를 독려했다.

나도 잘 안다. '영어를 잘하면 사회에서 얼마나 더 많은 기회가 있는지, 하다못해 여행을 가서도 누릴 것이 얼마나 더 많아지는지.'

하지만 '한국에서도 키우기 힘든 아이 둘을, 외국에서, 그것도 나 혼자, 도저히, 케어할 수 없을 것만 같고, 나의 감정기복을 스스로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만 같은 두려움'에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랬던 나에게 명리학자의 말은 ‘두려움이란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가봐라.’라는 말로 들렸다.

거기에 내 아이들만큼은 나와 같은 영포자로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넓은 시야를 갖고 큰 꿈을 꾸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해져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강하게 휘몰아쳤다.

계산을 해봤다.

‘첫째 학년을 생각하면 최대 2년 정도 가능할 것 같고……’

'싱가폴?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가 괜찮다고 했던 것 같은데……’

생각과 동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 말레이시아 살기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수많은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유학원에 연락하며 지역과 아이들 학교를 정하기 직전,

평소 내가 하는 일을 100% 믿고 지지하는 남편이 말했다.

“나는 이왕 가기로 한 것, 진짜 영어권으로 가면 좋겠어요.

말레이시아 국제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영어를 하겠지만 생활권에서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왕이면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면 좋겠고요.”


남편의 말에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두려움이란 껍질을 완전히 깨지 못하고,

‘타국에서 혼자 두 아이를 돌본다고 생각하면, 한국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이어야겠다.’라며 지역을 절충했던 내 속내를 들킨 것만 같았다.


사나흘을 말레이시아 정보 모으는 것에 집중했건만, 모든 것이 원점이 되었다.

‘그렇다면, 시차가 없는 뉴질랜드나 호주?’

‘시차는 별로 안 나지만, 남반구라 그런지 두 나라는 낯설게 느껴져.’

‘그렇다면 캐나다? 너무 먼데, 시차도 많이 나고……’

‘그래도 많이들 가는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이왕 껍질을 벗어보려는 것, 제대로 벗어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다 사람 사는 곳인데.’라며

내 평생 가져보지 못한 내면의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캐나다에 가려면 퇴사해야 하고, 이왕 퇴사하는 것 멋지게 인생 제2막을 시작해 보자.’

나는 그렇게, 회사를, 한국을 '떠날 결심'을 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물에 맞춰 사는 것입니다.

타인의 의견이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가로막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 스티브 잡스,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 -




* 엄마의 육신을 필요로 하다

- 엄마의 보호, 양육, 정서적 지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사주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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