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행 D-60, 통과의례 치르다.

ADHD, 아이에게 말하다.

by Journey


잊을만하면 꺼내게 되는 해외살이에 대한 로망을 이루고,

나의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캐나다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국을 벗어나보고 싶었다.


해야만 하는 일을 시작하기까지 너무도 오래 걸리는 아이.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 언어이해와 시공간은 높지만 작업기억과 처리속도가 낮은 아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이면서 높은 지능을 가진 아이들의 전형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나의 첫째 아이, Y 이야기이다.

Y는 7살 가을에 ADHD 진단을 받았다. 이로써 단순 반복과 암기를 힘들어하는 Y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상 나와 아이 사이에 숙제 전쟁은 멈출 수 없었다.

아이와의 숙제 전쟁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가 영어를 언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성인이 되었을 때 많은 것에 있어 선택의 기회를 갖게 하고 싶었다.


ADHD 자녀를 위해 해외로 이주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온라인에서 마주한 그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했다.

“이 나라는 ADHD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어요.”

“이 나라에서는 옆집 사람한테 내 아이가 ADHD라고 말해도 아무렇지 않아요. 자기 아이도 ADHD라고 편하게 이야기하던 걸요?” 등등.

우리나라에서는 자녀의 ADHD 진단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 아이의 언행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볼까 두려워서, 부모의 양육태도가 잘못되어 아이가 그런거라고 비난할까봐 두려워서 사실을 꽁꽁 숨겨야만 한다. 나는 그래서 이런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든 것을 다양성으로 포용해 주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보기보다 강점을 키워줄 수 있는 나라에 살아보고 싶었다.


즉, 숙제로부터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할 수 있으며, ADHD에 대해 편견이 없는 나라,

이 모든 나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는 곳이 캐나다라고 생각했다.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호주 등 지구를 돌고 돌아 캐나다, 그중에서도 광역 밴쿠버의 한 도시로 지역을 정하고 학비를 납부한 뒤 학업 허가서(Study Permit) 신청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는 몇 년, 짧아도 반년의 준비기간을 갖는 것에 반해, 나는 갑작스러운 캐나다행 결심과 동시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16일간의 지역선정 이후 또 16일간의 입학서류 준비 및 학업허가서 셀프 신청 단계를 마치자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 지금 무슨 짓을 벌인 거지?’


주변 사람들은 계획에 없던 캐나다에 가겠다고 하더니,

5주 만에 학업허가서 신청을 하고, 직접 현지 집을 알아보고 있는 나에게 ‘추진력 대단하다.’며 놀라워했다.

아이의 ADHD 진단으로 나이 40살이 넘어 알게 된 나의 ADHD 성향이 이렇게 폭발적인 추진력*을 보여줄 줄이야.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한 편, 마음 한편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ADHD 특성 측면에서 보면, 과몰입 기간이 끝나고 급속 방전*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완전히 방전되어 손을 놓기 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결심과 진행상황을 이야기했다.

낯 부끄러워서라도 돌이킬 수 없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드는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잘 살고 있는 애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었나?’

‘내가 가만히 있는 게 어려워서 괜히 일을 만들었나?’

'이렇게 돈 써가며 갔는데 애들이 적응 못하면 어쩌지?'

그도 그럴 것이, 언제 어디에서나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며 사교적이고 체격 좋은 둘째(S)와 달리

사교성 부족하고 먹는 것, 자는 곳, 화장실 등 모든 것이 까다로우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왜소한 첫째(Y)는 캐나다에 안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S는 캐나다 가고 싶대. 엄마도 가야겠고. 넌 그럼 아빠랑 한국에 있어.”

초강수를 쓴 것이다.

Y는 괴로워하며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런 Y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대학생 때, 할머니가 엄마한테 영국 어학연수 가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어.

근데, 엄마는 혼자 외국에 나간다는 게 너무 무서운 거야. 그래서 결국 안 갔지.

그게 지금까지 엄마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야. 만약 그때 영국에 가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해.

Y도 이번에 안 가면, 나중에 엄마처럼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혼란스러워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Y가 결심한 듯 말했다.

“엄마, 나 그럼 가볼래.”


그렇게 어렵게 결단을 내린 Y는 불안, 긴장도가 높은 ADHD 특성인지

캐나다 생각만 해도 긴장된다며 “내 앞에서 캐나다의 '캐'자도 얘기하지 마.”라고 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목을 앞으로 쭉 뺐다가 넣는 운동틱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캐나다에 가서 틱이 더 심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더해졌다.


출국이 2개월 앞으로 다가오자 나와 Y 모두 예민해진 탓으로 둘이 함께 있는 시간 내내 싸우기 일쑤였다.

그러다 가족들과 내 퇴직기념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온 날, 사건이 벌어졌다.

Y는 총싸움 놀이를 하고 싶은데 엄마가 캐나다에 가기 위해 총을 짐에 넣는 바람에 못 놀게 됐다며 눈물 섞인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짜증을 넘어 흥분, 발작이었다. 그 대신 유튜브를 보여달라는 개연성 없는 제안도 했다.

아이의 화는 쉽기 사그라들지 않았고 결국 난 큰 결심을 했다.

Y가 ADHD 진단을 받은 후 약 4년 동안 ‘아이에게 언제, 어떻게 진단사실을 이야기하면 좋을지?’ 고민했는데,

오늘, Y에게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Y, 방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말할 게 있어."
"왜!?"
"궁금하면 들어와."


5분 남짓, 아이의 침대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으니
"왜!?"라며 아이가 들어왔다.

'ADHD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도록, ADHD라는 단어는 절대 쓰지말고 이야기해야겠다.'라는 다짐과 함께 입을 열었다.
"Y, 여기 앉아봐"
아이를 기다리며 '어떤 식으로 이야기할지?', '이 시점에 말하기로 결심한 게 잘한 건지?' 잠깐의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음에도 아이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려니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최대한 덤덤하게 눈물을 꾹 참고 이야기해야만 했다.
"Y야, 엄마 아빠가 못하게 하는 게 많아서 속상하지?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게 하고, 영상도 못 보게 하고.

Y, 마음 크는 병원 왜 다니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사람마다 키 크는 속도 다르고, 안경 쓴 사람 안 쓴 사람 있듯이 다 다른데 Y는 전전두엽 성장속도가 좀 느리대. 전전두엽은 감정을 조절하고 그런 곳인데, 전전두엽이 성장하는데 합성첨가물, 색소, 영상물이 안 좋대.

눈 나쁜 아이가 어두운 데에서 책 보고, 가까이 책 보고 그러는데 엄마가 눈이 더 나빠질 것 알면서 그냥 둘 수는 없잖아. Y의 전전두엽 성장에 안 좋은 것들을 엄마가 아는데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

Y가 감정조절이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일 거야.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것 잘 알아. 전에 놀이치료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 화나거나 속상하고 슬플 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Y만의 방법을 찾으라고. 어떤 사람은 운동하고,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듣고,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말이야. 엄마는 어렸을 때 속상하면 일기를 쓰거나 운동을 했어."


아이는 눈에 초점을 잃고 멍하니 앉아있다.

갑자기 걱정이 된다.

"Y야, 괜찮아? 큰 문제 아니야.

Y, 아침마다 먹는 파란색 알약 있지? 그게 전전두엽 성장을 도와준대*. 도움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게 다행이잖아.

그리고 이게 유전이래. Y가 엄마 닮았나 봐. 근데 엄마도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

엄마 아빠가 음식, 영상 제한하는 이유를 듣고 나니까 좀 이해가 돼?"
"원래도 이해했어. 근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속상해."
다른 친구들은 마음껏 즐길 수도 있는 것들을 억제하게 해야 하니 마음이 짠하다.
아이를 꼭 안아줬다.

"걱정하지 마. 일론머스크도 아인슈타인, 모차르트도 그랬대."라는 말과 함께.



♣ 2월 16일은 캐나다의 Family Day라 앞뒤로 연휴가 있습니다. 이 기간에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와 2월 27일에 다시 뵐 계획입니다. 직접 운전해서 아이 둘과 육로로 국경을 넘는 첫 여행이라 긴장되기도 하지만 많은 것에 용기를 내고있는 저 자신을 칭찬하며 잘 다녀오겠습니다. : )





* 웩슬러 지능검사 (Wechsler scale of intelligence)

-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능검사로 각 연령 집단 내에서의 상대적인 위치를 밝히는 편차 개념을 도입하여 측정한 검사.

- 조직화된 11개의 소검사로 다양한 인지능력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음.


* ADHD의 추진력과 과몰입

- ADHD 성향이 있다면 무언가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뇌의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문제를 겪음.

즉, 실행력이 낮음. 하지만 일단 시동이 걸리면 추진력은 일반인보다 훨씬 강력할 때가 많음.

- 본인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나 마감이 닥친 상황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함.

이때의 추진력은 며칠 걸릴 일을 몇 시간 만에 끝내버릴 정도로 압도적.


* ADHD의 급속방전

- ADHD의 뇌는 '적당히'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에너지를 비효율적이고 폭발적으로 사용함.

하지만 자극이 끝나거나 흥미가 식는 순간, 도파민 수치가 정상 이하로 곤두박질치며 셧다운 상태에 들어감.


* ADHD 약 복용이유

- ADHD약이 전전두엽 성장을 도와주는 것은 아님. 안경을 쓰는 이유와 같음.

안경을 쓴다고 시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것과 비슷함.

-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을 바로잡음으로써 자기 조절능력을 높이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도움을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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