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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비문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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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o Choi Dec 27. 2016

흔한 사랑, 흔한 이별

비문

흔한 사랑, 흔한 이별

arco.choi - 찍고, 쓰다.

그때, 그녀는 고루한 표정으로 말했다.

"담배 피울 때는 한숨을 쉴 수 있어 좋아."
"..."




나로서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재미있군"이라며, 그 모습을 그저 바라봤었다.

조금 뒤집어서 생각해보니, 무언가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그 바라봄은 무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마치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까끌거릴 것 같은 열대 과일의 두터운 껍데기 같은 표현은 생각 외로 짧지만
강렬하게 목구멍 언저리에 정체되어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언젠가부터 담배를 피울 때마다 목구멍 언저리에서는 쓸려가지 않는 어떤 정체감을 매번 느끼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그런 멋들어진 말의 자극이 나에게는 왠지 모를 불편함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위태롭다고, 측은하다고 느끼며 바라보던 그녀의 삶은 왠지 그 한마디로 반전되는 것 같았고,

포장하고 포장하며, 포장된 내 모습을 보니 어쩐지 위태로움은 내쪽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한마디는 언제나 뒤끝이 남는 그런 것이었다.
마치 하루키의 소설에서의 주인공이 무미건조한 상황들 속에서 깊이 생각하며 고뇌에 빠지는 것처럼.
그녀의 한마디는 늘- 그렇게 다가왔다.

밤이 세도록 그녀와 네모난 전자기기를 사이에 둔 채, 마치 영화 접속처럼

과거로 돌아간 듯 작업을 했다.

그것은, 그 시간은 내 것도 그녀 것도 아니었겠지만,
시커먼 방안에 나는 축축하고 눅눅한 감정으로 피곤함을 억누르고 작업을 함께 했다.
왠지 먼 거리가 근거리처럼 축소되어 다가오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냥 작업을 함께 할 뿐이었겠지.


그렇게, 밤을 꼬박 새워 햇볕이 목구멍 언저리를 비출 때 즈음인 8시.

짧은 유희와 고통이 끝나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뜨니 오후였고, 방안은 조용했다.

선풍기는 거실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진돗개처럼 충직하지만 애처롭게 돌아대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핸드폰에 화면을 보니 문자 몇 통이 와 있었다. 
그녀는 수고했다는 말과 작업에 대한 내용을 조금 적고 , 일어나면 문자를 하라는 말을 적고 자는 듯했다.

나는 웃음이 났다.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복도 창문에 서서 담배를 태웠다.
이해가 안 되는 어제와 너무 다른 상이한 뜨거운 날씨.


창밖으로 양산을 쓰고도 인상을 찌푸린 사람들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 보이며 무표정으로 그때 그 담배에 대한 말이 또 떠올라 담배를 끄고 , 샤워를 했다.


사실 전날 밤에 난 씻지 않고 , 그대로 밤새 컴퓨터 앞에서 씨름을 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씻을 시간이 없었다겠지만.
그러다 보니 머리며 얼굴에는 끈적이는 무거운 기름이 앉아 있었다.

요즘 점점 자는 시간이 줄어가는 것 같았는데, 밤을 꼬박 새웠는데도 좀처럼 피곤하지가 않았다.

조금만 생각해보니 어떤 강박관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 치부와 상황을 드러내길 거부하는 나로서는 나 역시 담배를 태우며 한숨을 쉬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버스를 타고 역에서 내려 그대로 전철을 몸을 싣고, 책을 잃었다.

아주 천천히 와인을 음미하는 것처럼.

너무 깊이 생각하며 글을 읽은 탓일까? 내가 주인공이 된듯해져 슬펐다.

나는 역에서 내려서 걸으면서도 위태로운 걸음으로 책을 읽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20장 남짓 , 페이지로는 40페이지가량만을 읽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은 "다시 뒤돌아 가보고 싶다"였다.
뒤돌아서 천천히 잠을 덜 깬 아이처럼 걸어가 보고 싶다.



그런 생각에 그녀에게 문자를 쓰고 싶었지만 이내 홈버튼을 눌러 문자 쓰는 행위를 멈추어 버렸다.

내가 쓰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았다. 
"만약 네 말처럼 , 어쩔 수 없는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해도 어쩔 수 없이 똑같다면 , 그렇다면 다시 사랑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는 사요나라 하며 육체를 벗어버릴 날이 올 테니까 , 그럴 테니까. 마지막이란 단어는 왠지 생각이 나지 않았어. 나는 이번 기회가 박탈당한다고 해도, 다시 도전할 것 같아. 그게 언제든 , 사요나라 할 때까진 말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믿어본다.
어쩔 수 없게 만드는 마음은 있지만..



아 , 관계란 참 아이러니와 쇄도를 함께 품고 있는 가을 같다는 생각이 핑퐁처럼 튀겨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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