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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비문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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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o Choi Aug 13. 2015

기억의 바닥

비문

너를 그리는 기억의 바닥에 누워.


arco.choi - 찍고, 쓰다.




붉게 핀 장미를 기억한다.

붉게 물든 선홍빛 입술을 기억한다.

하얗고 보드라운 손등 위를 보호막처럼 감싸고 있는 따듯한 온기를 기억한다.

따사롭고 선명하게 나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응시하던 너의 그 응집력 있는 예쁜 눈을 기억한다.

나이에 맞지 않게 멍청한 행동을 할 때 나를 귀엽다며 건치를 보이며 활짝 피우던 너의 미소를 기억한다.


아픔이 서린 기억을 왜곡시킬 만큼 강렬했던 너와의 짧고도 긴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또 한 번 감상의 바닥에 눕게 한다.

왜곡과 감상이 설킨 한 겨울에 아랫목처럼 따스운 그 바닥에서.


막을 수 없는 연기의 흐름처럼 뭉게뭉게 붉은 선홍의 자욱들이 여기저기 뜀박질한다.

왼편 가슴에서 뜀박질하던 선홍의 자욱들이 먼저 손으로 그리고 목을 타고 얼굴에도 한 가득.

붉은 선홍의 자욱들은 나의 옅은 누런 빛을 뛰는 흰자 안을 채워가며 한참을 머문다.


눈물이 떨어진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모든 수분들이 빠지는 듯이 나는 뜨겁게 한 방울, 또 한 방울을 떨구며 기억한다.


붉게 핀 장미를 또 기억한다.

붉게 물든 선홍빛 입술을 또 기억한다.

하얗고 보드라운 손등 위를 보호막처럼 감싸고 있는 따듯한 온기를 또 기억한다.

따사롭고 선명하게 나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응시하던 너의 그 응집력 있는 예쁜 눈을 또 기억한다.

나이에 맞지 않게 멍청한 행동을 할 때 나를 귀엽다며 건치를 보이며 활짝 피우던 너의 미소를 또 기억한다.

기억을 왜곡시킬 만큼 강렬했던 너와의 짧고도 긴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통 선홍빛으로 물들이는, 어쩌면 왜곡과 감상이 설킨, 기억의 바닥에서.

또 이렇게 바보처럼 웅크리고 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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