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위치한 성 마르첼리노 수도회에서는 '시와 영성'이라는 주제로 피정을 겸한 특강이 한창이다. 이 프로그램은 독일에서 온 노수사의 가벼운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수도회가 자생하기 위한 여러 사업 중 독일 정통 소시지 제조기법을 전수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언급된 시편을 보다 대중적으로 신앙생활에 접목하면 어떠냐고 말을 꺼낸 것이 1일 피정 프로그램까지 온 것이다. 처음에는 수녀 시인의 시를 주로 선정해 적용하다가 차차 종교와 주제의 경계를 두지 않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리라 시를 통한 내면의 영적 성장과 타인과의 성숙한 관계 개선에 있기 때문이다.
행사는 자유로운 자리배치만큼 주고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둥그런 모둠 형식의 자리마다 가운데 간식으로 부어스트 wurst라 부르는 독일 소시지가 얇게 썰어진 채 접시에 도미노처럼 쓰러져 있다. 겔브 부어스트, 바이스 부어스트, 마늘 부어스트 등이 있는데 수사들은 이를 독일 순대라고 불러서 한바탕 고요한 회당에서 웃음소리가 성가처럼 흘러나오기도 했다. 프로그램 감수를 맡은 노인도 자리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주일 미사를 빠지면서 신앙적으로는 냉담자가 되었지만 수도회 일이라면 언제든 달려와 돕고는 했다.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지도요령이나 방법과 적절한 시를 고르는 일까지 내 일처럼 마음과 시간을 쓴 노인이었다.
시로 자신의 아름다움과 재능을 뽐내는 것도 좋지만 시낭송의 다른 활용과 기능의 확장면에서 이번 기획은 획기적이라 판단했고 호응도 컸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이었는데 문의가 넘쳐 매주 한 번씩 10회 분의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시를 빔프로젝터로 보여주고 간단한 묵상 주제를 지도 수사가 던져주면 참석자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들려오는 시 낭독을 천천히 음미하며 내면 치유와 외적 화해를 시도했다. 지금 나오는 시 낭독은 특별히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노인이 녹음한 것이다. 한 행을 천천히 읽고 충분한 퍼즈를 둔 후 다음 행을 읽어가기를 두 번 반복했다. 한 켠에선 흐느끼는 소리도 들리기도 하고 콧물을 몰래 들이키는 이도 있어서 은밀하게 방 안에 뿌린 최루탄처럼 이내 곳곳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울한 분위기였다기 보다는 오히려 환희에 가까워서 웃는 눈물 같았다. 그 과정은 채 15분에 불과했고 각자의 이야기를 시에 곁들여 나누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때엔 이곳저곳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경박한 수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야말로 속 깊은 치유 끝의 촉촉한 웃음이었다. 시낭송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 노인은 감사의 화살기도를 자신도 모르게 바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