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79회

보도블록은 행인의 리듬이 아니다

by 이숲오 eSOO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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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왕복 2차선 도로를 왼쪽에 둔 보도블록 위를 걷고 있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자동차를 제외하곤 어떠한 소음도 없는 한적한 길이다. 보도블록은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직사각형 모양이 동서남북 방향을 틀며 마주하는 패턴이었다. 여덟 개의 블록이 하나의 통일된 모둠을 형성한다. 멀치감치 떨어져 보면 물 위의 파문이 일정하게 일고 있는 듯 보였다. 하나의 블록 크기는 성인 발 크기와 딱 맞았다. 소년은 갑자기 선을 밟고 싶지 않아 졌다. 걷는 속도가 있어서 지금 발이 놓인 곳보다 디딜 곳으로 미리 시선이 가 있어야 실수를 막을 수 있다. 일상의 관성은 어쩔 수 없이 미래에 시선을 두게 한다. 리듬을 놓치는 순간 비로소 알게 된다. 불필요한 패턴에 부자연스러운 리듬을 맞추려 애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가고 있어도 그렇지 않아도 나의 리듬이 아니고 나의 패턴이 아니면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소년의 걸음은 우스꽝스럽다. 선을 지키려는 선의는 몸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하나의 질서를 만드니 수많은 무질서를 쏟아냈다. 채 십 미터도 가지 못하고 발을 선 위에 얹는다. 외부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몸의 리듬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무대 위에 서면 청중은 보도블록이 된다. 어떤 미묘하고 섬세한 패턴을 가진 보도블록 위에서 낭송자는 순간 얼어붙고 만다. 외형의 질서를 찾으려 하지만 무모한 시도였음을 알아차린다. 그때 신속하게 자신의 리듬을 거머쥐어야 균형을 잃지 않게 된다. 코끼리코를 하고 허리를 숙여 열 바퀴를 돌고 몸을 세운 이가 되고 만다. 눈을 뜨고 있지만 직선으로 목적지를 향해 가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이때 소년은 가장 광활한 평원이나 초원을 상상하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시간이 흐를 것 같은 공간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는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유효했던 적이 많다. 완전히 긴장을 거세시키는 청심환보다 감당할 만큼 미세하게 남아있는 이 상태가 무대에서는 적절했다. 긴장은 외부보다 내면의 문제이기에 처리보다는 관리를 해야 했다. 단단하게 하거나 유연하게 만들어야 관리가 용이하다. 완벽한 준비상태에 강력한 집중이 아니라면 자신의 루틴을 기반으로 한 몸의 흐름을 포착해 꽉 잡고 놓치지 않아야 한다. 소년은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불쑥불쑥 닥치는 긴장을 다스리는 마인드 컨트롤을 시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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