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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Sep 09. 2022

당신의 '갱년기'는 어떤가요?

벌떡 눈이 떠진다. 명치 한가운데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2시 30분.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잠을 청한다. 나 왜 이러지? 불안증인가? 공황장애인가? 스스로 제어되지 않는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가 어색하다.      


“갑자기 얼굴에서 땀이 쏟아져서 화장을 할 수가 없어.”

“열기가 확 오르면 너무 기분이 나빠.”

“차라리 땀 흘리는 운동을 하는 게 도움이 돼”     


이미 이런 상황을 겪고 있던 언니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갱년기’ 증상이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부터 임신 때를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생리주기에 맞춰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생리가 석 달째 소식이 없다. 심지어 출산 후에도 한 달 만에 울컥 생리가 시작되었다. 모유수유를 하는 데도 말이다. 한 달된 신생아를 안고 ‘큰 병이 생겼나? 출산 과정에서 뭐가 잘못됐나?’ 걱정하는 내게 엄마와 언니들이 집안 내력이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그냥 받아들이라나.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내 몸의 난소가 난자를 배출하느라 이제 지쳤나 보다.      


갑자기 등부터 훅 열기가 올라오던 것은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겨울에 그러는 것은 괜찮았으나 여름에는 부채를 손에 쥐고 있어야 했다. 한국에서는 일단 증상이 심하지 않았다. 일을 하고 있었고, 헬스장과 저녁 산책, 바쁘게 보내는 일상으로도 그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아부다비에 와서 한가한 생활을 하다 보니 몸의 변화가 더 신경 쓰이고 거슬린다. 어차피 더운 나라에 있으니 열이 오르는 것은 에어컨이 막아준다 쳐도 심장이 두근거리며 한밤중에 잠이 깨는 증상은 무척 당황스럽다. 살짝 잠잠했던 갱년기 증상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하루에 몇 번씩 등줄기부터 얼굴까지 예고도 없이 열이 나고 땀이 흐른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피부 아래에 스멀스멀 뭔가가 지나가는 듯하다. 갑자기 짜증이 나기도 하고, 의욕이 없어져 만사가 귀찮다. 무기력해지니 차라리 피곤했으면 좋겠다. 내 몸의 변화에 또르르 눈물도 흐른다.     

 

한국 같으면 뭐라도 일을 찾아 바쁘게 생활하면서 이 시기를 지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고요한 아부다비에서는 딱히 할 것이 없다. 가끔씩 이웃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몰에 가서 쇼핑을 하는 것 외에는 맘에 드는 활동을 찾기 어렵다. 우울한 기분에 휩싸이기 싫어서 드라마나 영화를 켜놓는다. 책을 집어 들고 집중하려 애써본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유튜브를 틀어놓고 타바타 운동을 한다. 에스트로겐이 많다는 두부와 석류를 사다 놓고 수시로 먹는다. 나의 불쾌한 기분이 부글부글 쌓이지 않도록 빨리 털어버리려 한다.     

그래도 가끔 증기 기관차가 증기를 내뿜듯 어디론가 비명을 지르고 싶어 진다. 재수 없을 땐 그 분출의 표적이 남편이나 딸이 된다. 우다다 짜증을 쏟아놓고 갱년기니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이 꼭 십 대 사춘기같다. 갑자기 오물을 뒤집어쓴 남편과 딸은 개념치 않는다. 오히려 잘 먹고, 좋은 시간 보내라며 위로를 해준다. 근데 그게 또 속상하다. 망할 놈의 갱년기.       


갱년기라는 것은 에스트로겐이 나오던 것이 안 나오는 단계로 몸이 전환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시기다. 그래서 혹자는 갱년기가 아니라 전환기라고 부르자고 한다. 몸이 전환되는 시기. 나만 유난한 것도 아니고 모든 여성들이 겪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성숙하게 갱년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폭풍 같은 사춘기를 보낸 아이들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듯 나도 중년의 아줌마로 우아하게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까?     

 

새로운 몸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찝찝한 생리대는 안녕. 양이 많은 날 뒤척이는 잠자리도 그만. 여행 갈 때 생리주기를 걱정하는 것도 안 해도 된다. 대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골다공증의 위험이 높아지고, 관절염이 쉽게 올 수 있으며, 요실금을 준비해야 하고, 뱃살이 두둑해진다. 속이 쓰리지만 어쩌랴. 갱년기라고 얼굴찌뿌리고 있을 순 없다.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지만 지금은 ‘갱년기’라는 머리띠를 하고 여왕처럼 호사를 누릴 기회다.      

 

에잇! 오늘은 모든 집안일을 제쳐두고 피자 한판을 시켜야겠다. 재밌는 책 한 권 들고 침대로 가서  읽다 졸다를 반복하며 게으른 일상을 보내도 스스로에게 자책하지 말아야지. 이 시간을 즐길란다. 

난! 갱년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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