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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Oct 06. 2022

세상과 이어지는 보석 같은 순간

문화로 이어지는 향기


지금까지 열 두 종류의, 여러 가게에서 나온 향을 소개하면서 오직 향기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향은 어떤 역사를 가진 어느 가게에서 나왔고, 어떤 향기를 지향하며, 모티프가 된 장소는 어떤 곳이고, 그 장소는 어떤 내력을 가지고 있는지…… 하는 긴 이야기를, 짤막한 꼭지들이지만 담아 보려고 노력했어요.


사카이마치101(堺町101)은 오래된 절에 약재를 유통하면서 시작한 가게의 역사와 현재를 그대로 이미지해서 만든 향이고, 무사시노 하츠카제(むさしの初風)는 풀잎을 눌러 쥐는 가을의 첫 바람을 노래한 시를 향기로 표현했습니다. 관적침향(觀寂沈香)은 내 안의 고요함을 관조하며 잡념을 없애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초매향(初梅香)은 천 년 전, 송나라 때 시인이 읊었던 매화의 향기를 절로 떠올리도록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이 향기에 담긴 이야기이고, 가게에서 나온 제품에서 담긴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동봉된 설명서를 읽거나 향이 만들어진 가게 홈페이지를 참고하러 가면, 그 제품이 어떤 테마로 만들어진 향인지, 재료는 무엇인지, 어떤 의도로 조향했는지 같은 설명이 제법 상세하게 쓰여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시리즈는 이 가게에서 생각하는 향기의 면모들을 꽃이나 바람 같은 구체적인 요소로 형상화한 것임을 새삼 알게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장소를 모티프로 한 제품이라면 그 내력을 알게 됩니다.


고전 시에서 제품 테마를 따 온 경우에는 테마가 된 시를 현대어로 옮기면 어떻게 되는지, 시를 읊은 인물은 누구인지, 시인의 심상은 어떻고 그 심상이 향으로 표현되었을 때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을 찾아 보지요. 이렇게 제품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 나가면 향을 즐기는 재미도 두 배가 된달까요. 이를테면 무사시노 츠키카게(むさしの月かげ)의 패키지를 열어서 피울 때, 단지 백단과 자스민 향기를 맡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가을의 쓸쓸함과 벌판 위로 떠오르는 달을 떠올릴 수 있다니 무척 아름답지 않나요? 이 기획이 미술관과 향당 사이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런 디테일을 찾아보고 확인하고 전하는 일은 확실히 즐겁습니다. 시와 장소와 향기, 향당과 미술관이라니 문화와 문화 사이 교류를 엿보는 기분이기도 하지요.


도쿄 일대를 이미지로 해 전통 시에서 이름을 따 온 무사시노 시리즈.


도쿄 향아당의 가게 2층에서는 향 수업과 체험 세션, 다도, 향도 모임 등이 이루어지고 있어 향을 중심으로 한 문화 살롱 같은 역할을 합니다.


단순히 상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스토리가 있는 상품, 스토리가 있는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화입니다. 문화 속에 안긴 제품은 물건 하나라는 가치를 넘어서 문화의 고리를 통해 세상과 나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하고, 세상 속에 있는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지요. 그런 연결, 그런 가능성을 이 향 이야기들을 통해 느껴 주셨다면 무척 기쁘겠습니다.


무엇보다 향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입니다. 여기서 소개드린 향 이야기들을 통해서, 내 일상에 피어오르는 향기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만들어졌고, 어디서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아시게 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감각의 체험을 넘어서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끈을 느끼는 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즐기는 취미이지만, 그 향기가 만들어져서 나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수많은 이야기를 알게 됨으로써요.



그리고 향을 맡으며 떠오르는 여러 풍경, 여러 심상을 제가 느낀 대로 소개했지만, 사람마다 체험에 대한 감상은 다르겠지요. 만약 이 글들을 보시고 같은 제품을 태워 보신다면 그 감상이 비슷할 때도 있지만 분명 다를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런 때 나만의 느낌, 나만의 풍경을 찾아 보신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일 거예요.  


책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아직까지 소개하지 못한 향도 많고, 또 여러분께서 향을 맡으며 새로운 풍경을 상상하신다면, 향기에 대한 이 이야기는 하나로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무궁무진하게 이어지는 모습이 되겠지요. 마치 무럭무럭 피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구름에 섞이는 향연처럼…….


그렇게 삶의 시름을 덜 때, 노곤한 어느 밤에, 기다리던 사람이 올 때, 날씨가 너무나 좋은 주말 낮에.


언제든지 여러분의 하루하루에 좋은 향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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