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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Oct 06. 2022

화려한 페르시아 정원의 밤: 타카이쥬에몬 2018

싱그러운 꽃과 나무들이 가득한


비록 꽃을 좋아한대도 좋아하는 꽃이 특별히 있고, 음악을 좋아한대도 좋아하는 곡이 따로 있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향을 좋아하는 저이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재료라고 한다면 먼저 나긋하고 도타운, 질 좋은 백단향, 그리고 시트러스 계열 향기들을 좋아하니 새큼상큼하면서도 고아한 풍취가 있는 유향. 더불어 숲이나 정원, 다소 묵직하고 우디한 향도 좋아하기에 숲 속을 걷는 것 같은 시더우드는 언제나 제가 선호하는 조합입니다.


그런 저에게 백단, 유향, 시더우드, 화이트 머스크 조합의 향이라니오. 재료에 먼저 눈이 번쩍 뜨이고, 교토의 유서 깊은 향 가게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과감한 조합이 두 번째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코쥬(香十) 타카이쥬에몬(高井十右衛門) 2018. 동봉된 설명으로는 '온화한 백단과 화이트 머스크가 매끄럽게 어우러지고, 시더우드와 유향이 단정한 청량감을 자아냅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불을 붙여 볼까요. 모든 향에는 각자의 감상이 있고, 이 타카이쥬에몬(高井十右衛門) 2018도 가게에서 내놓은 설명을 넘어 저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듬뿍 기대가 되니까요.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귤 향을 닮은 산뜻한 유향입니다.


비파 타는 소리처럼 펼쳐지는 유향에서는 꼭 물기 어린 밤의 푸른 식물들도 연상이 됩니다. 소리를 따라 밤길을 걸어가 보면, 하늘에는 푸르고 얇은 달, 달빛 드리운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하얀 궁전이 있지요. 탑탑하고 부드러운 백단에 얹힌 고혹적인 사향입니다. 향긋한 향기를 따라 불을 밝힌 실내로 들어가면 지붕 아래 커다란 연못에 띄워 놓은 뱃놀이 위에 노란 불이 어른어른하고, 창에 드리운 주렴을 흔들며 바깥으로 불어 나가는 시원한 바람 같은 시더우드.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도 지정된 페르시아의 정원에는 항상 물이 흐르고 있지요. 그 정원에 찾아든 밤을 상상하실 수 있으신가요?



머스크의 화려함과 유향의 산뜻함은 섬세하게 세공된 컬러풀한 장식을 떠올리게 하고, 타카이쥬에몬 시리즈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물기는 싱그러운 꽃과 나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야말로 페르시아 정원에서의 여름 휴가와 같네요. 백단과 시더우드, 머스크의 조합에서 나오는 두터움에서는 돋을새김으로 무늬가 들어간 두툼한 금 접시가 연상됩니다. 백단의 질이 좋은 것도 이 모든 인상을 받쳐 주는 한 요소가 됩니다. 엄숙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영화로운 왕정 시대의 풍경이 꼭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향.



요즘은 집에서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곤 합니다. 티 라이트의 빛, 밀랍 양초가 타면서 내는 지글지글 심지의 소리. 그리고 코쥬의 타카이쥬에몬(高井十右衛門) 2018이면, 거실은 단번에 찌르레기가 우는 밤의 정원이 되고, 벗겨진 과일 껍질에서 풍기는 달큰한 향내, 야자나무 잎의 그림자가 살랑살랑 감은 눈 앞에서 일렁입니다.


이런 때라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향 연기도 한 편 무희의 춤 같고, 이 세상에 있을 리 없는 신비한 향연으로 자욱한 전설 속 한 장면이 코끝에서 눈앞으로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향 가게 이야기



코쥬(香十)는 지금으로부터 450여년 전, 황궁에서 향을 전담했던 관리인 야츠다 마타에몬이라는 인물로부터 시작한 가문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대대로 황실에서 사용하는 향을 다루었으니 집안에 내려오는 지식이며 비전이 상당했겠지요.


그 중 8대, 타카이 쥬에몬(高井 十右衛門)이 천황에게 진상하는 향을 새롭게 배합하고 향에 관한 문헌을 정리하며 다도 세계에서도 활약하는 등, 가문의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어 이후로 코쥬의 가주는 쥬에몬(十右衛門)이라는 이름을 이어받도록 되었다고 합니다.


코쥬의 타카이쥬에몬(高井十右衛門) 시리즈는 그런, 가문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뒤에 붙은 연번은 그렇지만 또 최신 기술로 만들어낸 현대의 조향임을 나타내고요. 1575, 2018, 2019, 세 시리즈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2018을 소개드리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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