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하나 되는 의미-사마디

안으로 향하는 감각

by 김덕분

사마디 Samadhi

직접 닿지 못한 산을, 지도의 선과 다른 이들의 여정기를 따라 그려보는 마음으로…나마쓰데


여덟 번째 가지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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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잘리는 『요가 수트라』에서 요가의 길을 여덟 단계로 정리한다.

야마–니야마–아사나–프라나야마–프라티야하라–다라나–디야나–사마디.

이 가운데 사마디는 마지막, 여덟 번째 가지(림, limb)로 제시된다.


사마디(Samadhi)라는 말의 어원을 풀어보면

sam + a + dha

‘함께’ + ‘완전히’ + ‘놓다/두다’라는 뜻을 가진다.

여럿을 하나로 모으고, 고르게 하고, 집중하여 통합한다는 뉘앙스가 여기에 들어 있다.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서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이 말들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사마디는 “마음의 모든 조각이 하나로 모여 더 이상 흩어지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지 않을까?



경전 속의 사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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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탄잘리의 사마디


『요가 수트라』 1장에서는 사마디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삼프라즈냐타 사마디와 아삼프라즈냐타 사마디.

-삼프라즈냐타 사마디 (samprajnata samadhi)

이 상태는 비타르카(사유), 비차라(관조), 아난다(희열), 아스미타(‘나’라는 감각)의 네 가지 성질을 따른다고 설명된다. 아직 아주 미묘한 ‘대상’과 ‘알아차림’이 남아 있는, 의식적인 집중의 절정이다.

-아삼프라즈냐타 사마디 (asamprajnata samadhi)

이 단계에서는 모든 마음 작용이 멎고, 습관적인 인상(삼스카라)만 남아 있다고 한다. 생각을 일으키는 힘마저 잠잠해지고, 말 그대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 집중만 남는다.


후대의 해설가들은 이 둘을 다시 사비자(‘씨가 남은’ 사마디), 니르비자(‘씨 없는’ 사마디) 로도 부른다. 씨가 남은 사마디에는 아직 미세한 집착의 씨앗이 있고, 씨 없는 사마디는 그마저도 소멸한 상태라는 뜻이다.


이 분류들을 따라 읽다 보면, 사마디는 “어느 날 번쩍 열리는 황홀한 한 순간”이라기보다

점점 더 미세해지는 집중과 고요의 스펙트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2.삼야마(Samyama)로서의 사마디


파탄잘리는 요가 8단계 가운데

다라나(집중)–디야나(명상)–사마디(삼매)

이 세 단계를 묶어 삼야마(Samyama, 통합)라고 부른다.

-다라나 : 특정 지점에 마음을 묶어두는 일

-디야나 : 그 대상에 대한 의식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상태

-사마디 : 주체와 대상의 구별이 사라질 만큼 깊어진 하나 됨


사마디는 이렇게, 삼야마라는 연속적인 흐름의 끝에서 열리는 집중의 결실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스승들이 들려주는 사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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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농축된 문장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 주는 건, 현대 스승들의 몫이다.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사마디를

“무의식도, 의식도 아닌, 그 둘을 초월한 초의식(superconscious)의 상태”라고 말한다.

-B.K.S. 아이엥가는 사마디를

“보는 이(주체), 보는 행위, 보이는 대상이 구별 없이 하나가 되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이때 의식은 완전히 통합되고, 흩어지던 마음의 움직임은 고요해진다.

두 사람 모두, 사마디를 ‘아무 생각도 없는 백지’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은 가장 또렷하지만, 분리된 ‘나’의 감각이 아주 옅어진 자리로 설명한다.



다른 전통에서 비추어 본 사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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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디와 비슷한 자리를 가리키는 개념은 다른 전통에도 있다.

-『바가바드 기타』 2장에서는

“확고한 지혜의 사람(스티타프라즈냐, sthita-prajna)”을 묘사하며 기쁨과 고통, 이득과 손해, 칭찬과 비난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평정한 마음을 이야기한다. 많은 해설가들은 이것을 일상 속에 드러난 사마디의 모습으로 본다.

-불교에서는 팔정도 가운데 하나로 ‘정(定, samadhi)’를 둔다. 깊은 선정(禪定) 속에서 탐·진·치가 점점 희미해지는 상태를 지향하는데, 요가의 사마디와 본질적으로 깊게 닮아 있다.

여러 전통의 언어를 포개 보면, 사마디는 초월적인 황홀경이라기보다 “분별이 잠잠해지고, 존재 전체가 한결같이 고요해진 의식의 상태”라는 느낌이 든다…



경험하지 못한 단계를 글짓기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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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사마디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글은 공부의 기록에 가깝다.


경전의 정의를 읽어보고, 스승들의 글귀를 따라가다 보면 사마디는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는 기적 같은 사건이라기보다, 야마·니야마에서 삶과 관계의 태도를 정리하고, 아사나와 프라나야마로 몸과 숨의 길을 다듬고, 프라티야하라와 다라나, 디야나를 지나며 마음을 고요히 모아 간 끝에 열릴 수 있는 어떤 의식의 문처럼 느껴진다.



덕분에요가가 바라보는 ‘일상 속 사마디의 씨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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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요가의 수련과 글쓰기를 떠올려 보면,

1부에서 다루었던 장소들…

집 · 골목길 · 놀이터 · 건축물 · 공원 · 차 · 산 · 강 …

이 모두가 사실은 “조각난 사마디의 순간들”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집에서, 한 호흡에 온전히 머무를 때

-골목길 계단에서 단다아사나로 ‘과정 자체’를 온전히 느낄 때

-강가에서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로 비와 물안개, 몸과 숨이 하나로 엮일 때

<SAMADHI>

아주 짧지만, “지금 이 순간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듯한 고요“가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사마디는, 이런 작은 고요의 순간들이 가장 깊은 층위까지 이어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 깊은 곳까지 닿지 못했지만, 일상의 작은 수련 속에서 그 씨앗을 계속 심어 보고 싶다.



사마디를 향한 수행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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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잘리는 “신앙, 정진, 기억, 삼매, 지혜가 함께할 때 그 길이 깊어진다”

고 말한다_『요가 수트라』 1장 20절


이 구절을 지금의 나대로 풀어 보면 이렇게 정리된다.

-신앙 : 아직 보지 못했지만,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믿는 마음

-정진 :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몸과 숨, 감각을 다듬는 연습

-기억 : 수련 속에서 스쳐 지나간 작은 고요의 순간들을 잊지 않는 일

-삼매(사마디) : 언젠가 그 고요가 끊어지지 않는 상태로 깊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지혜 : 그 경험이 나만의 만족으로 끝나지 않고, 타인과 세상을 향한 연민과 연결로 흘러가도록 하는 통찰


사마디 편의 글쓰기는 언젠가 그 고요를 조금 더 분명히 감각하게 된다면, 그때의 경험을 덧붙여 이 페이지를 다시 고쳐 쓰고 싶다.


지금은, 경전과 스승들의 글귀를 빌려 그 방향만 조심스레 가리켜 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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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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