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 첫해 일기
삽을 든다는 건 단순히 흙을 파는 일이 아니다. 도시의 속도 속에서 잊고 지낸 느림과 순환의 감각을 되찾는 일이다. 처음으로 흙을 밟고, 잡초와 씨름하며, 살아 있는 시간의 리듬을 배운다. 땅은 우리에게 말한다 — “비워둔 자리엔 언젠가 다른 생명이 자란다.”
5월 초, 직장 동료들과 함께 도시농업에 도전했다. 생애 처음으로 흙을 밟고, 삽을 들었다. 350개의 구획 중 하나를 분양받아 상추, 파, 고구마를 심었다. 장소는 대전 유성구 복용동 공영도시농업농장 — 시민들이 분양받아 직접 경작할 수 있는 공공 도시농장이다.
농장에 도착한 첫날, 나는 내 구획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3평 남짓한 땅. 도시에서는 작은 평수지만, 막상 맨땅으로 마주하니 꽤 넓어 보였다. "여기를 다 채워야 하는구나." 삽을 들자 손바닥에 땀이 났다.
농장에는 무료로 빌릴 수 있는 농기구가 있고, 흙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있다. 누군가는 물을 주고, 누군가는 풀을 뽑고, 또 누군가는 그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다. 나도 그 풍경 속의 한 사람이 되었다.
상추는 놀라웠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푸른 잎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5월, 6월에는 5일 간격으로 찾아가 수확했다. 톡, 톡, 손끝에서 상추가 떨어질 때마다 묘한 쾌감이 있었다.
"이게 진짜 내가 키운 거야?" 첫 수확물을 들고 동료에게 보여줬을 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네가 심었잖아." 그 순간만큼은 도시의 일상이 멀게 느껴졌다.
그러다 장마가 왔다. 일주일간 비가 내렸다. 장마가 끝나고 일주일 만에 농장을 찾았다. 내 구획은 온통 초록빛이었다. 처음엔 반가웠다. '상추가 이렇게 자랐나?'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달랐다. 잡초였다. 고랑을 덮고, 빈 공간을 가득 메우고, 심지어 상추 사이사이에도 파고들어 있었다.
'이놈의 잡초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심지도 않은 녀석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내가 애써 심은 작물들은 정성을 들여야 겨우 자라는데, 잡초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왕성하게 번식했다.
모종을 심고, 한 땀 한 땀 신경 쓰고, 물을 주고, 또 물을 주고. 그렇게 애써 키운 작물들은 더디게 자랐다. 그런데 잡초는 내가 관리하지도 않았고, 물도 주지 않았는데 나무처럼 쑥쑥 컸다. 그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
더 놀라운 건, 잡초는 빈 공간을 절대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작물을 심지 않은 곳, 고랑 사이, 구획 모서리, 심지어 작물 바로 옆 — 1cm의 틈만 있어도 잡초는 그곳을 차지했다. 마치 "이 땅에 주인 없는 공간은 없다"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그때 첫 번째 깨달음이 찾아왔다. 농사는 결국 공간을 지키는 일이구나. 내가 돌보지 않는 순간, 그 자리는 금세 다른 생명에게 내어주게 된다.
다른 구획도 사정은 비슷했다. 모두가 허리를 숙이고 잡초를 뽑고 있었다. 옆 구획 할머니가 허리를 펴며 말했다. "작년엔 안 이랬는데 말이야. 올해는 비가 많아서 그런가 봐."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같이 웃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때는 잡초를 부지런히 뽑았다. 쪼그려 앉아 한 뿌리, 한 뿌리 뽑아낼 때마다 내 땅을 지킨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름이 깊어지면서 무더위가 찾아왔다.
7월, 8월.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굽히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노동이었다. 주말마다 가던 농장이 2주에 한 번, 3주에 한 번으로 뜸해졌다. 그사이 잡초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6월 중순에 늦게 심었던 부추는 이미 잡초 사이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어디가 부추고 어디가 잡초인지 구분조차 어려웠다. 결국 포기했다. 농장에 갈 때마다 잡초 숲을 헤치고 사이사이로 상추를 따고 파를 뽑았다. 처음의 단정했던 구획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러려고 시작한 건 아닌데...'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내 구획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옆 구획들은 여전히 말끔했다. 그들은 어떻게 저렇게 유지하는 걸까.
그렇게 여름이 지나갔다.
9월 어느 저녁, 퇴근 후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었다. TV에서는 EBS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을 움직이다 문득 화면을 올려다봤다. 〈잡초 선생〉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화면 속 초록 잎사귀들이 낯설지 않았다. 내 구획을 점령했던 바로 그 녀석들이었다.
빨래는 그대로 바구니에 남겨둔 채, 나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잡초는 지구가 태어나서 멸망할 때까지 함께할 존재였다. 인간이 만든 개량종과 달리,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존재. 그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 잡초에도 다 이름이 있었다. 강아지풀, 쇠비름, 달맞이꽃, 며느리배꼽... 이름도 예뻤다. 내가 무심코 뽑아냈던 것들이 각자의 이름을 가진, 수천 년을 이어온 생명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경험 속에서 관심이 확장되는구나.'
농사를 하지 않았다면, 잡초는 그저 '길가의 풀'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흙을 만지고, 뿌리를 뽑고,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맞서 싸워본 뒤, 나는 비로소 그들을 '보게' 되었다.
궁금증이 생겨 더 찾아봤다. 알고 보니 잡초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다.
약 12,000년 전,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인간은 특정 식물을 골라 '작물'이라 부르고, 나머지는 '잡초'로 구분했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잡초가 본질적으로 나쁜 게 아니라, 그저 우리가 원하는 자리에 있지 않았을 뿐이구나.
아스팔트 틈에서 자라면 잡초지만, 숲속에 있으면 그냥 풀인 것처럼.
우리가 오늘날 주식으로 먹는 밀, 보리, 쌀도 모두 과거에는 야생의 풀이었다. 인간이 재배하기 쉽도록,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수천 년에 걸쳐 개량한 결과다. 이렇게 개량된 작물들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인간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반면 잡초는 다르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번성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 잡초의 생명력에 주목하는 연구가 활발하다고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잡초의 유전자를 작물에 이식하여, 병충해에 강하고 가뭄에도 잘 견디는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연구다. 잡초를 적으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생명력을 배우고 활용하려는 시도. 흥미로웠다.
그 후로 출퇴근길 풍경이 달라졌다.
도로 아스팔트 틈새, 보도블록 사이, 건물 담벼락, 주차장 모서리 — 도시 곳곳에 잡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저 쑥도 어딘가에서 씨가 날아와서, 저 작은 틈을 찾아 정착했겠지.'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누가 물을 주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스스로 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렸다. 콘크리트 도시에서 1cm의 흙만 있으면 살아남는 그 생명력이 경이로웠다.
그러는 사이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다.
10월, 봄에 심었던 고구마를 캘 때가 왔다. 삽을 넣고 조심스럽게 흙을 들어 올렸다. 얼굴만 한 고구마들이 흙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묻은 흙을 털며 동료들과 웃었다. "이게 진짜 우리가 키운 거야."
5개월의 시간이 이 순간에 응축되어 있었다. 뙤약볕 아래 잡초를 뽑던 날들, 장마 뒤 걱정스럽게 달려가던 날들, 무더위에 지쳐 발걸음이 뜸해졌던 날들. 그 모든 날들이 이 얼굴만 한 고구마 속에 담겨 있었다.
고구마를 씻으며 생각했다. 이 흙냄새, 내년에도 맡고 싶다고.
첫 농사는 성공과 실패가 섞여 있었다. 상추는 풍성했지만, 부추는 잡초에 묻혔다. 완벽하게 관리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배운 게 많았다.
농사를 하면서 배운 건, 땅은 스스로 빈 채로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비워둔 자리는 누군가의 것이 된다. 잡초로, 낙엽으로, 이끼로. 자연은 진공을 허용하지 않는다.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도 비슷한 게 아닐까.
내가 채우지 않은 시간도 결국 무언가로 채워진다. 상추를 심으면 상추가, 고구마를 심으면 고구마가, 아무것도 심지 않으면 잡초가. 중요한 건 '무엇'으로 채워지느냐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내년에는 다른 작물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상추처럼 금방 크는 것들만이 아니라, 좀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작물들도 키워보고 싶다. 그리고 잡초 이름도 몇 개쯤 외워서, 다음엔 좀 더 다정하게 뽑아주고 싶다.
올해는 여기서 마무리하지만, 내년엔 다시 삽을 들 것이다.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고, 잡초와 씨름하면서, 또 무언가를 배우게 되겠지.
빈 땅은 스스로 빈 채로 있지 않는다. 내가 심지 않으면, 자연이 알아서 채운다.
농사는 흙의 일기이자 나의 시간 기록이었다. 돌보지 않으면 잡초가, 손을 대면 생명이 자란다. 빈 땅이 스스로 비워져 있지 않듯,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무엇으로 채울지, 어떻게 돌볼지. 그 선택이 우리의 다음 계절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