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짝사랑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by 빛길

짝사랑을 해본 적 없다는 건 내게 꽤 자랑스러운 점이었다.

가족, 친구, 연인 등 상대가 누구든

짝사랑만큼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은연중에 품고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내 사랑은 꽤 계산적인 편이었다.

상대방의 사랑이 내 사랑의 양에 못 미친다는 판단이 들면 서운한 마음을 갖기도 전에 거리를 두고 멀어졌으니

이제 와서 생각하건대 분명 나는 여러 명의 사람을 서운하고 억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내가 얼마 전 짝사랑을 '깨달았다'.

'했다'가 아닌 '깨달았다'로 문장을 마친 이유는 말 그대로 내가 짝사랑을 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단순히 A에 대한 호기심인 줄 알았다. A가 내게 다가와주길 기다리며 주위를 빙글거리다가,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먹지 못한 신 포도를 본 양, A를 '나와 별로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을 했다.


A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2년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오랜만에 본 A에게 여전히 다가가지 못하는 나를 보다가, 또 내게 먼저 다가와주지 않는 A에게 못내 서운해하다가, 결국엔 A가 미워져버렸다.

미움의 감정을 인정하고 나서야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다는 것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이 미움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년을 돌고 돌아 깨달은 짝사랑에서 엄마의 냄새가 났다.

나를 사랑한다던 엄마.

나의 사랑을 측정하던 엄마.

늘 사랑이 모자라다며 서운해하던,

그래서 나를 미워했던 엄마.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것은 엄마의 강한 자존심에, 특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엄마의 사랑법은 나를 질리고 부담스럽게 했다.

나를 사랑한다던 엄마가 미운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할 때마다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했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짝사랑 상대로서 괴로웠던 나의 기억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사람이 되기는 싫다.

그래서 사랑하되 미워하지 않으려 애쓰기로 했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있다, 나는 성장하는 중이다.

이러한 보편적 사실에 기초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제 짝사랑을 해봤다는 건 내게 꽤 자랑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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