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게으르게 살기로 했다

by 빛길

어제는 오랜만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꿈을 꾸었다.
종종 이런 꿈을 꾸는데, 그나마 요즘은 그 빈도가 많이 줄었다.

사실 21살까지 꿈 속에서 나는 매일 고등학생에 머물러 있었다.
꿈을 꾸기만 하면 아간자율학습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모의고사를 보다가 깨는 것이었다.
대학교에 2년이나 다녔는데도 무의식의 내가 십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지만 그건 정말이었다.

학창시절의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쳐야 한다는 강박이 컸고,
솔직한 것보다 나를 감추는 데 더 익숙해있었다.
나는 불완전하니까, 최선을 다해도 모자라다는 생각에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봤다.
타인의 마음에 신경을 집중하다보니 정작 나 스스로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진짜 나라고 믿었다.
나는 둔한 편이지.
나는 잠이 많지.
나는 사교적인 성격이지.
나는 에너지가 넘치고, 적극적이고, 장난기가 많고, 비밀스럽고, 순진하고......

그러나 실제의 나는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에 가까웠고,
그 기저에는 늘 나에 대한 밉고 나쁜 마음이 함께 했던 것 같다.
다만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했을 뿐.

자기에 대해 생각할 마음의 여유나 의지도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모두 잠을 자는 데 쏟았으니까.
시간을 쪼개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고 했지만, 사실 그렇게 비효율적인 스케줄도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쳇바퀴 속에 머물러 있었다.
바쁜 것에 희열을 느꼈고, 쉬는 것이 불안했다.
성인이 되면 입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대학생이 된 나에게 늘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고 경쟁과 새로운 입시의 연속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바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이 상황을 만든 것은 나라는 사실이 더 화가 났다.

무의식의 나는 꿈꾸던 이상과 다른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 때의 강박이 하나의 트라우마가 된 것일까.
꿈 속에서는 고등학생의 일상을, 현실에서는 대학생의 일상을 보내는 코미디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작년 겨울 쯤부터 나는 습관적으로 "날라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고 다닌다.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진심이 반쯤 섞인 말이기도 하다.
마음 놓고 게으른 일상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일, 가지 않던 곳, 먹지 않았던 음식, 만나지 않던 사람들을 접하며
낯선 게으름, 낯선 일상 속에서 새로운 나를 꺼내보고 싶기도 하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아직도 서투르지만
나는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더이상 꿈 속에서 쳇바퀴를 돌리다 깨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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