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없는 나에 대해

by 빛길


내가 열한 살 때 1년간 대전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집안사정으로 이천에서 다니던 학교를 잠시 떠나게 된 것이다.
새로 간 학교는 전교생이 육, 칠십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골 초등학교였다.
논밭 가운데 문구점도, 분식집도 없이 생뚱맞게 자리잡은 학교.
새로운 분위기와 친구들, 오래된 교실의 마룻바닥과 좁은 운동장.
당최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곳이었지만 '적응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자존심이 상해, 친구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다, 틈만 나면 학교 1층에 있는 1541 콜렉트콜 전화기를 붙잡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나의 눈을 반짝이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장구'였다.
방과 후 수업으로 사물놀이반이 있었는데, 우리 학교 학생 대부분은 사물놀이를 배웠다.
(워낙 시골이라 학교 이외에는 놀 곳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에 오래 남아있곤 했다.)
사물놀이 저학년부인 동생을 기다리다가 고학년 언니들이 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고 다음날 바로 사물놀이반에 들어갔다.

장구채를 잡았지만 나는 장구에 재능이 없었던 데다가, 먼저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던 친구들의 진도를 따라 가기도 벅찼다.
담당 선생님은 이런 나를 유심히 보시더니 며칠 후 징 채를 쥐어주셨다.
징을 치던 학생 한 명이 꽹가리 파트로 넘어가면서 징을 칠 사람이 부족하고 징을 배우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구, 북, 꽹가리, 징. 나는 이 중 징이 제일 싫었다.
이유는 단 하나. 화려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팔놀림 속에서 한 번씩 게으르게 울려대는 징은 대단할 것 없이 '누구나'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를 '누구나'로 만들어주는 존재.
내게는 징이 그랬다.
바짝 약이 올라 징을 치다가 결국 눈물이 터지니, 선생님이 나를 불러 왜 우느냐고 물었다.
"징을 치기 싫어요. 무겁고 재미도 없어요."
핑계였다. 징을 치기 싫은 것은 '멋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선생님은 나를 달래며 말씀하셨다.

너 징이 얼마나 멋있고 중요한지 모르지?
사물놀이에서 징은 박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악기야.
징이 없으면 사물놀이가 아니야.

결국 나는 입을 삐죽이며 징을 치다가 사물놀이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나중에는 꽹가리 파트를 맡게 되었지만 징을 치며 미운 정이 들었는지, 꽤나 오랫동안 징 채를 놓은 것이 아쉽기도 했다.
또 사물놀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구, 언니, 오빠들과 친해지며 금세 학교에 적응하고, 정이 들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추억과 사랑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멋없고 게으른 징이 나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 주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징은 멋없고 게으른 것이라고 말해도,
징이 사물놀이의 기본 악기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애초에 징은 존재했을 뿐,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나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도 그때의 내가 보았던 장구나 북, 꽹가리같은 것들에 움찔할 때가 많다.
종종 화려해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의미를 붙이고, 욕심내고, 좌절하고, 기가 죽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나의 존재를 위협하며 내 삶의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매우 칭찬해주고 싶다.)
징이 없으면 사물놀이가 아니듯,
내가 없으면 내 삶이 아니다.
징의 존재로 사물놀이가 완성되듯
내 삶도 나의 존재면 충분하다.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는 요즘, 문득 징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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