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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nina Aug 28. 2020

춤추는 회복탄력성

<OPTION B>를 읽던 날 뿌리치지 못한 누군가의 손

오늘은 회복탄력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회복탄력성은 땅 파고 들어가려 하는 스스로를 땅에 발 붙이고 서 있게 하고, 그렇게 견딘 순간들이 모여 더 큰 시련과 역경이 몰려올 때 이겨내고 회복할 수 있게 하는 마음의 근육이라고 생각합니다.


회복탄력성,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
고난이나 역경에 맞서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
삶에서 부지불식간에 만나게 되는 시련, 상실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누구나에게 필요한 힘.
<OPTION B> 커버 이미지

지금의 저는 불안감의 엄습이 느껴 질때 '밖에 나가 걷자'로의 전환이 예전보다는 빨리 되는 편이에요.


마음의 근력이 조금은 탄탄해져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회복탄력성을 레벨업 시켜준 책 한권과 경험 하나를 나누고자 해요.


2년 전 이혼소송 중 남편은 저에게는 ‘잘 살아라’는 메시지를, SNS에는 의미심장한 이미지를 띄워놓고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온라인 '보육교사' 과정을 수강 중이었어요. 매주 업데이트되는 수업 수강, 퀴즈, 토론, 중간고사, 기말고사, 오프라인 수업 출석을 해야 했기에 걱정과 슬픔에만 빠져있을 순 없었습니다. 


호기롭게 짐 싸서 집을 나왔던 날도 시험기간이었어요. 아이와 함께 어딘가 숙소를 잡았고, 결혼생활을 돌아보며 밤을 새우고 싶었지만 현실은 밤샘 시험이었지요.


그러다 하루는 자격취득을 위해 결석할 수 없는 오프라인 출석수업이 있었습니다.


에어컨 바람이 불편해 여름에도 긴팔을 입는 저는 종일 찬 바람 쐴 생각에 챙길게 많았어요. 긴팔 린넨 셔츠를 입고도 제 키만큼 긴 블랙 재킷, 블랙 실크 스카프까지.


그런 모습으로 계단식 대강의실 앞에서 3번째 줄에 앉았습니다. 이왕 참석했다면 앞쪽에 앉아야 강사님 목소리도 잘 들리고 강연에 집중이 잘 되어서요.


그날은 마음이 좋지 않아 뒤쪽에 앉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강의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뒤쪽에는 자리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앞 쪽에 앉았지요.

 영화 <보통사람>의 한 장면입니다. 부산의 모 대학에서 촬영했다고 해요. 제가 여기서 수업을 들은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형태의 계단식 대강의실 이었고, 교단은 훨씬 넓었습니다.

그날 오프라인 수업의 주제는 '유아 놀이지도'였습니다.


유쾌 발랄해 보이는 강사님께서 그날은 실습이 많을 거라셨어요. 예감이 좋지 않아 브레이킹 타임에 강사님께 공손히 말씀드렸습니다.


"강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앞 쪽에 앉긴 했는데 이혼 소송 중이고 남편이 많이 걱정되는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이 닿지 않고 있어요.


늘 놀이지도 실습이 많다셔서요. 죄송하지만 제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것 같아 미리 양해 구하고자 말씀드립니다."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


주책맞은 고백 후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라도 받은 마냥 제가 가져온 책만 읽었습니다. 시종 유쾌 발랄해 보이는 강사님은 주로 앞쪽에 앉은 사람들을 지목하며 여러 가지 놀이지도 실습을 하였어요.


누구라도 예상가능한 어린이집 교사가 유아들과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행히 제 간청을 기억하신 건지 저에게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 과목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한 과목


강사님은 열댓 명의 수강생을 지목하여 교단으로 불렀고, 그 수강생들에게 각자 4명씩 마음대로 데리고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함께 마지막 춤판을 벌이자고요.


평소 저는 그런 경우에 자발적으로 나갈 수 있는 편입니다만 그날은 '제발' 하며 고개를 숙였어요. 하지만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유난스러운 복장으로 앉아있어 너무나 눈에 잘 띄었을 겁니다.


단번에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저에게 손 내민 이에게는 차마 강사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구구절절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추자, 춤'


한 손에는 하늘거리는 파란색 천이, 나머지 한 손에는 하늘거리는 빨간색 천이 쥐어졌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아이 목소리의 음악이 플레이되었고요.


50여명의 참여자들이 각자 다양한 교구를 들고 있었는데, 어떤 것들이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노래도 몇 곡 되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저는 8월의 어느 쨍쨍한 날, 검은색 재킷과 실크 스카프를 유난스럽게 휘날리며 몸부림을 쳤을 뿐이에요.


세상 황당한 마음을 무심한 표정으로 숨기려고 애쓰며 제 몸처럼 갈피를 못잡고 흐느적 거리는 파랑 빨강 빛을 머리 위에서 아래로 흔들어대며 뛰었을 뿐입니다.


퐁퐁 뛸 당시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는데, 뛰고 보니 별거 아니긴 했습니다. 이제 그 당시를 회상하면 큰 웃음이 납니다. 지금 이 글도 큭큭거리며 쓰고 있고요.

그날을 떠올릴만한 적당한 이미지를 찾다가 결국 못찾고. 검은색 긴 재킷하면 웃음과 함께 떠오르는 장면을 억지 소환해보았습니다. 드라마 <도깨비> 한 장면.

<OPTION B>
셰릴 샌드버그/애덤 그랜트 지음, 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2017


제가 교단에서 뛰기 전까지만 해도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아 수업은 듣지 않고 이 책만 읽고 있었습니다.


<OPTION B>

이 책은 <린인 LEAN IN>의 저자로도 유명한 셰릴 샌드버그가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전하는 이야기 입니다.


옵션A가 더 이상 없을 때 예상치 못하게 옵션B의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삶을 최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회복탄력성을 키우며 삶의 기쁨을 찾는 방법을 전합니다.


심리학자가 공동저자로 참여하였고 셰릴 샌드버그의 진솔한 경험담과 함께 상당히 많은 인용자료가 글에 녹여져 있습니다.


현재 페이스북 COO(최고 운영 책임자)인 저자는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당시 이혼에 대한 고민 중이었기에 사별과는 다른 지점이 많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법 여러 개의 편견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누가 선물한 책도 아니고 '회복탄력성'에 꽂혀 스스로 고른 책이면서도 그때는 인생 망한 기분에 휩싸여 있던 터라 책 한 권에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나봅니다.


불신의 눈초리로 몇 장 넘기다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기 때문이에요.

"풍요할 때는 친구들이 나를 알게 되고, 역경을 겪을 때는 내가 친구를 알게 된다"


저는 항상 '스스로 능력을 쌓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제가 도움을 청하는 것은 싫어하며 할 줄도 몰랐습니다.


이혼소송, 실업, 별거 등을 겪으면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보다 도움을 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도와 주는 가족이나 지인이 고마우면서도 도움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싫어서 힘들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계속 도움을 받고 고마움을 느끼며, 혼자라면 그 과정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란 것을 통감했습니다. 그제서야 도움은 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모래 사장에 찍힌 발자국'이야기가 책 속에 나오는데요, 그 페이지를 찍어 여동생과 제부에게 고마움의 메시지를 담아 전송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여동생은 저를 혼자 두지 않고 많은 시간 함께 했어요. 밥도 이왕 이면 맛있는 걸로 챙겨 거의 같이 먹었습니다. 제부는 와이프인 여동생을 저에게 빌려준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몇 개월 동안 한 것이고요.


제가 동생과 제부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던 부분입니다.

시인은 신과 함께 바닷가를 거니는 꿈을 노래한다. 모래사장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지만 삶이 "괴로움과 슬픔과 패배감"에 젖어 있을 때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보인다. 자신이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시인은 이렇게 항의한다. "당신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어째서 내 곁에 있어주지 않으셨나요?" 그러자 신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하는 자녀야, 한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내내 내가 너를 안고 걸었단다."

모래사장에 한 사람의 발자국만 찍힌 것은 내 삶이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져 있는 내내 친구들이 나를 안고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 내가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보았던 것은 친구들이 내가 쓰러지면 부축할 준비를 하고 내 뒤에 바싹 붙어 걸었기 때문이다.  - p.80
<OPTION B> p.80 , 노랑 형광펜으로 고맙다고 적었더니 안보여서 파랑색으로 굳이 덧칠했네요. 그날 수업 안듣고 안하던 짓 많이 했군요.

"뒤에서 항상 나를 지지해 줘서 Thanks! "


라는 메시지와 함께 전송 버튼을 눌렀습니다. 평소 한 무뚝뚝하는 사람인지라 전송하고도 머쓱했어요. 답장을 빨리 하는 여동생과 제부는 'ㅋㅋㅋ' 같은 간단한 대답을 보내왔고, 남몰래 찔끔 하던 저는 씩 웃었습니다.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누구라도 살면서 옵션B의 삶을 맞닥뜨리게 된다.
옵션B의 삶을 최대한 풍성하게 살도록 돕는 것이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올 때, 외부의 지지를 받을 때 생겨난다. 자기 삶에 주어진 혜택에 감사하고, 최악의 상황에 달려들 때 생겨난다.
스스로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슬픔을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때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실에 대한 통제권이 적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삶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더라도 바닥을 박차고 수면으로 올라와 다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 p.45


지난 글에 "생각지도 못했던 삶을 살고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댓글 남겨주신 작가님 중 한 분도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누구의 삶도 결코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라도 옵션B의 삶을 맞닥뜨릴 수 있고요. 저는 지금 옵션B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옵션B의 삶을 시작한 2년여 전부터 지금까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기간이 제 삶에서 손에 꼽히게 힘든 시기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겪어야 할 앞으로의 시간 속에 어쩌면 제가 상상할 수도 없는 더 큰 시련과 역경이 도사리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지금 당장' 마주하는 어려움은 힘든 것이고, 견뎌내야 하는 대상임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회복탄력성은 언제나 필요하고요.


'난 이미 망했어'라는 부정적인 감정과 '이제 어떻게 살지'라는 불안에 휩싸였던 2년 전의 저. 


자격증 따겠다며 참석한 출석 수업에서 강의도 듣지 않고 책만 읽다가 처음 보는 분이 춤 추자고 손 내밀었을 때, '에라 모르겠다, 추자, 춤' 하며 교단 위로 올라간 겁니다.


순간 정색하지 않고 파랑 빨강 천을 흔들며 뛸 수 있는 힘을 낸 것, 그것 역시 회복탄력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정색하고 그 손을 뿌리쳤으면 어땠을까요?


'춤 안 추게 되어 다행이다' 보다는 '이게 뭐라고 기를 쓰고 안 한다고 한 거지?' 하며 초라한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제가 춤을 추지 않는다고 해서 연락이 닿지 않던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을리도 없고요.


'에라 모르겠다, 추자, 춤' 하고 퐁퐁 뛰고 나서 '그래, 사는 거 별거 있나' 하는 마음이 더 편하게 들었습니다.

출퇴근 길에 언제나 춤을 추며 나와 아들을 맞이해 주는 친구들


<OPTION B>를 읽으며 눈물 찔끔하기도 하고, 동생과 제부에게 오글거리는 메시지도 보내고, 맞닥뜨린 '옵션B 삶'에 대해 글로 적어도 보다가, 교단에서 뛰기도 하면서 회복탄력성 레벨업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저 역시 회복탄력성이 필요한 순간이 많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순간이 있습니다. 잘 녹은 치즈가 굳어 접시에 딱딱하게 눌어붙은 듯 그렇게 방바닥과 하나되어 눈 감고 누워만 있고 싶은 욕구가 쉽게 가시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그 말라붙은 치즈에 적당한 열을 가해 녹이고 다시 의미 있는 음식이 되게끔 하듯, 몸에도 적당한 에너지를 일으켜 운동화 꺼내 신고 일단 걷는 것. 그 정도 힘을 내는 것이 일상에서는 종종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마음 근육인 회복탄력성이 되고, 앞으로 언제 어떻게 맞닥뜨릴지 모를 삶에 위협을 가하는 일들에 대응할 힘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내가 추락해야 한다면 추락하게 하소서.
내가 되려는 사람이 나를 잡을 터이니"

"나는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약하지만,
지금껏 상상해온 것보다 훨씬 강하다"


남편은 여전히 24시간 집을 지키는 성주신을 자처하고 계십니다. 여섯 살 아들은 커가는데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 초조하고, 부모님도 도와드리고 싶지만 어렵고요. 다음 일(job)도 열심히 구해야 합니다.


브런치는 좋지만 너무 좋아서 글과 댓글을 많이 쓰다 보니 할 말 안할 말 다하는 건 아닌지, 낄 데 안낄 데 구분 못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하며 속상해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매일 일어나 아들 손잡고 어린이집에 씩씩하게 보내고, 일터로 갑니다. 끼니도 잘 챙겨 먹고, 웃는 표정으로 셀카도 매일 찍고요.


저와 제 주변을 돌아보며 글을 쓰고, 애정 하는 작가님들께 길기도 하고 썼다 지우기도 하는 댓글을 지르기도 하며 하루 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


매일, 하루를 견딘 만큼 회복탄력성이 레벨업 되어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는 말로 개인의 힘을 정의했다. -p.110

테데스키와 칼훈은 니체의 무거운 분위기를 덜어내고 이를 좀 더 부드럽게 표현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약하지만, 지금껏 상상해온 것보다 훨씬 강하다" - p.110

옛 격언에는 "내가 추락해야 한다면 추락하게 하소서. 내가 되려는 사람이 나를 잡을 터이니"라는 말이 있다. - p.111

이혼 소송은 취하하였고, 일상생활 복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복귀 노력'이라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아직 복귀했다고 말할 만큼은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일상을 조금씩 글로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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