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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령 Feb 09. 2022

집중을 위한 마법의 거울

집중시간은 연령대마다 차이는 있지만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래서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 모두 집중 시간을 더 길게 하려 갖가지 기지를 발휘한다.

가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교수법으로 유명한 강의를 보면 한결같이 강의 내내 집중하게 만든다.


학습량이 많은 어린 학생들에게 자율적으로 집중 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특히 내가 가르쳤던 논술은 성과가 즉각 나타나지 않으며 길고 멀고 방대하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분야다.

권장도서와 필독서의 이름으로 학년을 따라다니는 독서목록이 있으며  읽어야 할 자료는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도 없이 차고 넘친다.


논술 문제는 제시된 자료를 문제가 요구하는대로 의미와 내용을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고등학생은 논문 수준의 용어가 난무한 글이 지문으로 나온다. 그리고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춘 글쓰기까지. 매 순간 집중해야 글도 쓰고 문제도 풀 수 있지만 이미 길고 딱딱한 지문이 줄줄이 나오면 재미없고 지루할 수밖에. 지루함과 집중력의 관계는 대척점 사이다.


이 판을 잘 아는 강사로서 늘 고민했던 지점이었다.
개그맨도 아닌데 매 수업시간 내내 즐겁게 진행할 수 없다. 온통 감동과 웃음으로 웃고 즐기기엔 전달할 내용이 많다. 그래서 수업의 호흡이 느슨해질 즈음  짧지만 강하게 다운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방법이 필요했다.  순간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이 쏟아내는 웃음은 카타르시스의 효과도 있다.


나는 불특정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며,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셀프디스를 많이 이용했다. 남을 대상으로 하면 인권문제의 발생과 더 나아가 범죄행위가 되기도 한다. 나는 법은 쪼끔 많이 알고 겁은 더 많다.


독자들에게 직관의 정보제공을 위해 객관성은 무시하고 지극히 주관적으로 평가한 나의 외모의 면면은 위대한 유전자의 승리로 안경을 코 끝에 걸어 놓고 있다. 낮은 코 때문이다. 눈은 아이라인의 은총으로 패스 가능함.  머리카락은 얇고 가늘고 곱슬거린다. 늘 시대를 잘 못 만났다 주장하는 든든한 체격은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웬만해서 누구에게 밀려본 적 없다. 누가 봐도 8등신이 뭐예요? 하게 생긴 팔다리와 비현실적인 우리나라 표준체중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만들었는지 늘 궁금한 체중을 줄기차게 유지하고 있다. 양심은 있어서 평생 다이어트를 주장했으며 건강과 장수를 위해서도 꼭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삼일마다 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이어트 유투버로 화려하게 등극하고 말겠다는 꿈을 늘 잊고 있다가 가끔 꾸기도 한다.

내가 가진 환기용 소재가 이렇게 무궁무진하다. 매장량으로 치면 최소 100년 이상 본다.


어느 날,

수업 주제는 일상적인 사물을 관점에 따라 바꾸어 설명해보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이미 다 아는 예로, 물통에 반쯤 들어있는 물이나 타다 남은 장작의 경우 시점에 따라 1인칭으로, 3인칭으로 각각의 관찰자 또는 비 관찰자 입장에서, 최소한 2 이상의 상당히 다른 뜻을 지닌 글을 쓸 수 있다. 달라진 문장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지겹다. 시점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렇게 관찰의 중요성을 피력하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여러분은 곱고 고운 자연미가 발산되는 빛나는 눈과 원만한 성격을 꼭 닮아 모난 구석이 없는 둥근 얼굴, 동그란 안경과 쌍둥이처럼 생긴 코 거기다 윤기 있는 머릿결까지 갖춘 아름다운 선생님을 보고 있습니다. 아마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법의 거울이 있다면 항상 선생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자~ 이제

1. 여러분이 선생님이 되어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봅시다.  

2. 다음은 여러분의 시선으로 이 아름다운 선생님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우리 선생님은~"으로 시작하는 글도 써 봅시다.


참고로 이 수업의 학생들은 고학년으로 우리는 거의 일 년 이상 동고동락한 팀이었다. 내가 난시가 심해 모서리에 잘 부딪치는데 그때마다 내가 찍힌 상처보다 더 많은 반창고를 건네주는 손들로 감동을 줬던 아이들의 수업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나의 근자감으로 가득 찬 유머와 위트를 이미 여러 번 겪어 진의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찰떡같은 즉각 호응으로 분위기를 재미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날,

저 멀리서 짧지만 강했으며 힘차게 교실 가득 울리는 한 아이의 낭랑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거울을 보신 거야?”

그날, 우리 모두는 "뒤집어지다"라는 말이 어떻게 몸으로 표현되는지 체험했다.

나는 웃느라 한동안 허리를 펴지 못했고,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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