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대부분 6~70대)은 실력에 따라 네 레인에 나뉘어 수영을 하고, 맨 왼쪽에 자리 잡은 우리 레인이 가장 처진다. 내가 중급반에서 올라왔을 때만 해도 3개 레인이었는데, 새 멤버들 넷이 올라오면서 한 레인을 더 쓰게 되었다. 새 멤버들은 비교적 젊고(40대 전후), 몇 달이 흐른 지금 우리 레인보다 월등히 빠른 듯 보인다.
기존 멤버들은 나를 빼고는 대개 십~2십 년 이상 수영을 배웠는데, 그중에서 체력이 많이 달리거나 어딘가 불편해서 또는 나처럼 운동신경이 둔해서 나릿나릿, 쉬엄쉬엄 할 만한 이들이 우리 레인에 모였다. 에이스 머루 님이 허리가 안 좋아 쉬고 있고, 다리 치료로 한동안 뜸했던-아주 몹시 느린- 하늘 님이 합류하면서, 다른 레인들과 속도가 점점 더 벌어지는 모양새다.
나와 함께 중급에서 올라온, 중급반 당시 엇비슷한 실력으로 ‘뒤에서 1, 2번’을 다투던(?) 백합 언니는 자세를 제대로 배우고자 다시 얕은 풀-중급반으로 돌아갔다. 언니는 개인 레슨도 따로 받고 자유 수영도 빠지지 않는다. 자유 수영 시간에 가끔 마주치면, 언니는 개인 레슨을 통해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모름지기 자세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열정적으로 들려준다. 나는 그때마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레슨을 받아볼까 진지하게 생각한다.
개인 레슨을 받으면 확실히 다르겠지. 잘못 굳어진 자세를 바로잡고 요령을 터득하면, 아무리 더딘 나라도 조금씩은 나아지겠지. 빠르게 나가는 기분을 도무지 알 수 없고 평생 미지로 남을 듯한, 점점 더 나빠지는 게 아닐까 싶은 평영이나 접영도 희망이 보이겠지. 평영의 날렵한 발차기, 접영의 우아한 웨이브, 팔과 다리의 찰떡 호흡, 착착 들어맞는 리듬……. 그런 느낌을 맛본다면 더욱 신이 날 테지. 상상을 하다가 역시 그만둔다.
변화는 두렵고 성가신 것. 나는 이곳의 속도와 패턴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이토록 오래 배웠으면서 이토록 느린 속도를 유지하는 곳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레인 멤버들)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고, 오늘도 어제만큼만 운동할 수 있으면 족하다는 분위기다. 마음이 이토록 편할 수가 없다.
이 편하던 수업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몇 달 전 선생님이 바뀌었다. 새 선생님은 이전의 마쌤보다 젊고 우람하고 까무잡잡하다. 잘 영근 햇감자처럼 단단하고 불퉁한 인상인데 웃는 얼굴은 꽤 귀여우시다. 시바견 캐릭터가 그려진 수영모를 쓰고 목에는 작은 수건을 두르고 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속 너구리가 떠오른다.
마쌤은 어르신들의 안전과 건강에 중점을 두고 무언가를 새롭게 지도하기보다는 익숙한 패턴대로 이끌었다. 각 영법을 적당히 돌리고 개별적으로 자세를 봐주고 짬짬이 안부를 묻고 ‘건강 체조’로 마무리하는 식. 반면 ‘너구리’ 선생님(‘너쌤’이라고 하겠다)은 새롭고 낯선 연습 방식을 계속 시도하고 그 동작과 원리를 열심히 설명한다. 양팔을 뻗은 채 자유형 발차기, 서너 번 스트로크에 한 번 숨쉬기, 주먹 쥐고 가보기, 양팔 높이 들고 배영 발차기, 옆사람과 손에 손을 잡고 모로 누워 발차기 등등.
“어떻게 하래?”
“네 번 하고 숨 쉬래.”
“세 버언?”
“아니, 네 번.”
“어떻게 하라고?”
우리 레인 멤버들은 너쌤의 설명에 일단은 귀를 기울이지만, 대개 (한둘 빼고는) 따라 하는 데 실패한다. 자꾸 이상한 걸 시킨다고 투덜대고, 투덜대면서도 따라 하는 시늉을 하다, 잘 안돼서 웃음을 터뜨린다. 마냥 느슨하던 흐름에 옅은 긴장감이 돌고, 귀찮지만 자세에 좀 더 신경을 쓴다. 나는 너쌤의 수업 방식에 전혀 불만이 없으며 그 의도와 설명을 완벽히 이해하지만, 역시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
너쌤은 (당연히) 우리 레인의 수준을 금세 파악했다. 으레 “자유형 여섯 바퀴, 여기(우리 레인)는 다섯!”과 같은 식으로 말하고는 “절대 무리하지 마시기를” 당부한다. 우리는 좀처럼 무리할 생각이 없고, 설렁설렁 서너 바퀴만 돌기도 한다. 나는 너쌤의 말을 떠올리며 조금씩 자세를 고쳐 본다. 어깨를 열고, 팔을 더 위로, 더 멀리……. 그러던 어느 날 자유형-롤링이 ‘뭔가 되는 듯한’ 기분이, 아주 오랜만에 든다. 역시, 변화란 성가시지만 짜릿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