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수영장에 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직원들이 한쪽에서 웅성웅성 떠든다.
“아휴, 말씀을 안 들어요.”
“탕에 오래 계시면 안 된다고 해도…….”
무슨 일인가 싶어 샤워실에 들어가자 온탕에 엉거주춤 서 있는 하늘 님이 보인다. 샤워실 한쪽에는 아담한 온탕과 냉탕이 있는데, 온탕에는 늘 네댓 명(그 정도면 꽉 참)이 둘러앉아 수다를 떤다. 하늘 님은 내가 오기 전에 어지러워 비틀거렸던 모양이다. 전날 건강검진 때 수면마취를 한 탓이라고. 하늘 님을 둘러싸고 그를 염려하는 호들갑이 분주히 오간다. 수영 회원 중 최고령에 가까우므로 직원들은 신경이 쓰인다.
“오랜만이네.”
하늘 님은 나를 알아보고 천천히 미소를 짓는다. 나는 얼굴을 가리키며 다쳤다고(그래서 못 나왔던 거라고) 말하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한 듯, 미소를 거두지 않는다. 하늘 님은 평소대로 9시 수영을 하기 원하지만 사람들의 만류로 그만둔다.
우리 레인에는 당근, 머루, 매실 님만 있어 썰렁하다. 나는 회원님들과 반가이 인사를 나눈다. 큰애가 고3이라 못 나오는 줄 알았다며(그럴 일은 없지만 어쨌든 기억해 주셔서 고마워요) 머루 님은 무척 반가워한다.
“선풍기 줄에 넘어져서요……, 의자 모서리에 얼굴을…….”
다친 뒤로 여기저기서 십수 번은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다. 아슬한 무용담인 듯 재생할 때마다 액션이 과해진다. 의자 모서리에 “쾅!” 하는 대목에서는 얼굴을 손바닥에 부딪는 시늉을 과장되게 한다. 회원 님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이고 큰일 날 뻔했다고 눈을 안 다쳐 천만다행이라고 한다.
“00 형님은 있잖아. 베란다에서 큰 화분을 옮기다가…….”
머루 님은 생각났다는 듯이 지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분을 든 채 문턱에 걸려 넘어졌는데 화분이 깨지면서 다리에 파편이 박혀…….
“아 글쎄. 빨리 119를 부를 것이지 그걸 또 일일이 빼낸다고…….”
나도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열심히 이야기를 듣는다. 온갖 사연으로 저마다의 몸에 남은 상처와 회복의 흔적을 상상한다.
오랜만에 물을 가르며 수영을 한다. 오랜만이라 몸이 무겁고 숨이 차다. 아아 힘들어. 맞아 힘들었지. 기분 좋고 힘들었어. 황홀하고 죽을 맛이었지. 잊고 있었네. 아아 이제 그만, 멈추고 싶다. 멈추고 싶어 죽겠다. 그래 이런 기분이야. 바로 이거지…….
그 다음 시간은 매월 마지막 수업으로, 선생님 지도 없이 자유수영을 하는 날이다. 하늘 님은 다행히 괜찮아 보인다. 느릿느릿 쉬지 않고 몇 바퀴고 돌고 또 돈다.
“아이고. 저 형님 왜 저렇게 열심히 한대?”
머루 님은 하늘 님을 보며 웃는다. 아마도 요전 수업에 빠져서 그런가 보다고, 우리는 짐작한다. 내 몸을 어쩌지 못하는 순간이 잠시 왔지만 나는 이렇게 돌아왔어요. 아직은 기운이 충분하죠. 몸이 기억하는 대로 물과 쿵짝을 맞춰요. 순하게 그 흐름을 쫓아요. 나는 여전히 물을 타고 갈 수 있다고요.
누군가 두 팔을 들고 배영을 하자고 한다.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힘을 빼고 균형감을 익히기에 좋다. 우리는 적당히 간격을 두고 나란히, 편안하게 발차기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는 사이 좋은 해달 같다. 얼마 전, 다큐에서 본 몬터레이 만 해양보호구역의 해달 무리는 떠내려가지 않도록 켈프(대형 갈조류)를 몸에 돌돌 만 뒤 안심하고 잠에 든다. 양탄자처럼 넓게 펼쳐진 켈프 군락 사이에 해달이 무늬처럼 콕콕 박혀 있다. 쿡쿡 쑤시는 다리와 뻐근한 어깨와 부딪힌 상처와 내장 어딘가의 염증을 안고 우리는 부지런히 헤엄을 친다. 해달 같은 촘촘한 털도, 금붕어 같은 지느러미도 없지만, 풍파는 종종 우리를 때려서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만 지금 이 순간은 잊기로 한다. 여기서만은 평안하다. 우리만의 생추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