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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헤르쯔 Sep 29. 2022

돌멩이나 줍고 있지만 나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늘에는 담을 것이 많고 땅에는 주을 것이 많다


나에게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일만큼이나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땅을 보고 걷는 모습이 초라해 보이고 내려간 어깨에 주눅 들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나는 그렇지 않다. 땅에서 피어나는 새싹들 열심히 움직이는 개미들 그리고 가끔씩 만나는 달팽이 까지... 땅을 보면 아주 아주 아주 작은 일에 열심히인 친구들이 있다. 처음에는 내 눈에 띄지 않던 존재들인데 땅을 보고 걷게 될 때 내 눈앞에 나타난다. 나는 내가 보지 못한 작은 생명체들을 바라보느라 온몸이 아래로 쏠리는 것도 모른 채 혼자 즐거워하고 있다.


땅을 바라보고 걷다 보면 예쁜 나뭇잎과 꽃잎 돌멩이도 보인다. 주머니에서 챙겨 온 작은 비닐봉지를 꺼내고 내 눈에 밟히는 돌멩이와 나뭇잎을 하나 둘 줍기 시작한다. 그것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나는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도 모른 채 돌멩이를 하나하나 손에 쥐고 돌멩이가 주는 에너지까지 느끼기 시작한다. 이 돌멩이가 우리 집에 가면 어떨지 상상하고 돌멩이랑 이야기도 하고 예쁘다고 말도 해준다.

땅에 보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보고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뭘 하나? 싶어 힐끔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이상한 여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다행히 내 옆에 그런 모습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남편이 있다. 하찮은 일에 열심히인 나를 한 사람이라도 괜찮다고 봐주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른다.


돌멩이를 충분히 줍고 나면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때 나의 시선에 들어오는 나비와 새 무리들 처음 보는 이름 모를 벌레. 멀뚱멀뚱 거리며 무언가가 내 앞을 오고 가는지 바라본다. 바람에 커다란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잎들이 그림처럼 떨어지기도 하고 달리기 하는 사람 걷는 사람도 지나간다. 나무 위로 다람쥐가 왔다 갔다 하고 가끔 거북이도 보인다. 한참을 그렇게 내 시선에 밟히는 것을 바라보다 눈을 감는다. 내 눈앞에는 이제 더 이상 그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방금 내 시야에 머물던 그들의 존재가 남아있다. 실제로 바라볼 때보다 더 자유롭게 뒤섞인 채로 모두가 하나가 되어 보인다. 그 느낌이 좋아 그대로 벤치에 누워 한동안 눈을 감아 본다.


'내가 이걸 보려고 이걸 느끼려고 왔구나..'


문득문득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게 된다.

어쩌면 내가 지구에 오기 전 있던 그곳은 아무 색이 없는 곳일지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지구에는 정말 아름다운 색이 많아서 그거 한번 보려고 용기 있게 이곳에 왔는데 제대로 보지도 느껴보지 못하고 힘들다 힘들다 하며 살았단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난다. 내 마음을 정말 평온하게 만들고 안심하게 하고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건 참으로 간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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