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된 시간을 놓치지 않기

by lee나무

벽. 담.

구분 짓는다.

궁극은 연결을 지향한다.

넌지시 보여준다. 그 너머를 동경하게 한다.





나의 학교는 담 안에 있다. 학교 담을 경계로 하여 큼지막한 가로수들이 계절에 따라 분위기를 바꾸는 인도(人道)가 세로로 길게 연결되어 있다. 그 나무들 사이로 아파트, 도로가 보이고 사람들과 차들이 지난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이 이 가을 나의 일과(日過) 아닌 일과가 되었다. 나는 담 안에서 수종이 다양한 큰 나무들이 늘어선 가로수길을 오가는 사람들,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와 차도 맞은편에 솟아있는 아파트들을 종종 바라본다. 일상이 거기에 있음이, 사람의 마을이 거기에 오늘도 여전히 그대로 있음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나를 따뜻하게 한다. 어느 날은 담 아래 그 가로수길을 걸으며 나는 지붕만 보이는 학교를, 저기 텃밭, 저기 화단, 저기 동산 하면서 담안 학교를 자꾸 기웃하기도 한다.


가을이 무르익은 요즘, 담 너머 가로수들이, 햇살을 받아 영롱한 노란빛으로 물든 저 나무들이, 자꾸자꾸 내 눈길을 잡는다. 허락된 이 짧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빈 가지만 남을 테다. 얼른 와서 기억 속에 담으라 한다. 너머에서 보는 것과 길을 걸으며 보는 것은 다르며 다음 계절을 살아갈 기억 하나 간직하라고 한다. 햇살이 비치는 각도와 시선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천천히 느끼며 허락된 시간을 온전히 살라고 말을 건다.


당분간 아침 출근길을 바꾸어야 할 모양이다. 나무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지. 내일 아침은 이 길로 돌아 돌아 출근할 생각이다.


학교와 인도를 구분짓는 담벼락에 기댄 담쟁이넝쿨이 빨갛게 물들었다.


큼직한 나무들이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그 시기만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 이태원 참사 희상자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하며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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