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맨션은 한강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한강경치를 전혀 막힘없이내려다볼 수 있는 18동, 28동, 38동 등3개동아파트 면적이 가장 넓었고그만큼가격도비쌌다. 다만 어린 시절한강 맨션에 살 때는그런 사실을 잘 몰랐다,한강 맨션이면 모두내가 살았던 17동32평짜리와같은면적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3개 동 중 하나인 28동에살던초등학교 동창이놀러 오라 해서 가보게 되었고 그때 한강맨션에는우리가 살던 32평짜리아파트와는다른55평 등 훨씬 넓은 평수의아파트가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되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게다가 이 친구 아버님은당시꽤유명한 대기업사장님이었는데그처럼 대단한 부자이다 보니 그 사장님에게는그넓은55평조차 면적이 충분하지않으셨는지 공사를 해서55평짜리두집을 터서 한 집으로사용하고 있었다.결국그 친구와나는똑같은 한강 맨션에거주하고 있었지만 실제로그친구가 살던집 면적은우리 집 면적의무려3배도넘는110평이었던것이다.
사진) 한강 맨션 55평 평면도. 이런 아파트 두 채를 터서 한 집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니 친구 집에는 방 8개에 화장실이 4개, 주방이 2개가 있었던 셈인데, 그넓은 집에 거주하는가족은가사 도우미 포함 고작 5명이었다.
그 친구 집에 가보고는 우선 그 넓은 면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친구 따라 그 넓은 집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걸어가면서 주변의 휘황찬란한 장식을 보면서 놀라야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도 운동장처럼 한참을 걸어가야만 집의 또 다른 쪽 끝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요즘에도 100평이 넘는 대형 아파트들이 꽤 있지만그런 아파트는 나 같은 사람과는 실제 아무런 인연이 없는것이 현실이고, 70년대 그때 봤던 110평짜리 그 친구집이현재까지도내 생애에서직접 봤던가장 넓은 아파트였다.
한편 요즘이야 이촌동에 아파트가 가득 들어서서 공터라곤도무지볼 수 없지만, 70년대 그 시절이촌동에는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터가 아직은동네 이곳저곳에 매우많이 남아 있던시절이었다.
아래 사진도 역시 한강맨션 인근의그런 공터 주변을우리 가족이 함께 걸어갈 때 찍은 사진이다. 아마도 휴일에 근처 식당에 가족 모두 식사하러 가면서 찍은 사진 같은데 가족 중아버님 모습만 안 보이는 것으로봐서 이 사진도사진을 꽤좋아하셨던 아버님께서 찍으신 것 같다. 요즘과는 많이다른 1975~6년경의 이촌동 모습인데아버님은 2001년에 이미 돌아가셨지만 아버님께서 찍으셨던 이70년대 이촌동 사진만은 여전히남아있다.
사진) 한강맨션 인근 공터 옆을 걸어가는 우리 가족 모습. 70년대에는 이촌동에서도 이렇게 잡초 무성한 공터를 쉽게 볼 수 있었으니 요즘과 비교하면격세지감을 느끼는데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70년대 이런오래전이촌동 동네 모습이그립기도 하다.
사진) 우리 삼 남매가 아버님과 함께 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역시 아직 이촌동에공터가 참 많던 시절의 모습이다.한편 중학교에 입학해서 빡빡머리를 하고 있던나는 뭐가 그리도 불만인지 혼자 인상을 잔뜩 쓰고 있다.반항이 심한 사춘기 시절이었던 모양이다....
요즘 학생들에겐 생소하겠지만 70년대 남자 중학생은 전부 저렇게 빡빡머리를 하고 학교에 다녀야 했다. 풍경 사람 등 많은 것들이 요즘과는 달랐던70년대 이촌동 모습이다.
언젠가부터 안전과 범죄예방 등을이유로 아파트 옥상 문을개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70년대에는 통상 이촌동 아파트들의 옥상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었고, 따라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아파트 옥상에서 시간을 보내는경우가적지 않았다. 아래 사진도 우리 가족이 거주하던 한강맨션 17동 옥상에서 그 시절 동생과 함께 놀면서찍은 사진이다.
사진) 한강맨션 옥상에서 동생과 공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1971~2년경 사진인 듯한데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한여름에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사진 우측에 보면 요즘아파트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독들도 보인다.1970년대에는아파트 1층 마당에 항아리를 묻어놓고 겨울에 그 안에 김장김치를저장해서 먹는 집도 나름일부있던 시절이었다.그러다가언젠가부터김치냉장고가생기면서그런 관행이 점차사라지게 된 것 같다.
사진) 위 사진과는 다르게 겨울에 눈이 쌓여 있는 한강맨션 옥상에서 찍은 누님 사진. 1972~3년 경 사진으로 보인다.
이제는 60대 중반의 할머님이 된 누님도 어린 시절 한때는 이렇게예쁘고 인기 많던 시절이 있었다. 한편 누님이 입고 있는 바지를 보면 당시 70년대 한참 유행하던 나팔바지다.
그런데70년대에유행했던 그 나팔바지가 최근에도또다시 유행하기도 했으니 유행은 세월이 흘러가도 언젠가는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시간만은 한번 흘러가버리면결코되돌아오지를 않으니 부끄러운 듯 미소 짓고 있는 이사진 속의10대 여중생은 이제60대할머님이된 누님의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한강맨션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거주했었는데 우리 가족이 살던 17동 같은 동 1층에는 내가 꽤좋아했던 여자 아이도 한 명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지금도 매우또렷이 기억나는데 나처럼흔한 '이' 씨 성을 가진 아이가 아니라, 다소 드문 '맹' 씨 성을 가진 아이로'맹세O'이 바로 그 아이 이름이었다
물론 초등학생 그어린 나이에 무슨 대단한 연애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아이가 무척 좋았고 나보다 약 1~2살 어렸던 그 아이도 나를 오빠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그 아이가 매우 예쁘기도 했지만, 그 아이는 오빠가 없었고 나는 엄청무서운얼음 공주 같은누님과 시커먼 남동생만 있었지 여동생이 없었던 점에서어쩌면 서로에게 더끌렸던 것아닌지 모르겠다.
그 시절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에 뉘엿뉘엿 해가떨어져서 어머님께서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17동 4층에서 내려다보며 큰 소리로 외치실 때까지 그 아이와 함께 17동 앞 공터에서 마냥 뛰어다니며놀곤 했었다.
사진) 그 소녀와 함께 뛰놀던 공간. 이러한 공간에서 단순히 자전거만 타고 돌아다녀도 마냥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한강맨션을 떠나이사를가게 된이후 그 아이와의연락은 끊겼는데 그 아이를 이제 다시 만날 가능성은전혀 없고 또어쩌다가 혹 길에서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나이가 너무 들어 서로를전혀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70년대 한강 맨션에 살았던 그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정말 오래전에 그 아이와함께 놀았던그 시간이한 번뿐인 이 인생에있어서 나름 참 행복하고소중했던시간이었다는 생각이새삼스레 들기도 하고그만큼 그립기도 하다.그리고 바로 그런 비슷한 미련 또는 아쉬움 때문에 동서양의 많은사람들이 Carpe Diem, YOLO 또는 청산리 벽계수와 같은 문구들을만들어 내고 또 반복적으로 언급하게 되는 모양이다....
되돌아갈 수 없이 한 방향으로만 하염없이 흘러가는 인생의세월과 시간이그저 야속할 뿐이다....
사진) 한강맨션을 건축했던 대한 주택공사 이름이2022년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한강 맨션의입구벽 모습.한강 맨션 31동과 삼익 아파트 사이에 있다.
1962년 설립된 주택공사는 1970년 한강 맨션을 완공했다 그리고 2009년 LH 즉 한국 토지 주택공사로 통폐합된 후해체되어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그 이름은아직도 이렇게한강 맨션한 구석의벽에 남아있다. 다만, 이한강맨션도 재건축이오래전확정된 바 재건축과 함께 언젠가는이 벽도사라지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렇게사라지면 '대한 주택 공사'라는 예전기관의 이름도 이제는 더 이상 이촌동에서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그렇게이촌동의과거 역사도계속해서 조금씩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