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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Mar 13. 2022

이촌동 연가 (3)

■ 90년대 중반 사라진 공무원 아파트

1970년 이촌동으로 이사 와서 어린 시절 이촌동 안에서 많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너무도 자주 부모님께서 이사를 다녔기 때문이었다. 이사할 때마다 몹시 성가셨을 텐데 그리 자주 이사를 다니셨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던 것 같다.


한편 특이했던 것은 그렇게 자주 이사를 다녔어도 이삿날에 아버님은 항상 평소와 다름없이 소신 있게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오셨다. 따라서 결국 이삿짐은 주간에 어머님 혼자  나르는 인부들을 부리며 처리해야만 했었는데 아버님께서 집안일에 그렇게 무책임한 분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어쨌든 신기하게도 이사에는 그렇게 무관심하셨고  아버님의 행동이 당시 어머님께는 매우 큰 불만 중 하나였다. 요즘에 남편이 그랬다면 아마 바로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어쨌든 그리 자주 이사를 다닌 덕분에 10대 시절 거주했던 이촌동의 아파트들을 순서대로 열거하면 아래와 같이 무려 6개나 된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이촌동 내 6개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살았던 것이다....


1) 공무원 아파트, 2) 한강 맨션, 3) 한신 아파트, 4) 복지 아파트, 5) 제일 맨션, 6) 청탑 아파트


그런데  많은 아파트 중, 한강 맨션과 제일 맨션을 제외한 나머지 아파트들은 이제는 모두 재건축으로 사라져 버려서 더 이상 이촌동에 존재하지 않고  아파트들이 존재했던 공간에는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모습 전혀 다른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이촌동에 그만큼  세월이 흘러갔음을 새삼 해주고 있는 셈이.


한편 아직은 남아있는 1세대 아파트 한강 맨션도 오래전에 이미 재건축이 결정되었으니 이 아파트 역시 머지않아 결국 사라질 것이그렇게 되면 60~70년대 건축되었던 이촌동 1세대 아파트들은 이제 거의 대부분 전멸하게 되는 이다.


아래는 어머님 및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인바로 이 사진 속에 보이는 아파트가 1970년대 초에 찍은 이촌동 1세대 아파트 공무원아파트 모습이다. 90년대 중반에 재건축으로 허물어지면서 이제 과거 기록 속으로 사라져 간 아파트지만  사진을 찍은 시점에서는 이 아파트도 완공된  3년밖에 안된  아파트였다.


그랬던 새 아파트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느덧  낡은 아파트가 되어버렸고  결과로 1990년대 중반 재건축이 진행돼 한가람 아파트 등 다른  아파트들이 들어섰던 이다. 그런데 이제 아파트마저도 낡고 오래돼 또다시 리모델링 공사가 추진되고 다. 60년대 말 이촌동이 어느 순간 대단위 아파트촌이 된 이후 50여 년이라는  세월은 그렇게  깜짝할 사이에 후딱 흘러가버린 것이다....


사진) 우리 가족이 한 때 거주했던 공무원 아파트 24동 집 앞에서 어머님 및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동생과 내가 신은 신발이 같은 디자인인데 이제는 촌스러워 보이지만 70년대 그 시절에는 나름 유행하던 디자인이었던 것 기억이 있다.


사진 중앙에 는 24란 숫자가 적혀 있는 아파트, 즉 공무원 아파트 24동 1층에 우리 가족은 거주했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아파트를 떠나서 한강 맨션으로 이사를 간 후 이 24동 바로 우측에 1978년 이촌역이 들어섰다. 이 사진을 찍은 시점은 아마 이촌역이 들어서기 7~8년 전 1970~1년 아닌가 싶다.


사진) 이촌역 4번 출구 앞의 70년대 초 모습과, 50여 년이 지난 후 2022년 3월의 최근 모습. 같은 장소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도 많이 변했다.


24동 바로 앞 23동에는 초등학교 동창도 거주했는데, 아래 사진은 그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제는 기억 속으로 사라진 과거 70년대 공무원 아파트 건물 뒷면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공무원 아파트는 아파트였음에도 난방으로는 여전히 연탄을 사용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요즘에도 나무 장작으로 난방을 하는 아파트들이 정말 많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도 1970년대에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아파트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사진) 공무원 아파트 23동과 24동 사이의 잔디에서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1970 사진.


사진) 70년대 초 공무원 아파트 24동과 23동 사이 잔디와 같은 장소의 2022년 3월 현재 모습. 역시 너무도 다르다.


한편 사진 속의 이 친구는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는데,  여동생도 학교를 일찍 들어와서 우리와 같은 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졸업 후 어른이 되고 나중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는 이 남매는 한 살의 나이 차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였다는 것이었다.


남매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 친구 부모님께서 오랜 기간 거짓말을 해왔던 것인데 우리 친구들도 몰랐지만 쌍둥이 본인 당사자들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요즘이야  흔하게 쌍둥이를 볼 수 있고  그 사실이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60~70년대 그 당시만 해도 쌍둥이란 사실은 그다지 알리고 싶지 않았그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 이 사진 속의 공간을 보니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당시 어머님께서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운전 연습을 이 공간에서 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차가 후진할 때 왼쪽으로 가려면 핸들을 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데, 어머님께서 그것을 자꾸 거꾸로 하셔서 어린 나로서는 꽤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완벽하고 완전한 어른으로만 보였던 어머님께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에 혼선을 느끼시는 것이 어린 내게는 이해할  없는 행동으로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때 어머님께 정말 왜 그러시냐고 문의드렸는데 그 질문에 대한 어머님 답변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당시 어머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는 뇌 구조가 다르다"라고 답을 하셨던 것이었다. 그런 답으로 인해 남녀 간의 차이에 대해  어린 나이에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실제로는 남녀 차이가 아니고 사람 각 개인별 차이가 아닌가 싶다. 


사실 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꽤 유명한 '길치'셨다. 오죽하면 지하도를 통해서 도로를 건너실 때 원하셨던 출입구가 아닌 전혀 다른 엉뚱한 출입구로 나오시는 경우가 어머님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을 정도였다. 아울러 나 역시 유독 어머님을 많이 닮아서 유감스럽게도 우리 집안 '길치 2 인자' 자리에 등극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어머님처럼 전혀 다른 엉뚱한 지하도 구멍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친구들 중에는 요즘의 이촌동이 참 좋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물론 요즘의 이촌동 좋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도 10대부터 지금까지 약 50여 년을 이촌동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 아파트가 있던 시절의 이촌동은 요즘에는 접할 수 없는 묘한 향수가 있었고 그래서 그 시절이 훨씬 더 그리운 것 같다. 무엇보다 요즘과 달리 당시 이촌동에 있던 아파트들은 공무원, 한강맨션, 민영 할 것 없이 거의 다 5층 정도의 낮은 아파트만 있었고 아울러 또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은 공터가 아직 이촌동 여기저기 도처에 꽤 많이 흩어져 있던 절이어서 인구 밀도도 상대적으로 매우 낮았다.


그러다 보니 공기가 훨씬 좋았고 또 너무도 조용해서 정말 살기 좋은 그런 완연한 주택가였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그 당시에 건축된 옛날 아파트들은 워낙에 튼튼하게 지어져서 그런지 층간 소음이 정말 없었다. 층간 소음이 매우 큰 사회 이슈로 등장했던 시점은 공무원, 민영 아파트 등이 모두 다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한가람, 강촌, 이촌, 대우 등 이촌동 2세대 아파트들이 들어선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조용하던 동네가 변하기 시작했던 시점도 역시 저층 1세대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사라진  그 자리에 2세대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또 이촌동 곳곳의 남은 공터에도 새로운 아파트들이 추가로 들어서기 시작해 이촌동의 인구 밀도가 높아지게 된 이후였다.


게다가 동네가 점차 유명해지고 또 새로 생긴 이촌동 몇몇 식당들이촌동 분위기와 함께 유명세를 타면서 외지에서 사나 모임을 위해 굳이 이촌동까지 찾아오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면 과거의 조용하던 동네 분위기는 더욱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 아버님과 산책을 나가면 거리의 나팔꽃과 아파트 베란다의 화초들만 보이는 그런 공간 사이로 인적까지 드문 길을 걸어 다니곤 했었다. 어쩌면 조용한 공원길을 걸어가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는데 이제는 흘러간  세월과 함께 그런 이촌동은 사라지고 좀 많이 다른 인상을 가진 이촌동이 재탄생하게 된 것 같다.


아래 사진은 1983. 3월에 역시 공무원 아파트 앞에서 찍은 누님 사진이다. 사진을 찍은 위치는 현재 충신 유치원이 있는 곳인듯한데 1983년이면 공무원 아파트 완공 후 약 16 년이 지난 시점이고 재건축으로 허물어지기 약 12년 전 시점이다. 그래도 이 시절까지는 이촌동 분위기가 현재와는 달리 꽤 조용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사진 속에 보이는 이 저층 아파트는 모두 사라졌고 또 사진 속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이었던 누님은 60대 중반 할머님이 되어버렸다. 이촌동의 오랜 세월들도 그렇게 흘러갔던 것이다....


사진) 1983년 당시 이촌동 공무원 아파트 모습을 배경으로 찍은 누님 사진.


사진) 2022년 3월 현재 충신 유치원이 있는 공간과 동일한 장소의 약 40여 년 전 1983년 모습. 완전히 전혀 다른 동네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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