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이촌동으로이사 와서 어린 시절 이촌동 안에서 참 많은아파트에거주하는 경험을 해야만했다. 너무도 자주 부모님께서 이사를 다녔기 때문이었다. 이사할 때마다 몹시 성가셨을 텐데 왜 그리자주 이사를 다니셨는지모르겠지만 어쨌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던것 같다.
한편 특이했던 것은 그렇게 자주 이사를 다녔어도 이삿날에 아버님은 항상 평소와 다름없이 소신 있게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오셨다. 따라서 결국 이삿짐은 주간에 어머님 혼자 짐 나르는 인부들을 부리며 처리해야만 했었는데 아버님께서 집안일에 그렇게 무책임한 분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어쨌든 신기하게도 이사에는 그렇게 무관심하셨고 그런 아버님의행동이당시어머님께는매우 큰 불만 중 하나였다.요즘에 남편이 그랬다면 아마 바로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어쨌든 그리 자주 이사를 다닌 덕분에10대 시절 거주했던 이촌동의 아파트들을 순서대로 열거하면 아래와 같이 무려 6개나 된다. 불과10여 년 사이에 이촌동 내 6개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살았던 것이다....
1) 공무원 아파트, 2) 한강 맨션, 3) 한신 아파트, 4) 복지 아파트, 5) 제일 맨션, 6) 청탑 아파트
그런데 이 많은 아파트 중, 한강 맨션과 제일 맨션을 제외한 나머지 아파트들은 이제는 모두 재건축으로 사라져 버려서 더 이상 이촌동에존재하지 않고 이런아파트들이 존재했던 공간에는새로운이름과새로운 모습의전혀다른아파트가 들어서 있다.이촌동에그만큼 긴세월이 흘러갔음을 새삼말해주고 있는셈이다.
한편 아직은 남아있는 1세대 아파트 한강맨션도오래전에 이미 재건축이 결정되었으니 이 아파트 역시 머지않아결국사라질것이고 그렇게 되면 60~70년대 건축되었던이촌동 1세대아파트들은 이제 거의 대부분 전멸하게 되는 셈이다.
아래는 어머님 및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 바로 이 사진 속에 보이는 아파트가 1970년대 초에 찍은 이촌동1세대 아파트공무원아파트 모습이다.90년대중반에재건축으로 허물어지면서 이제과거 기록 속으로 사라져 간 아파트지만 이사진을찍은시점에서는 이 아파트도 완공된 지3년밖에 안된새 아파트였다.
그랬던그 새 아파트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느덧꽤낡은 아파트가 되어버렸고그결과로 1990년대 중반재건축이진행돼한가람 아파트 등 또 다른 새아파트들이들어섰던것이다. 그런데이제그 아파트마저도낡고오래돼또다시리모델링공사가추진되고 있다.60년대 말 이촌동이 어느 순간 대단위 아파트촌이 된 이후 50여 년이라는긴세월은 그렇게눈 깜짝할 사이에후딱흘러가버린것이다....
사진) 우리 가족이 한 때 거주했던 공무원 아파트 24동 집 앞에서 어머님 및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동생과 내가 신은 신발이 같은 디자인인데 이제는 촌스러워 보이지만 70년대 그 시절에는 나름 유행하던 디자인이었던 것 기억이 있다.
사진 중앙에 있는 24란 숫자가 적혀 있는 아파트, 즉 공무원아파트 24동 1층에 우리 가족은 거주했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이 아파트를떠나서한강 맨션으로 이사를 간 후 이 24동 바로 우측에 1978년 이촌역이 들어섰다. 이 사진을 찍은 시점은 아마 이촌역이 들어서기 7~8년 전 1970~1년 아닌가 싶다.
사진) 이촌역 4번 출구 앞의 70년대 초 모습과, 50여 년이 지난 후 2022년 3월의 최근 모습. 같은 장소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도 많이 변했다.
24동 바로 앞 23동에는 초등학교 동창도 거주했는데, 아래 사진은 그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제는 기억 속으로 사라진 과거 70년대 공무원 아파트 건물 뒷면을 볼 수 있는 모습이다.그런데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공무원 아파트는 아파트였음에도 난방으로는 여전히연탄을 사용하고 있었다.북한에서는 요즘에도 나무 장작으로 난방을 하는 아파트들이 정말 많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도 1970년대에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아파트들이 꽤있었던 것이다.
사진) 공무원 아파트 23동과 24동 사이의 잔디에서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1970년 사진.
사진) 70년대 초 공무원 아파트 24동과 23동 사이 잔디와 같은 장소의 2022년 3월 현재 모습. 역시 너무도 다르다.
한편 사진 속의 이 친구는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 여동생도 학교를 일찍 들어와서 우리와 같은 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졸업 후 어른이 되고 나중에 알게 된 놀라운사실은 실제로는 이 남매는 한 살의 나이 차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였다는 것이었다.
남매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 친구 부모님께서 오랜 기간 거짓말을 해왔던 것인데 우리 친구들도 몰랐지만 쌍둥이 본인 당사자들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요즘이야 꽤 흔하게 쌍둥이를 볼 수 있고또 그 사실이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60~70년대 그 당시만 해도 쌍둥이란 사실은 그다지 알리고 싶지 않았던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 이 사진 속의 공간을 보니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당시 어머님께서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운전 연습을 이 공간에서 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차가 후진할 때 왼쪽으로 가려면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핸들을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데, 어머님께서그것을 자꾸 거꾸로 하셔서 어린 나로서는 꽤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완벽하고 완전한 어른으로만 보였던 어머님께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에 혼선을 느끼시는 것이어린 내게는 이해할 수없는행동으로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때 어머님께 정말왜 그러시냐고 문의드렸는데 그 질문에 대한 어머님답변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당시 어머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는 뇌구조가 다르다"라고 답을 하셨던 것이었다. 그런 답으로 인해 남녀 간의 차이에 대해그어린나이에도한번 진지하게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시간이 지나고 보니 실제로는 남녀 차이가 아니고 사람 각 개인별 차이가 아닌가 싶다.
사실 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꽤 유명한 '길치'셨다. 오죽하면 지하도를 통해서 도로를 건너실 때 원하셨던 출입구가 아닌 전혀 다른 엉뚱한 출입구로 나오시는 경우가 어머님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을 정도였다. 아울러 나 역시 유독 어머님을 많이 닮아서 유감스럽게도 우리 집안 '길치2 인자' 자리에 등극되어있었지만 그래도 어머님처럼 전혀 다른 엉뚱한 지하도 구멍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없었다.
친구들 중에는 요즘의이촌동이 참 좋다고 말하는 친구들이많이 있다. 물론 요즘의 이촌동 좋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도 10대부터 지금까지 약 50여 년을 이촌동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 아파트가 있던 그 시절의 이촌동은 요즘에는 접할 수 없는 묘한 향수가 있었고 그래서 그 시절이 훨씬 더 그리운 것 같다. 무엇보다 요즘과 달리 당시 이촌동에 있던 아파트들은 공무원, 한강맨션, 민영 할 것 없이 거의 다 5층 정도의 낮은 아파트만 있었고 아울러 또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은 공터가 아직 이촌동 여기저기 도처에 꽤 많이 흩어져있던 시절이어서 인구 밀도도상대적으로매우 낮았다.
그러다 보니 공기가훨씬 좋았고 또 너무도 조용해서 정말 살기 좋은 그런 완연한 주택가였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그 당시에 건축된 옛날 아파트들은 워낙에 튼튼하게 지어져서 그런지 층간 소음이 정말 없었다. 층간 소음이 매우 큰 사회 이슈로 등장했던 시점은 공무원, 민영 아파트 등이 모두 다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한가람, 강촌, 이촌, 대우 등 이촌동 2세대 아파트들이들어선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조용하던 동네가 변하기 시작했던 시점도 역시 저층 1세대아파트가 재건축으로사라진 이후그 자리에 2세대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또 이촌동 곳곳의 남은 공터에도 새로운 아파트들이 추가로 들어서기 시작해 이촌동의 인구 밀도가 높아지게 된 이후였다.
게다가 동네가 점차유명해지고 또새로 생긴 이촌동몇몇식당들이 이촌동 분위기와 함께 유명세를 타면서 외지에서식사나 모임을 위해 굳이 이촌동까지 찾아오는경우가점차 늘어나면서 과거의 조용하던 동네 분위기는더욱사라지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 아버님과 산책을 나가면 거리의 나팔꽃과 아파트 베란다의 화초들만 보이는 그런 공간 사이로 인적까지 드문 길을 걸어 다니곤 했었다. 어쩌면 조용한 공원길을 걸어가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는데이제는 흘러간그긴 세월과 함께 그런 이촌동은 사라지고 좀 많이 다른 인상을 가진 이촌동이 재탄생하게된 것 같다.
아래 사진은 1983. 3월에 역시공무원 아파트 앞에서 찍은 누님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은 위치는현재 충신 유치원이 있는 곳인듯한데1983년이면 공무원 아파트 완공이후 약 16년이 지난 시점이고 재건축으로 허물어지기 약 12년 전 시점이다.그래도 이 시절까지는 이촌동 분위기가 현재와는 달리 꽤 조용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사진 속에 보이는 이저층 아파트는 모두 사라졌고 또 사진 속에서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이었던 누님은 60대 중반할머님이 되어버렸다. 이촌동의오랜세월들도그렇게흘러갔던것이다....
사진) 1983년당시 이촌동 공무원 아파트모습을배경으로 찍은 누님 사진.
사진) 2022년 3월 현재 충신 유치원이 있는 공간과 동일한 장소의 약 40여 년 전 1983년 모습. 완전히 전혀 다른 동네 같은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