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지 채2년이 안된 1975년 3월 복지아파트라는 곳으로또다시 이사를 했다.1990년대 말 사라진 이 복지 아파트가 당시 있던 곳은 이촌동 동네 초입 현재 센트레빌 아파트가 있는 곳이었다.이촌동의 동쪽 끝 한신 아파트에서 서쪽 끝 아파트로 이사한 셈이었다
이 아파트가 우리 가족이1970년 이촌동으로 이사를온 후 약 5년 사이동부이촌동에서 거주했던 4번째 아파트였다. (공무원 아파트, 한강 맨션, 한신 아파트, 복지 아파트)
아직은어렸던 나는당시에는관심이 없었지만지나고 나서생각해 보니 부모님께서그짧은 기간에 이촌동에서 그토록빈번히이사 다닐 수밖에 없었던이유가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직장에서는이미 퇴직하신 아버님께서 농장사업을하시겠다고투자를 시작하셨지만 아직은고정 수입이없던상태라서경제적으로상당히쪼들렸기때문이었던 것같다.자식들은 아무 생각 없이 성장하던 시절, 부모님은 묵묵히 많은 마음고생을 하셨던 셈이다....
아울러 당시 매매를 해서 입주를 하곤 했던 것인지 아니면전세로 그 많은아파트들을 돌아다녔던 것인지도 나는사실 전혀 모른다.하지만 어쨌든 이촌동에서만그렇게 빈번하게이사를 다녔지 그 동네를 벗어난 적은 전혀 없었고 덕분에 중, 고등학교에다니던 시절 6년 내내단 한 번도 전학을 간 적은없었다.
79년 1월에 이 복지 아파트를떠나또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갔으니먼저 거주했던 다른아파트들과비교해서는 이 복지 아파트에서 나름오랜 기간 살았다. 하지만이 아파트에서 살았던 기간도 4년을 채못채웠다.다만, 나로서는 중학교시절부터 고등학교졸업할 즈음까지내 인생에있어서가장민감하고애틋한사춘기시절 거의대부분을이 아파트에서 보냈으니그만큼인연과정도나름 깊었던 아파트였다.
하지만 세월이 정말무서운 것인지 40여 년이 넘게 세월이 흘러버린현재이 아파트에서 살았던시절과관련된기억은남은 것이거의 없는 것 같다.
90년대 말 이촌동에 재건축이 1차 유행했을 당시 이 복지 아파트도 함께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철거되었고 그자리에2001년 '동부센트레빌'이 들어서현재까지남아있다.
아래 사진은 그복지 아파트가 철거돼이촌동에서사라지기 약 20년 전인 1978년에 찍은 사진으로 70년대 이촌동에존재했던과거복지 아파트모습을 볼 수있다.
이 사진은일본에 거주하던 아버님 친구재일교포분아들이한국에서개최되는 어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우리집에서함께 식사후에집 근처에서 기념으로 찍은사진이다.
사진 오른쪽이 이제는 사라진 복지 아파트인데, 뒤편으로는 아직도 남아 있는 타워 아파트도 보인다. 사진 왼쪽 도로는 지금도 이용되는 강변 북로다.
사진) 2022년 현재 기준으로 약 44년 전인 1978년 10월복지 아파트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아버님 53세, 어머님 47세, 누님 20세 때사진인데,현재 기준으로는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91세, 누님은 64세다. 이미 사라진 복지 아파트 앞에서 이 사진을 찍었던70년대 말 당시만 해도 가족 모두 건재하고 또 건강했는데,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린 이제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우리의 시간,건강, 인생모두야속한 세월과 함께 그렇게 이촌동에서흘러갔던것이다.
사진) 위 사진을 찍었던 시점에서부터 약 42년이 흐른 이후 2020년 3월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 세월과 함께 주변 모습이 꽤 많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오른쪽의 복지 아파트는 동부센트레빌 고층 아파트로 바뀌어 있고, 좌측타워 아파트는 현재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 앞에는1999년완공된 '퀸즈빌'이라는 아파트가 새롭게들어서 있는 모습을볼 수 있다. 이처럼이 주변많은 것들이 바뀌어버렸지만타워아파트 그리고 바로 옆 쌍둥이 같은 빌라 아파트는 50여년 즉 반백 년 가까이시간이 지난현재까지도동부 이촌동 한강 바로 앞을 우뚝 서서 지키고 있다.
사진) 나란히 서 있는 타워와 빌라 모습 (2022. 4월)
복지 아파트 단지 내부에는 작은 구멍가게도하나있었다.그 가게 덕분에저녁 늦게 출출하면 좀떨어져 있는근처의슈퍼에까지가지 않고 집 문 열고 나와서 걸어 3~4분이면 도착하는 그 가게에서 라면을 사 와서끓여먹기도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구멍가게는 이미오래전에문을 닫았고 이후그 장소는 여러 번용도가 변경되었는데최근 다시가 보니현재는어느인테리어 회사가 사무 공간으로사용하고있었다.
사진) 70년대 이 일대가 복지 아파트였던 시절에는사진의 하단 인테리어 사무실이 있는 곳에작은구멍가게가 있었다(2022. 4월).
한편 위 첫 번째 사진에 보이는 타워 아파트는 73년 완공된 아파트로 60평이 넘는 큰 평수가 많아서 26평대 정도이던 내가 살던 복지 아파트와는 비교 안될 만큼 넓었다.그만큼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는 말인데 꽤나가까운 중학교동창도그 시절이 아파트에 살고있었다.
그런데이 친구가중간고사 같은시험공부를할 때는자기집에서같이 밤새워공부하자고 제안을하기도 했었고 그런이유때문에부자 아파트인 이 타워 아파트에는나름 자주가기도 했었다.
지금도 여전하기억난다.60평이 넘는 타워 아파트그 친구 방 면적이 당시 내가 살던우리 집, 즉 전체 면적26평짜리복지 아파트 거실과 비슷할 정도로넓었다는 것을....
이 친구 집에서 시험공부할 때 물론목표는항상밤을 새워 공부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밤을 새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대부분의 경우자정을결국넘기지 못하고우리 둘 다 잠에 곯아떨어지곤 했었다. 한참 성장하던 10대 중학생 시절은너무도잠이 많은 시절이었다.그저 어디든 누우면 바로 잠에 빠졌던 것 같은데 나이든 이후불면으로고생하는 요즘과는 정말 너무많이 다른 상황이다.
한편 다행히 내 성적이 나름 꽤 좋은 편이어서 내가 이 친구 집으로 가서 밤에 같이 공부하겠다고 하면 친구 부모님들은 언제나대환영이었다. 왜냐면 이 친구는 사실성적이별로좋지 않았기때문이었다.요즘에도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70년대 그 당시는 성적이 안 좋은 학생 부모들이 선생님께 모종의 선물(?) 공세까지 해 가며성적이 좋은 학생과 짝이 되게끔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었다. 한마디로 성적 좋은 학생들은 그처럼 난무하는 선물 공세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사이에 담임 선생님에 의해 성적이 별로 안 좋은 학생들의 짝이나 가까운 친구로 팔려(?) 가기도 했던 셈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다 보니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이 부잣집 친구 집에서 밤에 같이공부하면서 너무도 맛있게 함께 먹었던 야식이다. 이 야식은 일종의 라면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라면으로 유명한 기업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꽤 오래전부터빵으로 유명했던 삼립에서 만든'하이면'이라는라면이었다.이 라면은 즉석가락국수같은 라면이었는데 일반 라면과달리 튀기지 않은 라면이었고나도 당시 매우좋아했지만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나름높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이 제품은 이후오래지 않아서거리의 상점에서는 좀처럼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완탕이들어간완탕면이라는 라면도 수시로 이 집에서 한밤중에 같이끓여먹곤했는데그완탕면도 역시 너무 맛이 있었고그완탕면 또한 삼립에서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먹어도돌아서면바로 또배가고프던, 심지어 돌을 끓여 먹어도 바로 소화가된다는10대 중반 시절이었으니 야심한밤에 친구와함께끓여먹곤 하던가락국수 그리고 완탕면같은야식이얼마나 맛있었겠는가?
목표로 했던 밤샘 공부는 전혀 남은 기억이 없고 그저 너무 맛있는 야식을 주야장천 먹었던 기억만 남아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시절 그 라면 생각이 나서 슈퍼에 가서 자세하게 보니몇몇 슈퍼에는 하이면이 여전히 있었다. 즉 1970년대 당시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하이면을역시 볼 수 있었고,게다가어느 날양재역에가보니 지하철역사에 하이면이란 브랜드를 사용하는 국숫집도 볼 수가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하이면이란 국숫집은 삼립에서 운영하는 국숫집으로 그곳양재뿐만 아니라 전국 여기저기꽤 많은 매장을 갖고 있는 체인점이었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하이면을 그렇게 슈퍼에서 다시 보게 되니 70년대 친구 집이 있던 타워 아파트에서 밤에 친구와 함께먹었던 바로 그 하이면 맛이 입가에 새삼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그 맛 너무도 좋았는데 세월이 무수하게흘러나이가 '푸~욱' 들어버린 이제는10대그 시절 느꼈던 그맛을 다시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