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LT Apr 17. 2022

이촌동 연가 (8)

■ 복지 아파트, (타워 맨션) - 1/2

한신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지  2년이 안된 1975년 3월 복지 아파트라는 곳으로 또다시 이사를 했다. 1990년대 말 사라진 이 복지 아파트가 당시 있던 곳은 이촌동 동네 초입 현재 센트레빌 아파트가 있는 곳이었다. 이촌동의 동쪽 끝 한신 아파트에서 서쪽 끝 아파트로 이사한 셈이었다


 아파트가 우리 가족이 1970년 이촌동으로 이사를 약 5년 사이 동부 이촌동에서 거주했던 4 번째 아파트였다. (공무원 아파트, 한강 맨션, 한신 아파트, 복지 아파트)


아직 어렸던 나는 당시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부모님께서  짧은 기간에 이촌동에서 토록 빈번히 이사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직장에서는 이미 퇴직신 아버님께서 농장 사업을 하시겠다고 투자를 시작하셨지만 아직은 고정 수입이  상태라서 경제적으로 상당히 쪼들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식들은 아무 생각 없이 성장하던 시절, 부모님은 묵묵히 많은 마음고생을 하셨던 셈이다....


아울러 당시 매매를 해서 입주를 하곤 했던 것인지 아니면 전세로 그 많은 아파트들을 돌아다녔던 것인지도 나는 사실 전혀 모른다. 하지어쨌든 이촌동에서만 그렇게 빈번하게 이사를 다녔지 그 동네를 벗어난 적은 전혀 없었고 덕분에 중,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6년 내내 한 번도 전학을 간 적은 없었다.


79년 1월에 이 복지 아파트를 떠나 다른 아파트이사 갔으니 먼저 거주했다른 아파트들과 비교해서는 이 복지 아파트에서 나름 오랜 기간 살았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았던 기간도 4년을   채웠. , 나로서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까지 인생에 있어서 가장 민감하고 애틋한 사춘기 시절 거의 대부분을  아파트에서 보냈으니 그만큼 인연과  나름 깊었던 아파트였다.


하지만 세월이 정말 무서운 것인40여 년이 넘게 세월이 흘러버린 현재  아파트에서 살았 시절과 관련된 기억 남은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90년대 말 이촌동에 재건축이 1차 유행했을 당시 이 복지 아파트도 함께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철거되었고  자리에 2001년 '동부 센트레빌'이 들어서 현재까지 남아있다. 


(복지 아파트 재개발 관련 1996년 기사)

https://www.hankyung.com/realestate/article/1996031501651

(재개발된 이후 한강에서 본 센트레빌 아파트 모습)

사진) 복지 아파트가 재개발된 후에 대신 들어선 센트레빌 아파트 모습(2022. 4월)


아래 사진은  복지 아파트가 철거돼 이촌동에서 사라지기 약 20전인 1978년에 찍은 사진으로 70년대 이촌동에 존재했던 과거 복지 아파트 모습을 볼  다.


이 사진은 일본에 거주하던 아버님 친구 재일교포분 아들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어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우리 집에서 함께 식사 후에  근처에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오른쪽이 이제는 사라진 복지 아파트인데, 뒤편으로는 아직도 남아 있는 타워 아파트도 보인다. 사진 왼쪽 도로는 지금도 이용되는 강변 북로다.  


사진) 2022년 현재 기준으로 약 44년 전인 1978년 10월 복지 아파트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아버님 53세, 어머님 47세, 누님 20세 때 사진인데, 현재 기준으로는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91세, 누님은 64세다. 이미 사라진 복지 아파트 앞에서 이 사진을 찍었던 70년대 말 당시만 해도 가족 모두 건재하고 건강했는데,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린 이제는 우리 가족의 모습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 우리시간, 건강, 인생 모두 야속한 세월과 함께 그렇게 이촌동에서 흘러갔던 것이.


사진) 위 사진을 찍었던 시점에서부터 약 42년이 흐른 이후 2020년 3월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 세월과 함께 주변 모습이 꽤 많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오른쪽의 복지 아파트는 동부센트레빌 고층 아파트로 바뀌어 있고, 좌측 타워 아파트는 현재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 앞에는 1999년 완공된 '퀸즈빌'이라는 아파트가 새롭게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주변 많은 것들바뀌어버렸지만 타워 아파트 그리고 바로 옆 쌍둥이 같은 빌라 아파트는 50여  반백 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동부 이촌동 한강 바로 앞을 우뚝 서서 지키고 있다.


사진) 나란히 서 있는 타워와 빌라 모습 (2022. 4월)


복지 아파트 단지 내부에는 작은 구멍가게도 하나 있었다. 그 가게 덕분에 저녁 늦게 출출하면  떨어져 있는 근처의 슈퍼에까지 가지 않고  문 열고 나와서 걸어 3~4분이면 도착하는 가게에라면 와 끓여 기도 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구멍가게는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았이후 장소 여러  용도가 변경되었는데 최근 다시  보니 현재는 어느 인테리어 회사가 사무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진) 70년대 이 일대가 복지 아파트시절에는 사진의 하단 인테리어 사무실이 있는 곳에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 (2022. 4월).


한편 위 첫 번째 사진에 보이는 타워 아파트는 73년 완공된 아파트로 60평이 넘는 큰 평수가 많아서 26평대 정도이던 내가 살던 복지 아파트와는 비교 안될 만큼 넓었다. 그만큼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는 말인데 꽤나 가까운 중학교 동창도  시절 아파트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중간고사 같은 험공부를 때는 자기 집에서 같이 밤새워 공부하자 제안을 하기도 했었고 그런 이유 때문에 부자 아파트인 이 타워 아파트에는 나름 자주 가기도 했었다. 


지금도 여전하 기억난다. 60평이 넘는 타워 아파트 그 친구 방 면적이 당시 내가  우리 집, 즉 전체 면적 26평짜리 복지 아파트 거실과 비슷할 정도로 넓었다는 것을....


(타워 아파트 내외부 모습)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ichon-open_estate&logNo=221927118103&proxyReferer=


이 친구 집에서 시험공부할 때 물론 목표는 항상 밤을 새워 공부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밤을 새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대부분의 경우 자정을 결국 넘기지 못하고 우리 둘 다 잠에 곯아떨어지곤 했었다. 한참 성장하던 10대 중학생 시절은 너무도 이 많은 시절이었다. 그저 어디든 누우면 바로 잠에 빠졌던 것 같은데 나이 이후 불면으로 고생하는 요즘과는 정말 너무 많이 다른 상황이다.


다행히 내 성적이 나름 꽤 좋은 편이어서 내가 이 친구 집으로 가서 밤에 같이 공부하겠다고 하면 친구 부모님들언제나 대환영이었다. 왜냐면 이 친구는 사실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즘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70년대 그 당시는 성적이 안 좋은 학생 부모들이 선생님께 모종의 선물(?) 공세까지 해 가며 성적이 좋은 학생과 짝이 되게끔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었다. 한마디로 성적 좋은 학생들그처럼 난무하는 선물 공세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담임 선생님에 의해 성적이 별로 안 좋은 학생들의 짝이나 가까운 친구로 팔려(?) 가기도 했던 셈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다 보니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부잣집 친구 집에서 밤에 같이 공부하면서 너무도 맛있게 함께 먹었던 야식이다.  야식은 일종의 라면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라면으로 유명한 기업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꽤 오래전부터 빵으로 유명했던 삼립에서 만든 '하이면'이라는 라면이었다.  라면은 즉석 가락국수 같은 라면이었는데 일반 라면과 달리 튀기지 않은 라면이었고 나도 당시 매우 아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나름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이 제품은 이후 오래지 않아서 거리의 상점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완탕이 들어간 완탕면이라는 라면도 수시로 이 집에서 한밤중같이 끓여 먹곤 했는데  완탕면도 역시 너무 맛이 있었고  완탕면 또한 삼립에서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먹어도 돌아서면 바로  배가 고프던, 심지어 돌을 끓여 먹어도 바로 소화가 된다는 10대 중반 시절이었으니 야심한 친구와 함께 끓여먹곤 하 가락국수 그리고 완탕면 같은 야식이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목표로 밤샘 공부는 전혀 남은 기억이 없고 그저 너무 맛있는 야식을 주야장천 먹었던 기억만 남아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시절 그 라면 생각이 나서 슈퍼에 가서 자세하게 보니 몇몇 슈퍼에는 하이면이 여전히 있었다. 즉 1970년대 당시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하이면을 역시  있었고, 게다가 어느  양재역에 보니 지하철 역사하이면이란 브랜드를 사용하는 국숫집도 볼 수가 있었는데 검색 보니 하이면이란 국숫집은 삼립에서 운영하는 국숫집으로 그곳 양재뿐만 아니라 전국 여기저기  많은 매장을 갖고 있는 체인점이었다. 


사라진 줄로 알았던 하이면을 그렇게 슈퍼에서 다시 보게 되니 70년대 친구 집이 있던 타워 아파트에서 밤에 친구와 함께 먹었 바로 그 하이면 맛이 입가에 새삼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그 맛 너무도 좋았는데 세월이 무수하게 흘러 나이가 '푸~욱' 들어버린 이제는 10대  시절 느꼈던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이면 지면 광고)

https://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647

(하이면 TV 광고)

요즘보다 최소 40년 이상 젊으신 송해 선생님과, 작고하신 여운계 선생님의 40여 년 모습을 볼 수 있는 70년대 광고.

https://youtu.be/OJQuSBj516Q (00:19)

https://youtu.be/iUMZ3V3s-Kw (00:20)

이전 07화 이촌동 연가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