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아파트에살다가 79년 인근에 있는 제일 맨션이라는9층, 한 동짜리 아파트로또이사를 갔다.70년 이촌동으로 이사 와서 1) 공무원 아파트, 2) 한강 맨션, 3) 한신 맨션, 4) 복지 아파트에 이어 거주했던 5번째 이촌동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세대 수가 불과 24 세대로써74년 완공된 인근노들 맨션(18세대)및 코스모스 맨션(30세대) 등과함께아마도이촌동에서 가장 적은세대수를갖고 있는 아파트가 아닌가 싶다.그리고 이처럼 달랑 건물 한 동에 세대수까지꽤 적어그런지 요즘도동네를 걸으면서이촌동큰 길가에홀로서있는이아파트를보게 되면과거 이곳에 살던 시절 기억도 어렴풋이 나지만 왠지 유독썰렁하고외로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사진) 제일 맨션.이촌동동네 입구에있는 아파트다.
제일 맨션은 76년에 완공된 아파트로서현재 시점 2022년기준으로는 46년 정도나 된 나름 오래된 아파트지만 우리 가족이 이사 가던 79년 기준으로는 완공된 지 채 3년밖에 안된 새 아파트였다.
또 이 아파트는 그 면적이 약 40평으로 26평 정도였던 복지 아파트보다는 훨씬 넓었는데 주민등본을 보면 1980년대 중반까지 최소 5년 이상 이 집에서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역시 세월이 너무도 많이 흘러 그런지 이제 이 집 내부 구조조차도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그 내부 구조를 찾아보려 인터넷에서 검색까지해 봤지만 세대수가너무도적어서인지 인터넷에서도이 아파트 내부평면도는찾을 수가 없었다.
거의 성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학 시절을 포함해서 5년이 넘도록 살았던 집이었음에도 내부 구조도 전혀 기억을 하지 못 하고 있으니 사람이 살아온 과거 세월이 참 허망하기만 한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 인생 시간이 이미 그토록 많이 흘러버렸다는 서글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약 5년 간 이 아파트에 살면서겪었던 오래전70~80년대기억들도 그렇게 거의 대부분을이미잃어버렸다. 그렇지만그래도지금까지 남아있는기억이몇 가지 있다.
● 지하고깃집과쥐
첫째는 요즘은 필라테스 시설로 운영되는 곳인데 과거 한때식당이었던 이 아파트 지하실에 대한 기억이다. 이 식당에 대해서는 식당 음식과 그 맛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 반면,식당의냄새와 관련된뚜렷하게 남아있다.
이 식당은 불고기 등 여러고기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는데,고기 굽는 냄새가 아파트 위층에 모조리전달되어 1~2층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8층에 있던 우리 집에까지 그 냄새가 그대로 올라오곤 했었다.그러다 보니이 냄새 문제에 대한 아파트 전체주민들의불만이 꽤 심했다.
다만 솔직히내 경우는 그 냄새가 그렇게 자극적이라고는느끼지를 못했다. 그렇지만 부모님 포함 아파트에 거주하던 다수의 주민들이그런불만을 갖고있다는 것만은부모님을통해서익히전해 듣고 있었고, 이 문제로 아파트 주민들과 식당 사이에 몇 차례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주민들이갖고 있던더 심각한 불만은그 식당 고기 냄새 자체보다는 그 냄새로 인해서주변에서부터 제일 맨션으로 몰려드는 쥐들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 고깃집으로 인해 인근 이촌동 다른 아파트들 대비 제일맨션에만유독쥐들이많이 꼬인다는것이었다.
그리고결국입주민들의반복되는 이런불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기본적으로 장사가 잘 안 됐던 이유에서였는지 오래 지나지 않아 이고깃집은 폐업했고 이후 그 공간은 식당이 아닌 다른 상업용 업체들만 입주했었다. 아마도 입주민들이 지하에 식당이 다시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사실이촌동 주변을 돌아봐도 한강 맨션이나 현대 아파트처럼 아파트 건물 저층에 불고기 집과 같은 식당들이 들어서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제일 맨션 경우만 식당으로 인해 발생하는 쥐 문제가 유독 더 심각했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어쩌면 그 시절이서울의도심에도쥐가워낙에많았던 시절이라서 아파트 입주민들이쥐 문제에좀 더민감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요즘도 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70~8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은말할 것도 없고 이촌동에도 쥐가 정말 많았다. 한마디로그 시절은 이촌동 그 많은 아파트거의 전부에서 쥐들이 천장에서 뛰어다니는 소리가 가득했던시절이었던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요즘에는 쥐 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는 반면 위층 입주민의 발 망치 등 전혀다른형태의 층간 소음으로 시달려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왜 그런차이가 나는지 정확히 모르겠고, 나 역시 그 이유가 궁금하지만 90년대 이후 건축된 아파트와는다르게 60~70년대 완공된 제일 맨션, 공무원 아파트, 민영 아파트 등 이촌동 아파트에는 쥐 소리는 들렸지만 발 망치와 같은 그런층간 소음은 정말로 들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런 층간 소음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은 90년대 완공된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선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60~70년대 완공된 아파트들은 서울에서 아파트가 처음으로 건설되던 초창기라설계와 건축 모두 원칙대로만 탄탄하게 진행됐기 때문아니었을지....
층간 소음으로만 보면 요즘과 달리 과거 그 시절은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 백주 대낮의 깔끔한 결투
두 번째는 제일 맨션 8층 방에서 뒤편 창밖을 내려다보다가우연히 보게된 장면인데 우리 아파트 바로 뒤의 코스모스 아파트 경비원 분과 배달하시는 분 간의 1분도안 되는짧은 맨주먹싸움이었다.
요즘은 경비원 분들이 연세가 꽤 있으시지만, 70~80년대 그 당시는 젊은 분들도 좀 있었던 것 같다. 코스모스 아파트 경우도 그런 경우였는데 배달하시는 분이 아파트 입구에서 들어가려는 순간에 경비하시는 분이 제재를 했고 이후 매우 짧은 대화가 한두 마디 오고 가더니 곧바로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상호 간에 주먹이 오고 가는 난타전이 이어졌다.
사진) 코스모스 아파트 모습. 마산 아귀찜이라고 적혀있는 간판 바로 아래에서 두 사람 간 주먹싸움이 벌어졌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경비인력이 배달 인력 주먹에 맞아서땅바닥으로 주저앉게 되는 장면이 연출됐고 이후 두사람은더 이상의 교전 없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존에 하던 자신의 일을 조용히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싸움은어찌 보면 좀 싱거울 정도로 짧게 끝났는데 너무깔끔하게 싸움이 끝나서 나는 당시이촌동 지역'경비와배달'업계는나름대로상호 간 합의되고 정해진 어떤 교전 규칙을 갖고 있는 것이아닌가 하는생각까지 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이촌동에서는 좀처럼보기가어려운70~80년대 백주 대낮이촌동에서의 깔끔한 맨주먹싸움에 대한 기억이다
● 외삼촌의 마지막 말씀
세 번째는 제일 맨션으로 어느 날 찾아왔던 외삼촌에 대한 기억이다. 이 외삼촌은비록 사정이 있어 졸업은 못했지만 1950년대에서울대에한때 다녔을 정도로 인텔리셨고, 또머리도그만큼좋으셨다고 한다. 하지만머리가 지나치게 총명한분들이 정신 질환에는 오히려 더 취약하다는 분석이 사실인지 여덟 분이나 되는 외삼촌 중에 유일하게 정신병을 앓고계시던 분이셨다.
전혀 멀쩡하셨던 분이 40대가 넘어서 그런 질환이 갑자기 생기셨는데, 그 병 때문에 이 외삼촌은 때로는 매우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셨고 그 시절아직은어렸던 내게는그러한 언행을 보이는외삼촌이 사실좀무섭기도했었다.
그런데 하필 부모님이 모두 집에 안 계시던어느 날대낮에 나와 동생 단 둘만 집에 있는데 이 외삼촌이집으로 찾아온 일이있었다. 그때 무서워서 문을열까 말까 잠시망설이다 결국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을 조금만 열고 부모님께서 안 계신다고 했더니 외삼촌은 들어오려고 하지도 않고 곧바로간다고 하셨다. 집 안으로 들어와서 부모님을 기다리겠다고 말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형제가 공포에 휩싸인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잔뜩 경계하고 있으니 그런 말을 하기가 나름 부담스러워 곧바로 발길을 돌리시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등을 돌려 돌아가시기 직전에 외삼촌은 나를 보고서 "철영아, 내가 이상한 행동 한 것 전혀 없다. 그렇지?'라며본인이 취하셨던 행동을 한 번 다짐하고 확인하는말씀을 하셨다.
한편 그 말씀을 하시던 그 순간만은 외삼촌은아무런 정신 질환이 없는완전히 멀쩡하던 과거의 외삼촌처럼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외삼촌이자신의언행에꽤 큰부담감을 갖고어린 조카로부터확인까지 받으려 했던모습이마음에나름 걸렸다.
나는 외삼촌의 그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고, 외삼촌은 내 답과는 관계없이 등을 돌려서 아파트 긴 복도를 되돌아 터벅터벅 걸어가셨는데 뭔가 좀 많이 미안했던 나와 동생은 그렇게떠나시는 외삼촌뒷모습만한동안 멍하니바라보고 있었다.
이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이 외삼촌은 친척들과 연락이 완전히 끊겼고 아마도 서울어딘가를혼자서배회하시다가사망했을 것이라고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실제이후 40년이 다 되도록 우리 친척 누구도 이 외삼촌과 연락이 되셨던 분은 없었다. 그처럼 총명하셨다는 외삼촌은 그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먼저 멀리 떠나가셨던 것이다.
결국 생각해보니 제일 맨션에서 헤어지면서 하신 그 말씀, 즉 "철영아 내가 이상한 행동 한 것 전혀 없다 그렇지?"라는 확인하는듯한그말씀이 그분이 아직 이 땅에 살아계시던 시절내가 들은그분의마지막 말씀이었던 셈이다.
나도 언젠가 이 땅을 떠날 텐데, 새로운 세상에서 먼저 떠난 외삼촌을 다시 만나게 되면 무엇보다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그날 그때는 정말미안했었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사진) 외삼촌(앉아계신 분)이정신 질환이 전혀 없던 시절 군 복무할 때면회 온 누님(내 어머님)과 함께 찍은 50년대 말사진.이 외삼촌사진은 이렇게 오래된 사진밖에 없다....
● 귀소 본능
네 번째는 신입생 환영회 때인가 대학생 시절 술을 너무도 많이 마신 후에 거의 실신한 상태로 집에 오다 아파트 현관 출입구에서 졸도한 사건이다.
아무리 취했어도소위 말하는 귀소 본능이 작동했던 것인지 집이 있는 아파트까지는 정말 악착 같이 찾아왔는데 마침내 집이 보이니 집에 도착했다고 안심이돼서그랬는지 아파트 출입구에서그대로 졸도했던 것이었다. 당시 경비 아저씨가 막 깨우곤 했던 기억은지금도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데 그 이상의 더 자세한 기억은전혀 없다.
사진) 70년대 말 내가 쓰러져 있던 장소. 제일 맨션이라고 적혀 있는 문구 바로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파트 출입구 현관 앞에서 땅바닥에 그대로 쓰러졌음에도 어디 하나 깨지거나 다친 곳은 전혀 없었다.아마도 아직은 건강한 몸으로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이후에도 술을 즐겨 마시긴 했지만그렇게 떡이 되도록 술을마시고 집 앞에서 실신했던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또 마지막이었다.
한편 꾸준하게 술을 마시는 것이,어쩌다 한 번의 폭음보다 오히려 훨씬 나쁘다고 하는데 내 경우 불행하게도과거에는이날처럼 어쩌다 폭음하던 습관에서 언젠가부터 정확하게일정량만을 꾸준하게 마시는 것으로 음주 습관이 바뀌었고아직도 그 나쁜 습관이 유지되고 있다.
담배는 13년 전동생이 뇌출혈로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한 방에 끊고 이제는 전혀 생각조차 나지 않으니 확실히 끊은 것 같다. 술도 그렇게 끊고 싶은데정말잘 안된다.... 적어도내게는 '금주'는 '금연'보다 정말더힘든 것 같다....
하긴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과음하지 않고 매일 일정량을 그것도 오직 저녁에만 꾸준하게 반주로 드셨던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2~3일 전 동대문 이대 부속병원에 누워계실때창밖 동대문거리를 바라보시면서 하셨던 말씀이"동대문에 러시아 술을 팔던 식당이 이 병원 근처에 있었는데, 오래전 젊은 시절 그 술 마시던 생각이 참으로 그립구나"였다, 그때 아버님은 이미 당신임종이 가까웠던 어려운 상황이란 것을어느 정도 짐작하고 계셨는데도그러한 말씀을 하실 정도로 술 생각이 간절하셨던 것이다.그런데 내가 바로 그분의 친 아들인지라....
어쨌든 그리고 며칠 뒤에일제 강점기1925년부터 시작된76년의 이 땅에서의 파란만장한 시간들을 아버님은조용히마감하셨다....
● 제일 맨션 옥상에서의 마지막 술....
다섯 번째는 좀 섬뜩한 사건이지만 초등학교 동창생의 자살 기도 사건이다. 우리가 대학생 시절이던 어느 날 그 동창이 너무 괴롭다며 술 한잔 마시자 해서 제일 맨션 우리 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런데 술을 이미너무많이 마셨음에도 그 친구가 굳이 더 마시자고우겨서 결국 아버님께서 식탁 옆에 진열해 놓으셨던 독한양주 중에 한 병을 몰래 빼내어들고 아파트옥상으로올라가서 술을또 마셨다.
그리고술이 본격적으로 좀 더 들어가니 마침내그 친구가 그렇게 괴롭다고 하소연하는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놀랍게도아버님,어머님으로만알고 있었던 분들이 알고 보니 사실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님이셨다는것이었다. 친 어머님은 내 친구를 낳으신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고아버님은지병으로 돌아가신 그 어머님이 너무도보고 싶다며곧이어 자살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내 친구는 큰 아버님, 큰 어머님께서 키우셨는데 그간 이러한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던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도 당연히 정말 놀랐는데 나보다 훨씬 더 놀랐을 그친구는 그런 아버님에게 몇 가지 질문들을 하기 위해서자신도 똑같이자살해서 아버님이 계신 그 세상으로가겠다고우기기 시작했다. 그 친구표정을 보니 이미그런작정을 하고서 그날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술을 마시는것 같았다.
아버님이 어머님을 너무도 사랑해서 그런 결정을 하신 것은 한편으로는 이해하겠는데 그럼남겨진 자식은대체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왜 전혀 아무답도 주지 않고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이해가 안 되고 그 이유를반드시 저승에찾아가서아버님께 꼭 따져 보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친구는 그날 우리 집과 옥상에서 정말 많은 술을 마셨고 집에 가서 혼자 또 더 마셨다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살하기위해서 수면제까지도결국 대량으로 복용했는데 의외로이런모든 행위들의결과 그는 죽지 않고 마치 전혀 아무런 일도없었던 것처럼 멀쩡하게살아있었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 보니, 그날 그 친구가 술을 너무도 많이 마셔서어느 순간 실신했고 그런 상태에서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사이에그동안 먹은것들을 모두 토해버렸는데그때 복용했던 다량의 수면제 성분이 동시에 배출되었기 때문에 살았다고 했다.너무 많이 마신 술이오히려 그 친구목숨을 건진 것이었고 그 덕에 그날 제일 맨션 옥상에서 마셨던 그 많은 술이 이 친구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술이 되지 않았던 셈이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에그 친구를 보면 한때 자살을 시도했던사람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도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서, 결혼 후 아이들 다 키워 시집과 장가보내고 지금도아주 잘 살고 있다.그런 모습을 보면 그 친구가 정말한때 자살을 시도했던 바로그 친구가 맞는지의아스럽기도 했다.
한편이이야기를 언젠가어머님께말씀드렸더니 1931년 태어나신 어머님 말씀이 본인도 그 사건을 알고 계시며,그 부부의 애절한'러브스토리'는그 시절을 살던서울의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하셨다.
다만 자살을 시도한 내 친구가 바로 그유명한 러브스토리 주인공분들의 아들이었다는 것은 전혀 모르셨다 하시며 그 친구가 그분들 아들이었다는 사실에 몹시 놀라기도 하셨다. 정말 엄청난세상 이야기는 그렇게 대를 이어 우연히 다시 접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저승에 아버님이 계시다고 믿고그곳으로가서 따지겠다고 말한 내 친구 주장대로라면, 내 친구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서 자연스럽게 저 세상에서 아버님을 다시 만날 텐데, 이촌동 제일 맨션에서 나와 만났던그날 20대 초 나이에 왜 그리도 급하게 서둘러 아버님을 만나려고 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