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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r 20. 2022

우아하게 장바구니

단단한 행복이 있는 섬 '돈없이도' 01

주말에 간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 앞에 네 명이 줄을 서 있었고 나도 그 뒤에 섰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직원에게 모바일 쿠폰을 보여주고 조각 케이크 네 개를 골랐다(초밥이가 말한 오레오 치즈케이크를 찾느라 힘들었다). 쿠폰으로 조각 케이크를 사면 음료 한잔을 추가해야 한다고 해서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포인트 적립, 쿠폰, 현금영수증을 줄줄이 묻는 직원에게 현금영수증만 하겠다고 했다.  

    

매장을 나온 내 손에는 네 개의 케이크 박스가 들려있었다. 커피는 텀블러에 담았다. 케이크를 사는데 무슨 절차가 이렇게 많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원과 손님 모두 진이 다 빠지게 하는 과정들을 왜 있는 걸까. 합리적 소비와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착각하게 하는 마케팅.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직원의 수고로움과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게 만드는 마케팅이기도 하다. 손바닥보다 작은 케이크를 먹고 나서 남은 박스, 플라스틱 용기를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는 산책 후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하는데 집에서 동전 800원과 텀블러를 가지고 나간다. 드립 커피는 1,000원인데 텀블러를 사용하면 800원. 현금영수증은 (묻지도 않지만) 하지 않는다. 집에 굴러다니는 동전이라 공짜 커피를 마시는 기분에다 결제도 간단하다. 이것이 진정한 스루. 쓰레기도 없고 직원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적게 하게 해서 만족스럽다.       

   

문득 돈 없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라는 파도를 헤치고 단단한 행복이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섬을 찾아 나서는 거다. 그 섬의 이름은 ‘돈없이도’     

 

돼지고기 뒷다릿살은 삼겹살 가격의 삼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맛은 뒤지지 않는다. 뒷다릿살은 수육이나 김치찜에 제격이다. 뒷다릿살이 질기다는 선입견은 오래 삶지 않아서인데 백종원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수육은 두 시간 반, 김치찜은 한 시간 반을 푹 삶으면 풀드포크처럼 바스러지는 식감을 즐길 수 있다.  

       

김치찜 하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어서 나는 아침 메뉴로 애용한다. 뒷다릿살 1kg에 김치, 설탕, 간 마늘, 고춧가루, 된장, 맛술, 파를 넣고 물은 재료가 잠길 만큼 부은 다음 한 시간 반을 푹 끓이면 된다. 오늘 아침에는 된장을 깜빡했고 시간이 부족해서 50분을 삶았는데도 충분히 연하고 맛있었다.     

  

“비계 좀 잘라줘.”     

살코기와 비계를 함께 먹어야 맛있다는 걸 아는 15년생 딸에게 김치를 길게 찢어서 밥에 얹어줬다. 김치에 고기를 야무지게 싸 먹는 초밥이한테 말했다.     

“이게 다 근육을 만들어주잖아. 말라도 탄탄한 몸이 멋있는 거야”     


신체검사하는 날이라며 아침을 안 먹고 가겠다던 초밥이는 이렇게 김치찜에 항복하고 한 그릇 깨끗하게 비웠다. 비싸지 않은 재료로 한 요리를 맛있게 먹는 일은 작지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예전에는 김치찌개에도 목살을 넣었다. 비싸다고 더 맛있는 게 아니라 식재료 제각각의 맛이 다를 뿐인데 비싼 걸 넣으면 당연히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양한 식재료는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에 안심이 되게 한다. 사치라면 싱싱한 제철 음식을 챙겨서 먹는 게 아닐까. 어제 잘 먹었더라도 오늘은 오늘치 밥을 먹어야 하니 부지런히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만이 이 사치를 누릴 수 있다.          


이맘때 나오는 미나리는 연하고 향이 좋은데 그중에서도 청도에서 생산되는 ‘한재 미나리’가 최고다. 청도가 고향인 동동맘이 갖다 줘서 나도 올해 처음 먹어봤는데 국, 무침 어디에 넣어도 맛있어서 다 먹어갈 때쯤 이걸 수경재배를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 마트에 딱 ‘한재 미나리’가 있는 게 아닌가.     

수경 재배하고 싶었던 '한재 미나리'

반가운 마음에 동동맘한테 이 사실을 전했더니 미나리를 오징어무침에 넣어보라고 하길래 바로 만들었다. 쑥갓과 미나리의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에 취해있다 보면 오징어가 주인공은 나라며 반격하는 맛이었다. 혼자 먹기 아깝고 누가 막 생각났다.          


뒷다릿살과 미나리에 이어 이번에는 카트. 나는 카트를 사용하지 않고 마트 내 비치되어있는 장바구니를 사용했는데, 얼마 전부터 마트에서 장바구니를 무슨 이유 때문인지 없애버렸다. 때문에 나는 카트 사용을 거부하고 개인 장바구니에 살 것을 담았다. 들지도 못할 많은 물건을 카트에 담아서 돈과 힘을 쓰느니 필요한 것만 우아하게 담을 수 있는 장바구니가 좋다. 

    

반격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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