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이와 초밥을 먹으러 갔다. 말이 이상한데 나와 한집에 살고 있는 초밥이와 저녁으로 초밥을 먹으러 갔다는 뜻. 이참에 초밥이 이름에 대해 말하자면,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초밥이가 <초밥 유튜브>를 만들었는데 나는 그 이름이 (지금과 다르게) 앙증맞은 녀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별생각 없이 글에 초밥이라는 이름을 썼다가 중간에 바꿀 수도 없어서 계속 초밥이가 돼버렸다. 지금은 <초밥 유튜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초밥이가 자기 장래에 방해가 될 것 같다며 삭제해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 등장하는 두 개의 초밥을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는 걸 말하느라 사설이 길었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무한리필 회전초밥집을 블로그 후기만 보며 입맛을 다시다가 드디어 가기로 했다. (예전에 혼자 가서 먹기도 했는데, 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큰 기대를 했나. 초밥은 맛이 없었다. 밥이 마른 데다 회도 싱싱하지 않았다. 나는 계란 초밥을 좋아해서 그건 따로 주문하기도 했는데 보온으로 오래 보관했는지 밍밍하고 물기만 가득했다.
“뭐든 기대보다 맛있을 수는 없겠지. 차라리 잘됐어. 앞으로 생각이 안 날 테니까.”
40분 만에 가게를 나오면서 내가 말했고 초밥이는 그게 뭐냐고 했다.
“맛있으면 또 가고 싶을 텐데 그럴 걱정이 사라졌잖아.”
초밥이 맛있었다면 그곳 말고도 다른 맛집을 찾게 될 거다. 음식이 아니라 만족되지 않는 마음이 문제였다. 뭔가를 사는 일도 그렇다. 마음에 드는 옷이나 운동화를 사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더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비슷한 걸 갖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와서 그 사람이 가진 물건을 관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내 마음을 아주 작은 곳에 가두는 것 같다.
‘더 바라지 않는 마음’이 행복에 가까운 감정이 아닐까. 즐거움에 감각적인 것과 성장하는 즐거움이 있듯 행복감에도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더 가지고 싶은 마음과 더 바라지 않는 마음.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하고 나면 이 시간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중에 조용히 음미하고 싶다. 집밥을 맛있게 해서 먹을 때, 산책을 했을 때도 비슷하다. 그 일이 끝난 후에 개운하고 더 바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시간이 나를 넓은 곳으로 데려가고 눈을 밝게 해주는 기분이다.
네가 좋은 생각으로 사 온 건 안다. 하지만 나는 내 가난에 익숙하고 그게 싫지 않다.
권여선 소설 <이모>에 나오는 글이다. 공복에 두 시간 등산을 하고 마시는 따뜻한 커피처럼 부족한 그 상태를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몸이 가벼운 그 기분이 좋다. 내 기분을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내 안에 자그마한 힘이 생긴 것 같다. 그건 공백을 두는 일이 아닐까. 그곳에 다른 걸 채울 수 있는.
옷을 사러 갔을 때 한눈에도 피곤한 표정의 직원에게 “잘 입어봤습니다. 고맙습니다”했더니 그분은 나중에 계산할 때 다가와서 “이 옷은 뜨거운 물빨래나 건조기 사용을 하면 안 돼요”라고 알려줬다. 처음보다 조금은 생기 있어 보이는 그녀에게 내가 “마침 건조기가 없으니 잘 되었네요”했더니 그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직원에게 고개 숙여서 인사하고, 입어 본 옷을 제자리에 걸어두는 건 예전에 하지 않던 일이다. 그럴 때 응대하는 직원과 나 사이의 공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그걸 느낄 수 있게 된 지금이 좋다.
초밥이가 선거운동 때문에 학교에 일찍 가야 한다며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나는 매일 산책을 하지만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글을 쓰다가 아무 때고 내킬 때 나갔지만 일주일 동안은 강제 아침 산책을 해야 했다.
오전 8시에 초밥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월명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의 차갑고 신선한 공기에 매번 감탄했다. 잔뜩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에도 그만에 멋이 있었다. 그냥 집에 바로 들어갈까 했던 날,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하늘에 대열을 맞춰서 나는 철새 떼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를 보고 마음이 부들부들해졌다.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은 날씨에 가지 끝에 애처롭게 매달린 이름 모를 꽃을 보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이 오면 꽃은 떨어지겠지만 그때까지 제 생명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했다. 저 꽃이나 나나 다를 게 뭐가 있나.
얼마쯤 가다 보니 정말 눈이 내렸다. 점점 바람도 세게 불고 눈송이도 굵어져서 잿빛 여백을 하얀색으로 채우는 것 같았다. 올해 처음으로 눈을 맞으면서 걸었다. 한참을 걸은 후에는 몸에서 열이 나서 추운 줄 몰랐고 조금 신나기도 했다.
초밥이한테 블루투스 이어폰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자기가 안 쓰는 것 있다며 줬다. 아빠가 영상 통화할 때 쓰자며 사줬는데 초밥이의 아이폰과 호환이 안 되는 걸 나중에 알았단다. 아빠한테 잘 쓰고 있다고 이미 말해버려서 안된다는 말도 못 한다나. 덕분에 나는 줄 이어폰에서 벗어나 신세계를 경험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 손이 들어온 이어폰으로 사치스러움을 만끽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맥도널드 커피를 드라이브 스루로 사서 마시는데 이 맛이 또 환상이었다. 뜨듯한 커피 한 모금이 차가워진 몸으로 흘러들어 갈 때 기분이란. (커피도 공짜 쿠폰으로 샀다)
아침에 다섯 가지 반찬을 만들었는데 운동하고 돌아와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반찬을 식탁에 차려두고 나왔다. 쳇 베이커의 노래를 들으면서 식탁에 양반다리로 앉아서 먹는데 “호텔 조식 안 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보일러를 켜 두고 나간 집에서 편안하고 느긋하게 먹는 식사라니.
밥을 먹고 난 뒤에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샤워를 했다. 목욕가운을 입고 책을 읽기 시작한 시간은 11시. 수업은 5시부터니까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 책을 읽다가 한 시간 졸았고 두 시간 글을 썼다. 나는 넘치는 사치를 부리고 있다, 여기서 더 바란다면 나는 벌을 받을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오늘을 기억하려고 이 글을 썼는데 며칠 후 과외를 그만둔 학생이 생겼다. 그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