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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훈희 Aug 22. 2021

지하철 노약자석이 신나지 않은 이유

지하철 -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중

내 어린시절 지하철에는 노약자석이 없었다.


그래서 지하철 양끝에 있는 세자리는 

주로 사방에 발차기를 하는 어린 아이들이 

엄마 손에 붙들려서 바글 바글 앉아 있었고

나 역시 그 곳에서 바글 거리고 앉아 있었다.


지하철을 타는 것 자체도 참 신나는 일이었다.


지상을 달리는 파란 인천행 1호선은 

에어컨이 없었지만 위에서 아래로 반쯤 열리는 창문을 열면

머리를 휘날리며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빨간 수원행 1호선도 인천 1호선처럼 

지상을 달리는 기차 같은 재미가 있었지만

가끔 지하를 달리는 초록 2호선도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초록 2호선은 지하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일제히 창문을 닫았고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소음과 뜨거운 바람맛을 볼 수 있었다.


천장 위의 파란색 선풍기는 연신 털털거리며 돌았고

어른이 되서 조금만 더 키가 크면 

저 무시무시한 선풍기 날개에 머리카락이 들어가서 

머리가 다 뽑힐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난 양끝에 세자리에 앉아서

칙칙폭폭 노래도 하면서 신나게 지하철을 탔었다.


.


어른이 되니 지하철을 타는 것은 신나지마는 않는다.


지하철은 매일 하는 출퇴근을 똑같은 경로로 이어주는 

볼트와 너트 같은 쇳덩이에 불과해 보인다.


어른이 되자 지하철 양끝 세자리는 

노약자석으로 지정이 되었고 이제는 주로 노인분들이 앉는다.


난 출퇴근 길에 주로 노약자석 앞에 서있는데

이곳은 상대적으로 서 있는 사람들이 적어서 붐비지 않고


언젠가 앉을 수 있다는 기대가 애초에 없기 때문에

자리 쟁탈을 위한 눈치 보기가 없어서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날은 야근을 하고 집에 늦게 들어가던 날이었다.


노약자석은 나를 알리가 없는 노인분들이 앉기에 

신경도 쓰지 않고 서서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앞에 앉아 계신 노인분이 날 툭툭 쳤다.


난 노약자석이 비어있으니 앉으라는 호의인줄 알고

눈도 보지 않고 괜찮다 말 하고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그 자리에 잘못 앉았다가는 다른 노인분께

호되게 호통을 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 근처 역에 도착해서 내릴 준비를 하며

신문을 가방에 넣으면서 노약자석을 보았는데

그 곳에는 내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왜 아빠가 여기 앉아 있어?" 라고 말했지만 

이미 내 아버지는 노약자석에 앉으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노쇠해 계셨다.


우리 아빠는 항상 나보다 크고 강한 사람인데

그날 내가 내려다 본 내 아버지는 

그저 노약자석에 앉아 계신 흰머리의 작은 노인분이셨다.


지하철을 내려서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그날의 그 감정이 무척이나 싫어서 

계속 아버지께 할아버지처럼 노약자석에 앉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절고 계셨고

내 아들들의 할아버지였다.


지하철에 노약자 석이 생겨나듯이

예전엔 상상조차 안 되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이럴때마다 시간이 흘러 가는 것이

지하철을 타는 것 마냥 신나지마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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