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버더레스 Jun 24. 2024

은행을 퇴사하고 느끼는 것들 두 번째

인생의 바닷길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은행을 35살에 퇴사하고 느끼는 두 번 째는 '인생의 바닷길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8년 간 한 회사를 다니면서 기분은 이 배가 아니면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할 만큼 많은 것들에 얽매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배는 내가 평생 타고 가야 할 것이라 착각하고 가둬두고 있었죠. 

퇴사하고 딱 알겠더군요. 

'아! 바다는 길이 없지? 어디든 갈 수 있구나!' 

결국 무엇을 타고 어디로 가는 내가 정하는 거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아침에 직장에 다닐 때와 똑같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것은 같고 잠들기 싫은 저녁의 침대 속은 언제나 같으니까요.

그렇다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인간이 그렇게 많이 못 돌아다닙니다.

어느 정도 자신의 바운더리를 스스로 정의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해야 할 일은 언제나 눈앞에 보이고 그것을 하다 보면 평일에 돌아다니는 거는 얼마 못 가죠.

뭐 물론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흔한 점심약속이라도 하나 잡히면 그 주에 어디 가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자신만의 바닷길은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바닷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본인이 정할 수 있죠.

아프리카일 수도 유럽일 수도 있고 누구랑 어떻게 지내고 대화할 지도 모든 것이 자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무한할 것 같은 바닷길을 여는 항해사가 된 지금을 매번 곱씹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퇴사를 하고 세상을 여행하겠다는 생각은 잠시였습니다.

세상을 꼭 여행하지 않더라도 지금 주변만 둘러봐도 해야 할 것들이 항상 있기 때문이에요.

자유라는 것이 꼭 날갯짓을 무한하게 할 수 있어야만 자유가 아니더군요.

자유는 자신만의 바닷길을 묵묵히 만드는 것뿐입니다.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의 삶을 사는 저에게 자유는 불안과도 같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이번 달 수입은 어떻게 하지... 먹고사는 걱정이 먼저 눈앞에 드리워져 있죠. 

마치 항해 중에 큰 파도가 앞에 다가오는 걸 미리 아는 느낌이랄까요?

그 파도만 넘어가면 또 잔잔한 바다가 나오겠지 싶다고 믿을 뿐. 

더 높은 파도가 올 수 도 있고 비바람과 폭풍우가 더 몰아칠수도 있죠. 

그러니 자유라는 게, 꼭 상상 속의 비너스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아름답지 않다는 것, 바다는 언제 어떤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삶의 지혜를 이 기회가 아니었으면 깨닫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바닷길은 계획대로 되진 않습니다.

항해사인 제가 가본 길이 아닌 길만 가고 있으니 어떻게 계획대로 되겠습니까

지도도 없습니다. 지도라는 게 무의미하죠.

그런 바닷길이 직장을 그만두니 하나둘 보입니다. 

다시 이렇게 보인다고 하지만 언제 안개가 낄지 몰라요.

보일 때 빨리 속도를 높여야겠습니다.

신기루처럼 금세 보이다가도 안 보이고 잡힐 것 같다가도 잡히지 않더군요.


그래도 바람이 많이 불어서 지금 나아가기 힘들 때면 쉬다가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어차피 빨리 갈 게 없으니 근처 섬에도 쉬다 가고 바다에 들어가 낚시도 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물을 한 없이 바라보며 글을 쓰고 책을 보고 소주 한 잔 하며 

버릴 것들을 버리고 새롭게 기억할 것들을 작은 배에 실어 올립니다. 


이제 얽매일 것도 없고 누구도 정해주지 않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인생도 

썩 나쁘지 않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처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