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마작을 배우기 위해서는 네 명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작은 배우는 것보다 네 명을 모으는 것이 더 힘들다고. 그러니 내게 머릿수를 좀 채워줄 수 있겠냐고 물어온 사람은 친구도, 선배도 아닌 단골 술집의 주인장이었다. 3년 전 친구들과 우연히 목적지도 없이 연남 근처를 서성이다 발견하게 된 곳이었는데 대체로 규모 있는 입시미술학원 같은 외관과 달리 내부는 곳곳이 고풍스런 한옥과 채도 높은 청기와로 꾸며져 있었다. 진짜 나무를 덧댄 건가? 중앙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이걸 시키네 마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나는 가게의 벽면을 손끝으로 천천히 더듬어보았다. 검지와 중지 안쪽의 불룩 튀어나온 살결에 나무 특유의 촉감이 만져졌다.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오직 나무만이 낼 수 있는 쿰쿰한 냄새. 벽에 코를 박은 채 킁킁대고 있는데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주인장이었다. 맞아요, 나무. 인테리어에 공을 많이 들였죠. 주인장은 유독 나를 귀여워했고 그녀가 제조한 칵테일은 여태껏 내가 마셔본 곳 중 가장 깔끔하고 적절했다. (칵테일을 논하는 데 있어 적절하다는 표현 외에 다른 것은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퇴근 후, 혹은 주말 저녁이면 마실을 나가듯 단골이 되었고 서서히 주인장과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된 이야기. 언니 동생하다 정말로 가족 같은 속내를 나누기도 했다.
혜수 언니는 홍콩에서 칠 년을 넘게 유학도 다녀오고 취업도 했는데 나중에는 다 질려버려서 한국에 돌아와 모은 돈을 모두 쏟아부어 연남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했다. 언니는 태생적으로 사람들이 싫다고 했다. 그러니까 성악설을 믿는 부류의 사람. 계속 봐야 하는 사람들, 볼 때마다 환멸만 느껴지는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열불이 터져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 그만둬버렸다고 했다. 그건 홍콩이나 서울이나 마찬가지구나. 나도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언니가 문득 가게 안쪽에서 으쌰 소리를 내며 검은 면포에 쌓여 있던 가방을 꺼내왔다. 먼지를 툴툴 털며 지퍼를 여니 마작판이 나왔다. 처음엔 그게 마작판인지도 몰랐다. 나는 언니가 신메뉴라며 건넨 칵테일 한 잔을 홀짝이다 그게 뭐냐고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 유일하게 좋아했던 거. 홍콩에 있는 동안 좋았던 건 오직 마작이었지. 언니는 한눈에 보기에도 럭셔리해 보이던 마작판을 내게 보여주었다. 한 번 해볼래? 사람만 모으면 되는데. 마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나랑, 동생이 둘 더 있는데. 재밌어. 너 체스 좋아한다며. 알고 보니 언니는 마작에 거의 미치광이 수준이었다. 처음엔 살살 타이르듯 나를 꼬셨지만 나중엔 칵테일 다섯 잔 값을 면제해 주겠다는 추가 혜택까지 내밀었다. 체스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귀가 솔깃했던 건 칵테일값이었으므로 나는 그녀의 꾀임에 홀려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우혁을 만났다.
첫 만남에 우혁은 주머니에서 발레화를 꺼냈다. 처음엔 장갑인가 싶었는데 익숙한 모양이 분명 신발이었다. 필라테스를 하는 건가 잠깐 생각했으나 이내 언니는 그를 발레리노라고 소개했다. 검은 발레화가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내 기억 속의 발레화는 연분홍빛이었는데 우혁의 발레화는 윤이 나지도 않았고, 그렇게 근사하지도 않았다. 그저 발레화. 글을 쓰는 내가 지갑만 한 크기의 휴대용 키보드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니듯 그에게도 직업인으로서의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재킷 주머니에서 발레화와 립밤, 차키와 영수증 몇 장, 그리고 띠부띠부씰을 꺼내 언니에게 내밀었다. 언니는 요즘 편의점에서 파는 빵을 매일 사다 먹었다. 빵이 좋아서가 아니라 빵 안쪽에 들러붙어 있는 띠부띠부씰을 갖기 위해서였다. 언니의 수집 욕구는 이미 가게 한쪽 벽 귀퉁이에 붙어 있는 수십 개의 띠부띠부씰로 증명이 되었다. 나중에 삼시 세끼를 빵으로 때우는 게 질렸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빵을 사다 먹으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나도 언니를 위해 몇 번 빵을 사 먹은 적이 있다. 우혁도 언니의 명령을 받았으리라.
자켓을 벗은 우혁의 골격은 기이했다. 그러니까 어깨는 넓은데 허리는 좁고, 딱 달라붙은 목폴라 안쪽으로 가늠되던 그의 팔은 뼈만 남은 듯 앙상해 보였다. 팔을 뻗을 때마다 마른 근육이 불끈 솟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징그럽게 느껴지면서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자꾸만 눈길이 갔다.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기도 했거니와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습관성 직업병인 것처럼 나풀거리듯 가벼웠기 때문이다. 멋있었다. 그날 우리는 네 명이 마주 보고 앉아 가게 정중앙에 마작판을 내려놓고는 다섯 번도 넘게 게임을 했다. 그날 모인 사람들 중 유일하게 마작을 처음해 본 사람은 나였는데 그래서 매번 지는 쪽도 나였다. 우혁은 매번 이기는 쪽이었다. 두뇌 회전이 좋은 것 같았다. 입술을 씰룩이며 속으로 부럽다, 라고 생각했는데 언니가 문득 찬장에서 위스키를 꺼내오더니 우혁의 앞에 내려놓았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이 새끼는 대가리가 참 잘 돌아가. 언니의 말에 나는 토끼 눈을 뜬 채 우혁을 바라보았다. 말이 좀 심한 거 아닌가. 이 새끼라니. 내게 보여준 적 없는 태도였기에 나는 집에 갈 때까지도 우혁의 표정을 살피곤 했는데 정작 우혁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날 집에 가는 길에 우혁과 지하철역까지 조금 걸었다. 우혁은 품에 안은 위스키가 제법 마음에 드는지 내내 만족스러운 듯 한쪽 입꼬리가 배시시 올라가 있었다. 연분홍빛으로 길쭉하게 얇아지는 입술을 보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다 우혁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눈빛에서 나를 귀여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게임에서 다 져버려서 어떡해요. 우혁이 눈썹산을 주욱 내리며 내게 물어왔을 때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아무래도 괜찮다고 답했다. 평소 승부욕이 있는 편이라 조금 심통이 나 있긴 했지만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으니까 ‘다음번엔 2등이라도 해야겠어요.’ 그렇게 둘러 말했다. 내 말에 우혁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손바닥으로 위스키병을 탕탕 치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런 우혁을 올려다보았다. 우혁은 마작 실력이나 풍겨지는 힘이나 나이나 모든 것이 나보다 한 수 위에 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까치발을 든 채 나의 작고 납작한 손바닥으로 그의 정수리를 꾹 눌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가끔 나도 모르게 행동으로 옮길 때도 있었는데 그날도 그랬다. 우혁에게로 손을 뻗자 우혁은 본능적으로 내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때리려고 한 거 아니었는데. 내 말에 우혁이 그럼 뭐를...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나는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찍어 누르고 싶어서요.
*
마작과 체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말없이 상대와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편인지 끊임없이 내 앞에서 조잘조잘 대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집에 와 남는 것은 그 사람과 나눴던 이야기보단 그저 시끄러웠다,는 감상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기억에 남지 않았다. 소란스러운 풍경, 화려한 불빛, 그리고 웅웅 거리는 말만이 머릿속에서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져 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걸 즐거워하는 편이었지만 의미 없는 언어를 나누는 걸 유쾌하게 생각하지만은 않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그 사람을 이해하는 순간을 좋아했다. 음절과 음절 사이 가만히 생각을 하다 보면 느릿하게 나와 다른 환경과 배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어떤 성정을 지니고 있는지, 왜 나로서는 생각하지 못할 그런 말과 행동들을 하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체스는 말없이 그 사람만이 가진 일상의 속도를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성급하게 병졸들을 죽이고 시작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말과 기사를 먼저 내밀며 상황을 이용하려는 사람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나와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인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면 그 사람과 체스를 두곤 했다. 체스는 상대의 속내를 한 수 빨리 읽어야 하는 게임이니까. 쉬우면서도 쉽지 않았지. 나는 매번 기를 쓰고 상대를 이겼다. 이겨 먹었다. 이기지 못하면 잠을 못 잤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걸 늘 증명받고 싶었다. 그런 성격이 때로는 내게서 사람을 떠나게 했다. 이런 나를 견디지 못하고 질려버린 그들이 도망갔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 그런 성격을 알면서도 나를 떠나지 않는 사람은 오직 우혁뿐이다. 이제는 그것을 안다. 우혁은 그런 나를 이해해 준다.
우혁과는 그 뒤로도 몇 번 더 만났다. 네 사람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으므로 우리는 언니가 있는 바에서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팝콘과 와인, 때로는 칵테일과 위스키를 마시며 내기를 했다. 주로 우혁이 이기는 편이었고, 우혁이 일부러 져줄 때에는 나도 모르게 우혁에게 주먹이 나갔다. 주먹이라 봐야 꿀밤 정도의 힘이었지만 그때마다 우혁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꺽꺽 소리까지 내며 배를 붙잡고 고꾸라졌다. 그럴 때면 나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다 화를 식히기 위해 잠시 가게를 나갔다 오기도 했는데 돌아오면 우혁이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괜찮아?’하고 물어왔고,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안 괜찮아. 나는 일부러 척하는 거 진짜 싫어해.
정말이었다. 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혐오하는 수준으로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잘 보이고 싶어서,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속내와 다른 표정과 말투, 행동을 하는 건 치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일생의 절반 이상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데 썼다. 그런데 애를 쓰다 보면 늘 먼저 지치는 쪽은 나였지만 그럴수록 축적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의심이었다.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노력하는 만큼 그 사람들 역시 내게 거짓으로 다가온다고 확신했다. 진심을 나눠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누가 쉽사리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겠어. 그러니까 다들 가짜다. 이 세상은 전부 가짜다, 술에 취할 때마다 나는 버릇처럼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내뱉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언니에게도 했다. 언니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처음엔 눈물까지 줄줄 흘려가며 웃었다. 이게 웃겨? 뭐가 웃겨? 내 질문에 언니는 갑자기 눈물을 쓱 닦더니 정색하며 내게 말했다. 너 장녀지? 어디 갈 때마다 늘 역할을 맡는 쪽이구나. 조별과제를 하면 조장이 될 거고, 팀에서는 팀장. 구성원이 진상이어도 속으로 삭이고 자발적 솔로플레이를 하는 리더 타입 아니야?
언니의 말에 나는 입술을 앞으로 쭉 빼며 말없이 앞에 놓인 잔을 비웠다. 마작 멤버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우리가 첫째라는 사실이었다. 우혁도, 혜수 언니도, 지영 언니도, 나도 모두 첫째다. 비운의 첫째. 장남, 장녀들. 두 번의 계절이 바뀌어 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혜수 언니는 첫째라서 가족을 떠나는 게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유학을 결정했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의 부재를 실감한 가족의 불안함과 잔소리가 쉬이 퍼부어졌다. 굳이 홍콩으로 가야만 하니. 서울에 더 좋은 것이 많다. 여자 혼자 그리 멀리 가는 게 아니다. 언니는 첫째들만이 겪고 있는 부모의 통제를 쉽사리 깨지 못하는 어른이다.(이것을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직 그녀의 사고체계에 잔흔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건 지영 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영 언니는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평소 사람을 쉽게 쏘아보거나 맹렬한 기세로 목소리를 높이지만 언니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애정 어린 관심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게 언니의 솔직한 매력이자 성격이다. 우리 중 유일한 기혼자이기도 했는데 언니는 집을 떠나고 싶어 섣불리 결혼을 선택한 케이스였다. 언니는 늘 자신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약간 볼을 씰룩이며 ‘섣불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혜수 언니가 형부가 꽝이야? 하고 물으면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자꾸만 대답을 흐렸다. 그러다가도 실제로 형부가 언니를 데리러 오면 우리 남편하며, 형부의 목에 두 팔을 꿴 채 기다렸다는 듯 막둥이처럼 사랑을 갈구하듯 매달렸다. (형부는 언니보다 연하인 데다 심지어 막내다) 나는 가끔 이 부부의 일상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들 부부를 보면 슬며시 결혼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우혁은 어떤가.
처음 우혁을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짓궂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초면에 내게 꽤 무례하게 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의 첫인상과 말투만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이미 끝난 듯했다. 내가 얼마나 굳세고 강인한 마음을 가진 첫째인지 모른 채 이미 눈동자에서 나를 골려주려는 속셈이 가득해 보였다. 나의 약점을 슬슬 건드리는 사람. 나를 너무 순진하고 어리숙하게만 보는 것 같은 사람. 첫째인 나를 막내처럼 지나치게 귀엽게만 보는 사람.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이 사람은 피하는 편이 좋겠다, 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푸핫하고 웃었으니까.
왜 그렇게 웃어요?
이것이 아마도 내가 우혁에게 건넸던 첫마디였을 테다.
왜요, 웃으면 안 돼요?
그리고 이것이 우혁이 나에게 건넸던 대답이었다. 되려 그는 내게 자기는 항상 그저 웃을 뿐인데 사람들은 왜 입꼬리를 올리며 웃느냐고 타박을 듣는 것이 오히려 불쾌하다고 투덜거렸다. 순간 그의 진지한 얼굴에 잠깐 동안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것도 장난인가, 아니면 진짜 콤플렉스 같은 건가? 찰나에 우혁의 얼굴을 살폈다. 우혁은 내게 건넸던 말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지 다시 마작판에 온 정신을 몰두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우혁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으니까. 나는 보통 가만히 있을 때 뚱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때마다 내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질문해 왔다. 제법 불필요하게. 나는 그것이 지겨웠고, 어느 날엔 짜증을 낼 때도 있었다. 우혁의 웃음도 어쩌면 그런 것인가.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무래도 짓궂다고 생각했다.
*
우혁에 대한 오해가 풀린 것은 그가 첫째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명절이 지난 바로 다음 주였는데, 마작 멤버들을 위해 우혁은 커다란 상자에 한가득 감을 담아왔다.
웬 감이래.
혜수 언니는 감을 받자마자 이걸 깎아 칵테일에 꽂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꽃이며 새우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옆에서 지영 언니가 자투리 과육을 집어 먹으며 농사가 잘됐다. 그 말을 반복했다. 아마도 뭐라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우혁에게 딱히 할 말도 없는 듯 보였다.
나 역시 우혁이 가져온 감을 한 개 집어 들었다. 귀퉁이를 조심조심 베어 먹었다. 적당히 달콤한 맛이 입안에 스윽 퍼졌다. 감맛은 칵테일 같다. 과일 중에 가장 적당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홍시나 곶감은 싫다. 오직 단감. 생으로 먹는 단감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다. 우혁은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부모님을 도와 수확한 감을 가져온 것이었다.
우진이는 잘 지내고?
졸업 준비하느라 바쁘지. 걔도 이제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데.
우혁은 혜수 언니가 건넨 감에 손사래를 치며 멀찍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지영 언니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으, 됐어. 난 지겹도록 먹고 왔어. 지겹도록 실어 나르기도 했고.
장남이 고생이 많았네.
지영 언니가 감을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우혁의 등을 퍽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내가 꺄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눈을 동그랗게 떠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세 사람이었겠지만 오직 나만이 놀란 눈으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외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엇, 잠깐 우혁씨 첫째예요?
우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김렛 한 잔을 위스키처럼 벌컥 마시고는 입을 스윽 닦았다. 밑으로 동생 하나 있어요.
아, 그래서였구나. 나는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우혁이 내게 짓궂게 장난을 쳤던 이유를. 우혁은 그저 나를 여동생 보듯 놀리고 싶었던 것이다. 마치 내가 성질이 사나워질 때마다 동생을 괴롭히는 것처럼. (그리고 이 괴롭힘에 호의와 애정이 묻어 있다는 걸 친절하게 설명해두고 싶다) 그때부터였다. 우혁이 다르게 보인 것은 마치 마작의 룰처럼. 플레이어가 바뀔 때마다 모든 상황과 계산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혁은 내게 마작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그 공간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마작 같았다. 매직 같은 마작. 마자, 그거 마작. 나는 그래서 마작 멤버들이 좋았다. 모두 비운의 첫째여서. 첫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혜수 언니와 지영 언니가 처마 끝에서 웬 막걸리를 기울이는 동안 나는 우혁에게 내가 첫째여서 서글픈 이야기를 쉴 새 없이 꺼냈다. 우혁은 사려 깊게도 지겨워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나는 우혁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첫째들은 걱정이 많다. 왜냐하면 줄줄이 따라붙은 것들이 모두 책임인 것만 같거든. 누구도 의무고 책임이고 논하지 않는데 자기 일은 스스로 하자 마인드가 강하거든. 그래서 어리광을 피우며 허영을 갈구하는 막내들과 다르게 어릴 때부터 포기하는 법을 잘 배우잖아. 여기서 자기까지 나서면 피차 피곤해진다는 걸 아니까. 물론, 동생 새끼들이 골 아프게 울어 재끼는 게 미러링 효과로 작용하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내 말에 우혁이 푸핫, 하며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그러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바테이블 위로 손가락을 튕겼다.
너 내가 왜 발레 시작했는지 알아?
... 근사해서?
아니, 서울로 올라오고 싶어서.
서울로?
정확히는 우리 집에서 나오고 싶어서.
너무 어릴 때 시작한 거 아니야?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 집을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응. 다들 나한테 씩씩하기를 강요하는 것 같았어. 남자라서 씩씩해야 한다 이런 게 아니라 첫째는 저항력이 좋아야 한다고 온몸으로 느꼈던 것 같아.
우혁의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안다. 아마 혜수 언니도, 지영 언니도 알 것이다. 첫째라면 모두 알 것이다. 저항력이 좋아져야 할 것 같은 그 감각. 집 안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감당하게 되는 사람이 바로 첫째다. 나는 그래서 막내들이 싫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내게 첫 번째 관문은 막내가 아니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성정을 지닌 사람이더라도 ‘막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팍 식었다. 막내는 결정적인 순간에 늘 배신을 한다. 그런 이유로 막내를 귀여워하면서도 그들을 믿지 않는다. 살아오며 막내들에게 당한 배신이 너무 크다. 우리 가족도 모두 막내였다.
우혁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올라왔다. 예중 입시를 치렀고, (그의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가뿐하게 합격했다. 당시 발레를 전공하려는 남자가 많지도 않았거니와 발레는 제법 돈이 많이 드는 그야말로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우혁은 국내 콩쿠르대회에서 상위권에 늘 이름을 올렸다. 그랬기 때문에 중간에 고등학교를 자퇴해야만 했다. 러시아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우혁을 알게 된 이후로 그와 관련된 인터뷰를 찾아보면 늘 심드렁한 표정과 답변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것들에는 관심 없는 표정. 발레단을 나와 아카데미를 설립할 때까지만 해도 우혁을 둘러싼 수식어는 신비주의였다. 심지어 그의 오랜 팬들은 그를 블랙스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우혁이 고작 첫째 프레임 때문에 그것을 시작했다는 말이 나는 믿기지 않았다. 처음엔 우혁 특유의 농담조인가 했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입술을 앙다문 것이 영 진심인 것 같았다. 너도 참 도라이구나. 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을까 하다 참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혁은 혜수 언니의 가게에 와서 물을 술처럼 따라 마셨으며, 몸 쓰는 일을 되도록 조심하는 편이었으나 현재는 나름 스스로를 자유롭게 풀어놓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몸이 여전히 비쩍 말라 있는 것은 아무래도 오랜 시간 스스로를 통제해 온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혁은 그저 내게 얼굴 아는 사람 정도의 관계였으나 그가 첫째라는 사실을 안 이후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작 첫째라는 이유로 호감이 생겨버린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혁은 외모도 나쁘지 않았고, 키도 제법 컸고, 심지어 자기 회사도 있어. 꼼꼼하고 야무지기까지 하다. 다소 짓궂지만 쉽사리 용서해 줄 수 있는 유머코드도 겸비했다. 무엇보다 우혁이 내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건 나 역시 사는 게 피곤해서 눈치 없는 척 눈알을 돌려버리는 첫째였으니까.
*
실은 우혁에겐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우혁이 절대로 몰랐으면 하는 이야기. 적어도 애인이나 남편이 될 사람은 몰랐으면 하는 이야기가 내게도 있지.
나는 막내들이 싫었다. 원하는 걸 뭐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금수저. 날 때부터 양보와 희생을 풀옵션으로 장착한 것으로도 모자라, 결정적인 순간에 손에 쥔 것들을 포기할 줄 모르는 당당함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과시하는 모습도 질렸다. 손해를 감수하는 것을 회피하고, 책임감도 없이 누군가에게 떠넘겨지기를 바라는 요행을 부리는 것도 끔찍했다. 문제의 본질은 스스로에게 있는데 옆에 있던 첫째와 둘째들이 나서 막내를 감싸고도는 그 행태도 싫었다.
그러니까 나는 첫째.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첫째인 사람은 나였고, 나머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그 끔찍한 존재, 막내였다. 아빤 육 남매 중 늦둥이 막내. 엄만 삼 남매 중 막내딸, 동생은 나와 무려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다. 막내들과 있으면 도무지 일의 시작이 끝이 나질 않는다. 막내들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꿈에도 없고, 뜬구름 잡는 하소연부터 해댄다. 그래놓고 가치 판단이나 최종 결정은 타인에게 떠넘긴다. 그건 나이가 많고 적고의 차이가 아니었다. 막내로 살아온 환경, 성장배경,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양으로 탄생한 괴랄한 결과였다.
막내들에겐 늘 수호천사가 있다. 내 자식만큼은 금지옥엽 키웠다는 부모님과 그의 형제들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도대체 왜 이렇게 피곤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거야?’ 할 정도로 싸웠다. 입이 가볍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빤 늘 친척들 앞에서 우리 가족에 대해 코믹하게 표현하곤 했다. 그걸 사람들에게 망신을 주었다고 생각한 엄만 세상 천사 같은 얼굴로 친척들과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다 차만 타면 돌변했다. 그런 문제를 제외하고서라도 마트에 가서 너구리와 삼양라면을 사는 것으로 싸우고, 누군가 바닥에 흘린 사과 껍질로도 싸우고, 화장실 불을 끄냐 안 끄냐로도 싸우고, 세탁기 사용 순서를 두고도 먼저 쓰겠다며 싸웠다. 유치하게 싸웠다. 치졸하게 싸웠다. 겁나게 싸웠다.
문제는 싸우고 나면 나에게도 타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언성을 높이고, 서로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모진 말들을 해내고 나면 둘 다 기운이 빠지는지 방에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싸매고 해가 지도록, 다음날 해가 뜨도록 누워 있었다. 엄마는 안방 대신 내 방에 들어와 있었고, 아빤 밖에 나가 고모를 만나러 가거나(고모한테 하소연을 하러 간 김에 저녁까지 얻어먹으려고 했을 게 분명하다) 거실 한 켠에 앉아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스포츠 경기에 빠져 있었다. 내가 공부를 하느라 문을 꼭 닫고 있으면 노크도 없이 벌컥,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내게 하소연을 했다. 문을 잠그면 열쇠를 따고 들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면 휴대폰 전화가 울릴 때마다 또 그 하소연을 들어주어야 했다. 어릴 때의 동생은 그때마다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으나 커서는 조용히 독서실에 가는 걸 택했다. 그런 날이면 그들 양가 부모님의 전화를 받는 쪽은 나였다. 어떻게 소식을 들은 것인지, 할머니들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성인이 되어 휴대폰이 생긴 이후로는 내 개인전화로 안부를 묻는 척, 두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물어댔다. 명절 때 할머니집을 방문하면 나를 구석으로 불러 첩자를 추궁하듯 물어오기도 했다.
고모들에게도 전화가 왔다(다행히 삼촌들에게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그 사소한 싸움에 왜 그렇게 주변인들이 끼어드는 것인지. 그건 두 사람의 싸움을 중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오해를 키우고, 화를 더 키우는 일이었다. 양쪽에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은 엄마와 아빤 더 팽팽한 기싸움을 시전했다. 자연스레 동생을 챙기는 건 내 몫이 되었다. 동생이 시험기간을 앞두고 있을 땐 애호박과 두부를 잘라 된장찌개를 끓이고, 감기 기운이 있을 땐 북어를 불려 해장국을 끓였다. 숙제를 대신 봐주기도 했으며, 준비물을 챙기기 위해 저녁 늦게 동생과 함께 손을 잡고 문구점으로 달려가는 것도 나였다. 동생은 심지어 내향적인 데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었고, 그런 고민들을 부모님이 아닌 내게 털어놓았다. 지금까지도 동생이 유일하게 (겁 없이) 장난을 치는 쪽은 나. 가끔 함께 놀러 나갈 때마다 어리광을 부리거나 속내를 털어내는 쪽도 나다. 그 사이 부모님은 헤어지네 마네, 집을 쪼개네 마네 하는 이야기까지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게 현실이 될까 두려웠으나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오히려 맞지 않는 사람들은 헤어지는 게 맞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내가 직접 이혼신고서를 들고 부모님을 거실에 불러 앉혔다. 이따위로 지낼 거면 헤어지라고 했다. 나는 단호했고, 두 사람은 당황했다. 오랜 침묵 후, 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우리한테 이러는 거 아니야.”
두 사람은 갑자기 한 편이 되어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렇게 못된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예의가 없다고. 우리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뱉었다. 막내들끼리 어찌나 말이 잘 통하던지. 그날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티비 속의 주말극을 하하호호 웃으며 시청하기까지 했다.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다음날 또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고. 지금도 그런다. 이젠 싸우고 나면 화해도 없이 괜찮아진다. 그래서 싸우는 게 싸우는 건지, 아닌지도 헷갈린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평생을 그렇게 당해왔다.
엄만 아직도 나와 함께 방을 쓰고 있다. 하도 싸우고 내 방에서 지내다 보니 잠옷이며 화장품이며 도구들이 방의 한쪽을 차지해 버렸다. 자연스레 엄마는 오른쪽, 나는 왼쪽을 쓴다. 그래서 내겐 비밀을 담을 만한 방이 없다. 방 안에 있으면 할 일이 없는 엄만 내게 관심이 많았다. 옷을 예쁘게 차려입으면 언 놈을 만나러 가느냐고 추궁했고, 밤늦게 친구와 카톡을 하고 있으면 누구냐고 물어왔으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문세의 명반을 틀어달라고 졸랐고, 집안의 사소한 문젯거리가 생기면 아빠 대신 내게 의지했다. 덕분에 집안의 가구를 들이는 일이며, 못질, 가전제품 조립, 형광등 교체를 비롯한 웬만한 이슈들은 내가 해결한다. 아빠 역시 엄마 대신 내게 중요한 결정이나 역할을 요구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내가 집 안에 폭 박혀 있으면 이 창창한 날씨에 칙칙하게 집안에만 있다며 입을 비죽인다. 나는 자연스레 가족 앞에서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첫째’라는 소수자. 이 정도면 내가 첫째 프레임 좀 가져도 되지 않아?
자연스레 막내를 피하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막내라 소개해 오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징징거림’을 숨기지 못했다. 문제 해결이 필요할 때에 그들은 가장 정확한 해결책은 회피하고 내게 감정적인 공감과 너른 양해를 바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나의 환경이, 기질이 늘상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몸으로 체득된 감각은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회사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혹은 모임 등에서 나도 모르게 첫째 역할을 하려고 한다. 내가 타인에게 관심을 표현하고 사랑을 내어주는 방식이 자꾸만 사회적 거리의 친밀감 이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 한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렇게 첫째를 넘어 ‘희생’을 하고 있다는 말을 기꺼이 듣고야 만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나는 부모님이, 세상의 모든 막내들이 미워진다.
그러니까 우혁은 첫째여야만 했다. 절대로 막내가 아니어야만 했다. 나는 우혁이 내게서 훔쳐간 것이 내 마음만이기를 바랬다. 첫째의 탈을 뒤집어쓴 막내의 배신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우혁과 처음으로 단둘이 밥을 먹게된 날은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였다. 그러니까 누가 먼저 일부러 보자고 한 것은 아니었고 서로 타이밍만 슬슬 보고 있던 차에 눈치 빠른 혜수 언니가 우리를 가게로 불렀다. 대목이라 가게를 닫을 순 없지만 외로우니 밤새 같이 솔로지옥이나 보면서 마티니와 먹태를 까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약속시간 즈음에 단체손님이 들이닥쳐 니들끼리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말을 들었을 땐 나와 우혁 모두 단톡방을 바라보다 쉴 새 없이 웃었다. 평소의 언니답지 않은 이기적인 배려였기 때문이었다.
혜수 언니 진짜 웃겨. 그래서 귀여워.
내 말에 우혁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독 바람이 매섭고, 기온이 많이 떨어져 있던 날이었다. 우혁의 옆얼굴을 슬쩍 보는데 숨을 내쉴 때마다 후우하고 입김이 나오던 입술 위로 속눈썹 언저리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빨리 아무 데나 들어가자. 추우니까.
나는 얼굴을 감싸고 있던 목도리를 다시 한번 촘촘하게 정돈하고는 우혁이 든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우혁이 말했다.
아, 추워서 아까부터 계속 옆으로 붙었던 거야?
옆으로?
아니 너 같이 걸으면 자꾸 옆 사람한테 몸을 기대 오는 거 알아? 그러고 보니 팔월에도 그랬네. 텐동 먹으러 갈 때도 너 그랬다. 그때 쪄 죽을 거 같았는데. 자꾸만 몸을 내 어깨에 붙여와서 내가 옆으로 슬슬 피하면 또 붙어오고.
아, 내가 그랬어? 미안. 몰랐어.
우혁이 장갑 낀 손으로 내 어깨를 슬쩍 붙잡길래 대수롭지 않은 척했지만 실은 속으로 뜨악했다. 정말로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우혁에게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평소에도 친구들과 함께 거리를 걷다 보면 나는 옆 사람의 어깨에 내 등을 붙이는 버릇이 있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내 행동에 가장 불만을 많이 품고 있는 사람은 단연 동생 새끼다. 그래서 늘 잘 모르는 쪽과 있을 때는 일부러 신경 써서 직선으로 걸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체로 내 노력은 헛되이 쓰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우혁과 함께 걸을 때마다 내가 그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은 내겐 나름의 충격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팔월이면 우혁이 첫째라는 사실도 알기 전이었을 거다. 나는 우혁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좀 괘씸하네. 그렇다고 일부러 떨어지라는 식으로 말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주머니에 손을 꼭 넣은 채 우혁보다 몇 걸음 더 앞서갔다. 그러자 우혁이 또다시 킬킬거리며 웃었다.
아니, 기대지 말라는 건 아니고. 너 그런 습관 있는 거 아냐고 물어본 거야. 그보다 지금 걸음 너무 빨라.
됐거든. 그런 거면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너무 뻔한 대화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이 따라붙었을 땐 이미 늦었다. 거리에는 나라별로 연금 같이 쓰이는 캐럴과 진부하게 반짝이는 조명이 줄줄이 이어졌다. 트리도, 산타도. 거리를 걷다 보면 비슷한 모양새로. 반복되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지겨워졌다. 우혁과 나는 연남에서 홍대 방향으로 조금 더 걷다 합정까지 내려와 버렸다. 아무거나 먹을 생각은 맞았는데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비어 있는 자리가 없었다. 그나마 널찍한 곳은 크리스마스답지 않게 모둠전이나 막걸리를 파는 곳이었는데, 평소였다면 얼씨구하며 들어갔겠지만 어쩐지 그날은 우혁도 나도 굳이 그걸 먹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모른척하며 흐린 눈으로 시선을 황급히 돌렸다. 그러다 발견한 곳은 샌드위치집이었다. 유일하게 조용하고, 손님이 많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구차하지 않게 보였다.
저녁 시간에, 그것도 크리스마스날에 직장인 점심 메뉴 같은 수제 샌드위치 집이 그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엔 카페 같기도 했고, 개인 베이커리처럼 일본풍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고동색의 테이블과 흰 벽지, 그리고 하얀 접시 위로 브로콜리와 당근, 완두콩으로 채워 넣은 데코레이션이 재밌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곳은 수제버거집 같은 수제 샌드위치집. 타마고샌드와 카약 샌드위치로 유명한 집인 것 같기도 했다. 각종 튀김을 넣고 만든 텐동 샌드위치도 있었고, 계란에 야채와 함께 넣은 카레 샌드위치도 있었다. 그 밖에도 샌드위치와 잘 어울리는 과일이나 음료가 있었는데 꼴에 새로운 것, 신기한 거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우혁과 나는 가게에서 가장 특이해 보이는 메뉴를 고르기로 했다.
그날 우리가 주문했던 메뉴는 팥 샌드위치와 맵지 않은 불닭 샌드위치였다. 팥 샌드위치를 주문한 이유는 그저 내가 팥을 좋아하기 때문이었고, 나머진 모순된 메뉴명이 제법 사람을 열받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불닭이 어떻게 맵지 않을 수 있어? 맵지 않은 닭도 아니고 맵지 않은 불닭이라니. 주문을 받은 직원이 손바닥에 든 메모지에 주문내용을 받아 적다 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 지었다. 그리고는 ‘맵지 않은 불닭’은 정말로 맵지 않은데 괜찮으시겠느냐고 재차 질문했다. 귀찮거나 번거롭다기보다는 그저 장난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상한 사람이네. 오랜만에 마이너 한 메뉴를 만들게 되어 매우 신나 보이잖아. 직원이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우혁의 얼굴을 끌어당겨 귓속말로 속삭였다. 혹시나 직원이 들으면 언짢아하거나 샌드위치를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나 고백할 거 있어. 나도 ‘맵지 않은 불닭’같은 비밀이 있어.
비밀을 고백한다고? 갑자기? 왜?
있잖아, 나 사실 첫째 아니야. ……둘째야. 이젠 정말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네가 하도 첫째 첫째 그러니까. 너 첫째만 취급하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동생만 있다며.
위로 누나 하나 있었는데…… 이젠 없어. 죽었거든. 그렇게 된 지 좀 됐어.
……왜, 거짓말을 했어?
네 멋대로 날 첫째라고 생각한 거지. 내가 먼저 첫째라고 한 적 없어. 이후엔 네가 나한테 막내 뒷담을 그렇게 하니까 더 말할 수 없었던 거고. 혹시 이것도 네 막내 프레임이야? 막내는 끝내 배신한다는 거.
참으로 덫 같은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했다.
*
그날 이후로 나는 혜수 언니의 가게에 찾아가지 않았다. 언니로부터 우혁과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추궁을 받긴 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저 일이 좀 바빠졌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우혁이 첫째가 아니라는 것에 사실 많이 실망했다. 나는 우혁이 첫째가 아니라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유주야. 너 나 여기서 더 안 볼 거야?
우혁이 보낸 것이었다. 우혁과 그렇게 헤어진 이후로 내 휴대폰에는 몇 통의 부재중 전화와 메신저가 남겨져 있었다. 새해전야였다. 잠깐 생각을 멈출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우혁과의 일들을 되짚어볼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같다. 나는 우혁과 나눴던 메신저, 기억, 그리고 마작룰을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우혁은 너무도 첫째였는데 어째서 첫째가 아닌 걸까. 내 주변에서 저항력이 좋아야 한다는 걸 유일하게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었는데. 둘째가 어떻게 첫째의 마음을 알겠어. 첫째가 아니라면 죽어도 모를 것이다. 둘째 역시 결국은 첫째에게 의지하게 되지 않을까? 내게는 기댈 만한 구석이 하나쯤 필요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우혁이 풀썩 주저앉았다.
우혁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나는 읽음 표시가 사라진 우혁과의 메시지를 자꾸만 톺아본다. 이제 와서, 여기까지 와서 우혁에게 네가 첫째가 아니라서 안된다는 말도, 그게 배신이라는 말도 할 수가 없다. 그게 유치하고 치졸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사소한 미신을 믿는다. 그 믿음이 우혁에 대한 믿음보다 여전히 크다. 그래서 우혁은 안된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나는 다시 혜수 언니의 가게에 나갈 수 있었다.
야, 너 뭐야. 우혁이한테는 다 들었어.
언니도 알고 있었어? 걔 첫째 아닌 거?
나도 이번에 알았지. 누나가 있었다는 거. 동생이 있다고만 하니까 몰랐지. 호구조사 굳이 할 필요도 없었고.
언니는 괜히 요란스레 위스키잔을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실은 언니도 알고 있었다는 거다. 나는 괜히 언니를 쏘아보고는 벽면으로 가 볼록 튀어나온 나무기둥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이제 막 오픈을 해서인지 가게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유주야. 그런데 뭐가 문제야. 심지어 지영인 막내랑 잘만 살잖아.
언니까지 나한테 그러지 마.
막내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야? 둘째를 막내랑 같이 엮는 이유가 뭐야?
기댈 곳이 있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포기해. 언니는 그런 배신 안 당해봤지. 나는 매 순간 배신을 당하는 기분이었어. 그래서 매번 자유롭게 떠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어. 자꾸만 다시 돌아와야 했어. 걱정이 돼서. 의무가 아닌데 책임이 보이지 않는 줄처럼 묶여 있는 기분이었어.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는데 내가 나서지 않으면 도저히 끝나지가 않으니까. 그게 나를 바짝 마르게 해. 믿었던 사람들에게 사려 깊게 주저앉혀지는 그 기분을 언니가 알아? 나는 그걸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이제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거든. 내게는 이게 마지막 자리거든.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여기서 더 감당하고 싶지 않거든.
너는 참 젊은 애가 생각도 많다. 마지막 잔은 뭘로 줄까?
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메뉴가 그려진 찬장을 턱으로 가리켰다. 나는 피곤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마그리따를 주문했다.
근데 너 그거 알아? 마작이 재밌는 건 자기 차례로 순서가 넘어올 때마다 상황이 매번 달라진다는 거야. 우리 네 사람은 이미 그런 변수를 즐기고 있는 거 아니었어? 지금 네 차례로 돌아왔고, 우혁의 패는 바뀌었고 네가 가진 건 똑같아. 여기서 너는 어쨌든 패를 내야 하는 게 지금 우리가 모두가 지켜야 하는 마작의 룰이야. 어차피 두 개의 패를 버려야 하고, 기권하면 지겠지. 너는 지는 게 죽도록 싫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다 첫째고, 첫째들은 지고는 못 살잖아. 그런데 너 지영이랑 내가 첫째인 건 믿니?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심지어 너는 우리 패를 본 적도 없잖아.
언니, 나 지금 거기까지 생각할 기운이 없거든.
피차 마찬가지야. 마작은 무조건 네 명이 모여야 할 수 있다고. 지영이가 승질 많이 낸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연락이나 넣어줘. 우리 단톡방 지금 되게 삭막하니까.
혜수 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게 문이 스윽 하고 열렸다. 우혁이었다. 긴 남색 코트를 입은 우혁은 나를 보고 처음엔 움찔 놀랐으나 반 걸음 정도 뒷걸음질을 치다 말고 내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너 진짜 유치하게 이럴 거야?
됐어. 조용히 네 거 마시고 가.
나 오늘 차 가지고 왔어. 너 보러 온 거야.
우혁의 말에 나는 언니를 흘겨보았다. 언니는 여전히 구시렁거리며 지영이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와 함께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
운전하는 내내 우혁은 자꾸만 내쪽을 힐끗댔다. 역시 동생들의 특징이겠지. 남의 눈치를 보는 거. 나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가 지겨워 하품을 하다 우혁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밀었다.
야, 눈치 좀 그만 봐. 나는 이런 게 싫으니까.
우혁은 내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너 그 프레임인지 뭔지 이제 나도 지겹거든? 내가 만약 둘째가 아니었으면 어쩔 거야. 나 아직 너한테 증명한 거 아무것도 없어. 내가 그냥 네 맘 떠본 거라면?
그랬으면 좋겠다. 근데 지나고 보니까 네가 애쓴다고 느껴졌던 거 다 동생들이 하는 짓 같아. 그러니까 퍼즐이 맞춰지는 거지.
……서울로 올라오기 직전에 누나가 죽었어. 그런데 누나가 아니었더라도, 네가 좋아하는 그 장남 프레임이 우리 집엔 있었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다들 내게 기대를 했어. 그러니까 여기서 첫째인지 둘째인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자라온 환경이 그랬다는 거야. 네가 자라온 환경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네 맘대로 생각해. 나도 너한테까지 장남 프레임에 맞추고 싶지 않으니까.
우혁의 말이 끝났을 때 어느새 우리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우혁은 내게 차에서 내리라는 말도, 더 있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차의 앞쪽에 놓여 있는 마작 관련 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창밖으로는 굵은 눈송이가 끊임없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밤길에 가로등 불빛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시거리가 점점 좁혀져 오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눈앞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다. 참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