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규형 Apr 07. 2024

나 사랑법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4. 나 사랑법


나와 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독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보려 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사랑하는가? 나아가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가?"

이 질문은 참 간단한 질문이지만 그 어떤 질문보다 깊이 있는 질문이다. 답은 참 간단하게 나온다. 한다 또는 안 한다. 답을 해보았는가? 독자의 답이 궁금하지만 개인적인 것이니 묻지는 않기로 하겠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몇몇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정말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답을 끌어낸다면 쉽게 사랑한다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사랑한다고 해도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오늘 이야기해 볼 주제는 '나 사랑법'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남을 사랑하는 법은 사회와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워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는 것이 있다. 남은 사랑하는데 정작 나는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 생각만큼 허하고 비참한 생각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깨닫고 나를 사랑하려 해 보지만 길을 몰라 방황하기 일쑤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본인뿐 아니라 작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상황을 겪었고 겪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혼자 상심하지 말길. 


나 설명서

 나를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나 설명서'가 필요하다. 어떤 물건을 사든 설명서가 함께 오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설명서가 필요하다. 아, 물론 이 설명서는 누구도 갖고 있지 않고 독자에게 전해주지도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설명서라고 해두겠다. 


 그렇다면 이 설명서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질문을 해보겠다.

당신의 장점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단점은 무엇인가?

쉽게 답할 수 있다면 설명서를 만들기가 조금은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도 마찬가지로 마냥 쉬운 질문은 아니다. 묻는 것은 명확하지만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단점은 술술 나올 수 있지만 장점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반대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대부분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잘 알고 있고 어떨 땐 아무것도 모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질문이 주는 답은 우리는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혀버리곤 한다. 


 나 설명서를 만드는 방법은 본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걸 하고 싶으며 어떤 건 하기 싫은지, 그렇게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마치 소개팅에 나가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는 것처럼 본인에게 질문해 보는 것이다. 이 과정은 분명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또한 분명 필요한 작업이다. 그렇게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그렇게 하나의 나 설명서를 만들 수 있다. 어딘가에 적으면서 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보통의 생각으로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깊고 심오한 생각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 자신에겐 가혹하고 냉철하지만 타인에게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기에 타인을 보는 관점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대평가를 해서도 안될 것이다.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 객관적 평가가 어렵다면 지인에게 물어봐도 좋다.


세상 하나뿐인 친구, 나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친구이다. 그 누구도 될 수 없는 진정한 친구. 믿을 수 있고 믿어야 하며 믿음이 깨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자신은, 적어도 자신만은 스스로를 믿어줘야 한다. 


 타인을 믿지만 이 믿음은 언제고 변할 수 있다.(타인을 믿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배신당할 수 있고 버려질 수 있으며 그렇게 혼자가 될 수도 있다.(한 번 더 말하지만 타인을 믿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믿음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버릴 수 없다. 버리고 싶을 수 있지만 나는 내 안에 항상 함께한다. 우리가 언제나 꿈꾸는 영원한, 완벽한 믿음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믿음일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나를 사랑하는 법의 출발점이다.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것. 이것은 또한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사실 자존감, '자아존중감'이라는 단어 자체가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마음을 말하니 같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단계는 시작일 뿐이다. 


 어쩌면 이 단계에서부터 많이 방황할 수 있다. 관심을 가졌는데 안 좋은 모습만 보일 수도 있고 믿고 싶지만 쉽사리 믿을 용기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을 가볍게 가져가보면 좀 더 편안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마주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너무나 깊은 곳에 있는 내 단점들과 장점들을 무시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해두고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분명 좋은 사람일 거라 믿는다. 그러니 조금 더 당당히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를.


 자신의 선택들과 행동 하나하나를 응원해 준다고 생각해 보라. 스스로를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한다면 편하겠다. 가장 친한 친구인 자신을 응원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 일은 당연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응원해 주고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며 친해져 가면 된다. 물론 이 말은 이중자아가 되어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처럼 되라는 말이 아니라는 건 독자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음 깊은 곳에 웅크려있는 진짜 자신을 찾아 손을 잡아주라는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편에는 항상 자신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나 사랑법

 독자는 사랑을 해보았는가? 만약 해보았다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슬프며 기쁜지 알 것이다. 이 사랑을 이번엔 자신에게 적용해 보자. 나를 아껴주고 챙겨주고 보살피는 것이다. 


 사실 작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지 못하는 사랑을 타인에게서 받아내려 할 뿐이다. 이런 사랑은 결국 집착과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좋은 결말을 맺진 못할 것이다. 사람은 자연히 자신의 기준에서 세상을 바라봄으로 자신과 타인은 같다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상대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스스로를 당당히 믿을 수 있다면 타인의 믿음이 변할 걱정 없이 그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사랑하는 것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물론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매번 나를 향하던 채찍질을 잠시 멈추고 당근을 줘보기도 하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 보기도 해야 한다. 정말 괜찮은 건지 괜찮은 척하는 건지. 스스로에게는 거짓을 말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거짓을 말해도, 그 결과는 쌓인 거짓이 외부로 나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과소평가하던 평가지를 과감히 버리고 객관적인 기준을 대입해야 한다. 매번 자책하고 모든 일의 근원을 자신으로 돌렸다면 이제는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며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스스로를 긍정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점점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다. 독자도 알겠지만 사랑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설렘을 거쳐 만나게 되었다 해도 위기는 계속해서 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믿음으로, 사랑으로 이겨내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동일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훨씬 정교하고 세심한 작업이 필요하기에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다. 정말 안될 때는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보고 응원과 칭찬을 해주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칭찬하는 게 어색하고 부끄럽다면 타인이 해주는 칭찬과 응원을 이용해도 좋다. 작가가 적어둔 것들은 시작과 초반 단계에 불과하다. 남은 단계는 여러분의 몫이다. 스스로 새로운 사랑법을 찾아가고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 더 말하자면 스스로 자신을 만나서 믿음을 만들었다고 해서 완벽한 인간이라는 말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필히 고쳐야 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장점을 발전시키고 단점을 고치게 된다. 그렇게 더 좋은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 과정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가의 말

 작가는 스스로를 정말 미워했던 사람이라는 걸 미리 밝혀두겠다. 이제는 과거형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자책과 자기 의심, 자기 비하가 참 심했었다.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불면증과 우울증은 밤낮을 바꿔놨고 항상 공허하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채우려 노력했다. 어쩌면 그때는 스스로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고뇌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잠시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타인을 배려하며 눈치 보고 쭈그려 살던 어느 날, 문득 발걸음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따뜻한 무언가가 볼을 문질렀다. 눈물이 이유 없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사랑을 흉내 내고 있었다. 나를 통해 찾아야 사랑을 타인에게 시도하면서 이미 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도 같다. 


 연기라는 예술에서 표현매체는 자신이다.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가 있고 화가에게 붓과 캔버스가 있다면 배우에겐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있다. 그렇게 연기를 시작하고 나라는 악기를 갈고닦기 위해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내 안 깊은 곳에 움츠리고 있는 진정한 나를 발견했다. 그때부터였다.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를 믿고 나를 돌보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첫 단추를 잘 꽤고 이제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다음 단추와 그 구멍을 찾는 중에 있다.


 이제는 안다, 어릴 적 채워지지 않던 무언가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는 걸. 그것이 채워진 지금은 참 행복하다. 자존감이 높아졌고 단단한 심지를 갖게 되었다. 분명 나를 더 챙기며 내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전보다 타인을 잘 챙기고 있다. 타인에게 전에 했던 노력의 절반만으로도 전보다 두 배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이만큼 중요하다. 


 최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를 보게 되었는데 그 속에서 항상 부끄러워하며 살아가는 동주를 만나고 요즘은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예전엔 항상 부정과 안 좋은 것들만 가득했었는데 이제는 내 주변으로 긍정과 좋은 것들이 따라온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꼭 스스로를 사랑하길 바란다. 어려울 수 있지만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기에. 그리고 또 그렇게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많은 경험과 깨달음이 인생에 좋은 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길 기도하겠다.




이전 04화 벽을 만났을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