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힘> 히트곡의 조건, 끈끈한 노래가 성공한다
"우리 삶이 일정한 형태를 띠는 한 우리 삶은 습관의 덩어리일 뿐이다."
(윌리엄 제임스)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박진영은 90년대 말 가수 진주를 시작으로 지오디(god), 비, 원더걸스, 2PM, 트와이스 등을 히트시키며 K팝의 역사를 써 내려간 장본인이다. 심지어 일본 현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한 100% 일본인 걸그룹 니쥬(NiziU)를 단박에 일본 최고 인기그룹을 키워내기도 했다. 손대는 족족 대박 행진이다.
이런 박진영에게도 실패한 역사가 있다. 그중에서도 지난 2003년에 데뷔한 남성 듀오 '원투'의 경우 박진영 스스로 '가장 잘 될 줄 알았다'고 밝혔지만 그해 '최악의 앨범'으로 선정되며 흥행에 실패했다. 박진영이 앨범 전곡을 작사, 작곡했고 박진영 본인을 비롯해 당시 가장 잘 나가던 비와 지오디를 원투 뮤직비디오에 출연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과거 박진영이 토크쇼에 나와 한 얘기에 따르면 원투의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이트클럽에 가서 노는 이야기로 구성됐다. 앨범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만든 일종의 '콘셉트' 앨범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이트에서 이뤄지는 얘기에 공감하는 대중은 거의 없었고, 결과적으로 자기만족에 그친 원투의 앨범은 JYP의 '흑역사'로 남았다.
이처럼 제아무리 히트곡을 많이 낸 프로듀서라 하더라도 다음 곡 역시 히트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떤 노래가 성공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여전히 대중음악 산업 종사자들을 괴롭히는 숙제다. 대중음악 산업에서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미 인기가 검증된 노래를 다시 사용하는 것만큼 안전한(?) 선택은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다만 과거 운의 영역에만 맡겨졌던 히트곡 제조에도 점차 과학적인 방법론이 적용되고 있다. 머신러닝 등을 통해 기존에 히트한 수많은 노래의 박자와 멜로디, 화음 등을 분석한 뒤 이를 신곡과 비교해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는 식이다. 실제로 스페인 회사에서 개발한 '히트송 사이언스'란 프로그램은 대다수 음반회사들이 부정적이었던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 같은 곡의 히트 가능성을 예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음악산업에서 확실한 선택이란 없다. 소위 업계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그린라이트'를 외치고 최신 기술을 통해 더블 체크를 거치더라도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 찰스 두히그(Charles Dougigg)가 쓴 <습관의 힘>은 '습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면 습관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우리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클루지'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습관은 "우리 모두가 어떤 시점에는 의식적으로 결정하지만, 얼마 후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거의 매일 반복하는 선택"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러한 습관을 단순히 개인 차원이 아닌 회사와 사회 차원에서도 함께 들여다본다.
특히 성공한 기업은 습관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해 고찰한 2번째 장에서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노래를 히트곡으로 만드는 과정을 실제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여기서 톰 행크스가 감독과 영화 속 신생 아이돌 록밴드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던 영화 <댓씽유두(That thing you do)>의 동명 주제곡을 연상시키는 <Hey ya!>가 등장한다.
히트송 사이언스와 음반 경영자들이 ‘헤이 야!’가 히트할 거라고 장담했는데도 라디오에서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서 설명된다. 달리 말하면 ‘헤이 야!’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헤이 야!’가 청취자의 귀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라디오 청취자들은 신곡이 나올 때마다 그 노래의 호불호를 의식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뇌는 습관을 따르고 싶어한다.
<습관의 힘> 284P
미국의 힙합 듀오 아웃캐스트(Outkast)가 지난 2003년에 발표한 <헤이 야!(Hey ya!)>는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9주 동안이나 머문 대형 히트곡이다. 신나는 리듬과 시작부터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를 들어보면 이 노래가 히트할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빌보드 차트 정상까지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박진영이 원투의 성공을 확신했듯 <헤이 야!> 역시 음반회사는 물론 선곡권을 가진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이 곡이 히트하는 것은 자명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가기 시작하자 청취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 노래만 나오면 청취자들이 라디오 채널을 돌려버린 것이다.
집에서 리모컨을 돌려가며 TV를 볼 때 주로 머무는 채널은 처음 보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것들이다. 특정 프로그램을 찾아 본방 사수하는 것이 아니라면 보통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익숙한' 프로그램 주변에서 시간을 때우곤 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도 마찬가지다. 특정 음악을 찾아 듣는 것과 달리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을 땐 익숙한 노래를 선호하곤 한다. 실제로 '타이타닉' 주제곡을 부른 셀린 디온(Celine Dion) 같은 경우엔 남성 청취자들이 '싫어하는' 가수로 꼽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사람들도 막상 라디오에서 익숙'한 셀린 디온의 노래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려는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귀에 익은 노래가 라디오에서 청취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소위 '끈끈한' 노래다. 스타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히트곡을 낼 수 있는 것은 음악가 자체가 대중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대중은 이들의 새로운 곡을 접하더라도 익숙하게 느낀다.
우리가 이런 끈끈한 노래를 선호하는 이유는 뇌의 진화와도 연관이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안정적으로 해나가기 위해선 어떤 소리는 무시하고 가족이나 친구의 목소리처럼 익숙한 목소리엔 우선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다. 만약 모든 소리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면 우리 뇌는 모든 외부의 소리에 신경을 너무 쓴 나머지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우리가 라디오에서 익숙한 노래를 선호하는 것은 습관적으로 "중요한 소리와 무시해도 괜찮은 소리를 무의식적으로 구분"(283P)하기 때문이다. <헤이 야!>가 처음에 청취자들로부터 외면받았던 건 라디오에서 평소 틀어주던 노래와 스타일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뇌가 습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노래를 걸러내려 한 것이다.
애초 예상과 달리 <헤이 야!>가 라디오에서 고전하자 음반사에선 이 노래를 청취자에게 익숙하게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청취자들에게 익숙한 기존 히트곡들 사이에 이 노래를 끼워 넣어 방송하게 한 것이다. 일명 '샌드위치' 기법이다. 이러한 전략이 먹혀들었다. 그 결과 <헤이 야!>는 아웃캐스트 역대 최고 히트곡으로 남게 됐다. 여기에서의 교훈은 "새것에 익숙한 습관을 덧입히면, 대중이 새것을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293P)이다.
"습관이 형성되는 이유는 우리 뇌가 활동을 절약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기 때문"(39P)이다. 우리 뇌 입장에선 한번 습관이 형성되면 더 이상 어떤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을 주지 않아도 된다. 뇌가 휴식을 취할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뇌가 활동을 줄이면 굳이 뇌(머리)가 더 커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출산의 위험도 줄어든다. 진화와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습관은 인류의 생존에 굉장히 유용한 수단이다.
김장훈 노래 <나와 같다면>의 한 구절처럼 "늘 우리가 듣던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면" 우리의 뇌는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