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샐러드 달리기는 버려도 못 버리는 한 가지
15.
물건이 많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역류성 식도염에 밥으로는 샐러드 먹는 걸 좋아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두 시간씩 달린다. 모두 내가 좋아서 매주 혹은 매일 반복하는 나의 일상이다. 그러다 사람들과 섞이면 이것들은 바뀐다. 나는 새삼 알았다. 세상에는 걷기보다 벤치에 앉아 있길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과 내 몸이 땀이 잘 안나는 타입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사람따라 일상이란 게 손쉽게 바뀐다는 것도 말이다.
타인과 있다 보면 이것저것 알게 되는 것도 하는 것도 는다. 먹는 것만 해도 그렇다. 종류부터 양과 속도까지 바뀐다. 그렇게 사람과 얽히는 시간에서 얼마간의 피로가 쌓인다. 금요일 저녁 집으로 들어오는 현관 비밀번호의 삐빅삐빅하는 소리가 내 몸의 배터리 방전 알림 같다. 방안을 깊은 동굴처럼 들어간다. 형광등도 켜지 않고, 잘 만든 밀랍인형처럼 침대에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눕는다. 아랫배가 볼록이다 꺼지고 다시 볼록이다 꺼지고 장을 눌러보면 아직 배설되지 못한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진다. 숨을 다시 깊게 들이쉬고 내뱉는다. 들릴 듯 말 듯한 볼륨으로 가사 없는 재즈나 피아노 음악을 듣는다. 그렇게 최소한의 소리와 움직임만 있는 고요를 택한다.
편히 누웠다 벌떡 일어나는 순간도 있다. 일어나서 하는 거라곤 책상 앞으로 가 글을 쓰는 거였다. 이대로 생을 마감할까 불안할 때 뭔가를 한다. 요즘은 글쓰기일 뿐이다. 무얼 하든 이내 찾아오는 압박감에 몸에 과부하가 걸린다. 귀가 아프거나 잠을 못 자는 식이다. 압박감을 줄여보겠다고 혼자만 보는 글로 남겨두는 전략이 유효하지 않다. 동굴 생활 36시간째, 다시 살펴본다. 핸드폰이며 TV, 오락은 애초에 없고, 곡기마저 끊고 누워있던 나를 일으킨 유일한 자극을 본다. 그건 자기애가 충만한 삶에 대한 애정이었다. 잘 쉬고, 잘 회복하자는 생각과 한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글쓰기. 내가 하고 싶은 전부를 했다.
기면증도, 주체 안되는 폭식과 단식도, 말소리 하나 내지 않는 것도 순간 내가 가장 바라는 걸 했다는 사실에서는 같았다. 언젠가 요가 선생님의 말처럼, 선호는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생각이 여기까지 오면, 내가 좋다고 생각해 온 것들이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큰 물음표가 뜬다. 그리고 결국에는 원하는 걸 하고 있다는 작은 느낌표도 찍힌다. 불면과 식탐으로 보낸 한 주 끝에 다시 달리기를 했다. 일상의 재탈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