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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01. 2020

별똥별

벅찬 마음

여느때든 상관없이 

그대의 조각이 별똥별처럼 

내 마음을 스칠 때면,


빛이 지나간 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반짝임만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몇 년 전, 그룹이 힘든 때가 있었다. 그룹의 미래가 정말 불투명한 시기였는데, 그들이 다져놓은 바른 이미지 덕분인지, 여기저기서 그들을 섭외해 예능에서는 꽤 얼굴을 비추었다. 그러다 내가 보던 한 예능에 내 가수 A가 나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가 매우 안타까워졌다. 내 청소년기에 한창 잘나가던 그룹이었고, 늘 유쾌한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던터라 솔직한 그의 마음에 오히려 놀라웠다.

그때의 나는 감정적으로,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로웠던 걸까. 불행한 시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동정 반, 응원 반의 마음으로 그의 팬클럽에 가입했다. ‘2만원 정도야 뭐 없어도 상관없으니까’ 하고 말이다. (후에 이 선택은 그 해 가장 잘한 일 베스트에 꼽힌다.) 그렇게 나의 가벼운 2만원짜리 감정은 무슨 비트코인 떡상이나 한듯 잔뜩 커져버렸고, 어느새 이렇게 깊은 덕질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했던 나의 첫 덕질은 정말 덕통사고 당하듯이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TV 앞에서 공부를 하겠답시고 문제집을 펼쳐놓은 채 앉아 손에 샤프를 들고 음악 방송 속 그들의 춤을 따라 추고 있었다. 손을 막 휘두르다 다리에 콕하고 까맣게 찍혀버린 샤프심 자국처럼 내 마음에 콕 박혀버렸더랬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 번 보니 다시 보게 되고, 두 번 보니 세 번 보게 되고 어느샌가 깊숙히 스며들어왔다. 분명 별 감정이 없었는데 본방송을 챙겨보게 되고, 과거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난 이들에게서 벗어나긴 틀린 것 같다. 은은하게 스며든 중독이 더 힘들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버렸다.


요즘은 아무래도 자체 컨텐츠를 많이 제작하는 시대이다 보니 내 가수 역시 자체적으로 많은 컨텐츠를 만든다. 내 가수 A는 자체 컨텐츠 준비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다. 아무래도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데에는 조금 부담이 있는지 미리부터 몇시간씩 준비를 하고, 지루하지 않게 컨텐츠를 만들어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을 가졌다. D 역시 이전에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언제 이렇게 자기 얘기를 여러분들과 많이 해보겠냐고. 이 시간이 너무 즐겁다'라고 했듯이, A 역시 바쁜 와중의 삶의 낙이라고까지 언급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시간에 대한 기쁨을 말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할애하는 것 중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SNS 라이브 방송으로 여유롭게 시덥잖은 얘기를 하기도 하고, 댓글로 귀여운 인사를 하기도 하고,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 컨텐츠를 만들어 준비해 오는 것. 모두 시간을 할애하여 하는 일이다. 돈은 시간보다 쓰기가 쉽다. 액수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성의를 대신하기도 하고, 유감을 대신하기도 하고, 무엇이든 쉽게 대신하는 게 돈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은 마음이 스며야 들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귀하다. 그래서 시간을 들인 만큼 마음이 더 깊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마음을 알기에 피곤한 와중에도 라이브를 켜 편하게 미소짓는 모습에 고맙다. 아, 물론 내가 그에게 들이는 이 시간들도 분명 그에게 마음으로 와닿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를 안아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가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안아주다’라는 말은 있지만 ‘안아받다’라는 말이 없듯이(물론 안기다 라는 말이 있지만), 그냥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고 있었다.

내가 시간을 들여 그들의 무대를 보고, 콘서트를 가고, 노래를 듣고. 어쩌면 내가 그만두면 그만인 일방적인 이 관계가 그쪽에서도 시간을 들여 음악을 만들고, 영상을 만들고, 위로를 건네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기뻐해 줄까, 하고 애쓰는 관계였다.

가끔은 그가 자신이 안아주고 있다는 건 모르고, 팬들이 자신을 안아주기만 한다고 생각한다. 빚이라도 진 듯이. 그리고 왜 본인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가도 그래, 그의 말대로 그도 그냥 사람일 뿐이다. 때때로 나처럼 살기가 버겁겠지. 그가 연예계라는 폭풍 속에서 꿋꿋하게 버텨온 건 그가 말하는 ‘모든 이유는 너’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 접고 싶다가도 자신을 안아주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던 순간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짝이는 달콤함이 너무 예뻐서 유리병 속에 알알이 담아 둔 별사탕 같은 우리의 순간들이, 인생이 쓰다고 느껴질 어느 시점에 꼭 필요한 달콤함이 되어줄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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