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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20. 2020

이름 모를 별에게

믿는 마음

우리는 불안한 이 밤을 걷고 있어요.

당신이 내게

북극성 같은 길의 좌표가 되어 주기를

바라진 않아요.


우리, 그저 이름 모를 별이지만

한눈에 들어온 아무 별에

서로의 이름을 새겨 넣기로 해요.


어떤 어두운 밤이 와도

제일 첫 번째로 보이는 별이

언제나 당신일 수 있도록.


나는 종교가 없다. 그렇다고 신들의 존재를 절대 믿지 않는 것은 아니고, 종교는 필요에 따라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면, 비극적인 현실보다는 말도 안 되는 환상을 믿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인간은 너무나도 유약하다. 몇 마디의 말에 기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돌연 절망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를 굳게 믿는 사람을 자존감이 강한 사람, 단단한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신을 굳게 믿는 사람은 많이 없다. 오히려 남의 믿음에 의지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란 게 참 우스운 것이어서, 어느 쪽이든 과하게 믿으면 안 된다. 그럼 정말 우스운 사람이 되어버릴 거다.

나는 종종 직업에서의 슬럼프가 온다. 자주 올 때도 있고,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런 순간에서는 나를 믿지 못한다. 다른 곳으로의 회피가 필요한 때이다. 그러면 나는 내 가수를 믿는다. 자신을 믿고 열심히 나아가는, 여러분을 응원한다고 토닥여주는 내 가수. 물론 그가 그저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그는 종교와 어쩐지 닮아있다. 멀지만 가깝고, 특정적인 듯 하지만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는.


어느 가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게 직업이고 여러분에게는 취미니까, 쉬고 싶을 때 저를 찾아와 주세요.'

서로에게 묵묵한 응원이 되어주는 딱 그 정도의 사이. 어떤 것이든 과몰입은 좋지 않다.

어쩌면 그에게도 우리의 존재가 종교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고 기쁜 일이 있을 때나, 힘듦을 벗어났을 때 ‘여러분 덕분에, 내 가수 덕분에.’라고 말하곤 하니까.


어느 팬덤의 한 팬의 탈덕문이 트위터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 그 팬은 거의 일상을 가수에게 갈아넣은 팬이었는데, 그는 이런 뉘앙스의 말을 남겼다.

‘그의 행복이, 그의 성공이 곧 나의 행복이라 여기고 덕질을 했다. 그러고나니 어느새 내가 사라져있었다. 눈부신 그와 내가 대조가 되었고, 나는 점점 망가졌다. 나는 여전히 그를 응원하지만, 이제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의 행복을 염원하고 싶다. 이제는 나를 더 응원해야 할 때인 것 같다.’

팬들 중에서는 와 저렇게까지 서포트를 한단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 많다. 덕질은 취미이다. 그 말은 곧 일은 따로 하고, 잉여시간에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취미가 업이 될 수 있는 확률은 아주 작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흠뻑 빠지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곤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경험상 몸이 힘들면 현타를 제일 세게 맞는다. 나 역시 회사를 다니며 덕질을 하고, 새벽 공방을 갔다가 집에 들러 1시간을 잔 후에 출근해서 현타를 직격타로 맞은 적도 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진다. 어느 것이나 과몰입은 힘들다. 지속적이고 건강한 취미생활이 힘들어질 수 있다.


덕질만으로, 혹은 어떤 일 하나만으로 삶이 충분히 풍요롭고 충족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내 인생의 경우엔 아니다. 슬럼프에도 자주 빠지고, 덕질 인생에서도 현타가 오는 순간을 드물게 맞이하곤 한다. 또 그냥 별일없이 지치고 기분이 안좋을 때도 많다. 그렇기에 더욱이 밸런스가 필요하다. 어쩌다 후회하는 순간들이 올 때, 내 가수의 탓을 하고 싶지 않다. 나의 과몰입을 탓하고 싶지 않기에, 나는 내 삶을 일구는 데에 더 열심히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인생에도 너무 과몰입해서는 안된다. 매 번 새롭게 갱신되는 내 가수의 아름다운 순간을 놓쳐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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