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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24. 2020

다른 우주

같은 마음

우리는 서로 다른 우주를 가지고 있고,
서로의 우주에 행복과 평안을 바라요.



나는 요즘 새로운 덕질을 시작했다. 문구 브랜드 a의 디자이너 K님이다. 그가 자신의 일에 갖는 애정이 너무나도 반짝거려서, 나는 그의 팬이 되기로 했다. 그의 문구를 구매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제 일인양 기뻐했다. 그의 섬세한 메시지, 포장에 큰 감동을 받으며 여기저기에 그 브랜드의 멋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빈 시간을 들여 그 브랜드를 더 알아보고, 곧 그가 쓴 책을 읽으며 그의 멋짐에 다시금 감탄했다.

어쩌면 이건 같은 업계로서의 연대일 수 있다. 주변에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내 일인 듯이 안타깝고 아쉽다. 왜 계속 그림을 그리지 않느냐고 부추겨세우고 싶어진다. 오지랖일진 모르지만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속 그림 그리는 일을 했으면 한다.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그러기 위해선 그 일로 얻는 수익이 필요하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창작이 지속되려면 반드시 소비가 필요하다. 그래. 행복은 돈으로 사는거다.


같은 맥락에서 가수의 경우도 그렇다. 나는 온건 스트리밍파이다. 남에게 ‘왜 스트리밍 안해!!’ 라고 닦달하진 않지만 음원이 풀리면 고삐풀린 노동을 하는 팬이다. 물론 24시간 스트리밍은 기본이다.

내가 이렇게 지속적인 스트리밍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 그의 지속적인 창작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내 가수의 경우엔 연차도 제법 있고, 이제 시상식에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는 가수이기에 스트리밍이나 투표에 소홀한 팬덤이 되어버린 건 당연할 수 있다. 그가 말했듯, 천천히 내려오는 중이니까.

언제나 내 가수가 최고였으면 하는 마음으론 속상할 수 있지만, 나는 그가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가수이기를 바란다. 대중성이나 수익에 연연하기 보다 그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룹활동을 하던 내 가수는 종종 솔로앨범을 내는데, 내가 한 가수를 덕질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솔로로 활동하는 멤버들의 개성이 확연함을 느낄 때면 벅찬 행복감을 느낀다. 아 이래야 내 가수지. 덕질할 맛이 난다.


내 가수 D의 솔로 앨범 수록곡 중에는 소중한 존재에 대한 애틋함과 왜인지 모를 안타까움이 담긴 노래가 있다. 이 곡은 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곡이어서, ‘이 시를 이렇게 해석하다니!’ 하고 깜짝 놀랐던 곡이기도 하다.

나는 D가 보여주는 이전 음악의 색깔을 통해, 이 곡이 어린 자신에게 하는 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 심리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께서 했던 말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어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눈을 감고, 손바닥을 가지런히 펴 그 안에 어린 시절의 나를 데려온다. 그리고 어린 자신을 보듬고 이해해주고 치유해주어야 한다.’

어린 시절엔 출처를 알 수 없는 트라우마들이 쌓여있다. 이것들은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이것이 내 부정적인 측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미 지나버렸다고 외면하는 게 아닌 대화를 해야한다고.

D의 이 곡을 들으면 나는 항상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렇다해도 스스로 이겨낼 힘이 있기를. 한없이 보듬어주고 싶고, 스스로에게 애틋해지는 노래다.


오늘은 B의 노래를 들으며 왜인지 조금 글썽였다. 갑작스레 와닿은 가삿말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어느 사람이든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았던 내 가수였기에, 멤버들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담긴 곡이 아침부터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연민인지 동질감인지 모를 어떤 감정에 마음을 토닥였다.


이렇듯, 그의 음악에 감동하는 것 역시 연대일 수 있다. 생각이나 고민의 표현 매체가 다른 것일 뿐 같은 창작을 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가 부르는 노래의 흐름이 좋다. 한 곡의 주제나 가치관이 다음 앨범의 어떤 곡에서 발현될 때의 쾌감이 제일이다. 한 앨범 안에서의 완성도를 감상하는 것도 정말 좋지만, 계속해서 그의 고민과 철학이 음악으로 표현될 때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하고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하고싶은 일로 성공한 사람이고, 나는 하고싶은 일을 계속해서 지켜내고 싶은 사람이다. 내가 언젠가 성공한다면 그처럼 하고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물론 그 때에도 그는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도 그의 창작을 응원할 것이다. 그가 단 한사람이라도 자신의 음악을 들어준다면 계속 노래하겠다고 했으니, 나는 그 길을 묵묵히 응원하는 리스너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서 오는 잔뜩 눈부신 창작들을 내 안에서 다른 우주로 꺼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역시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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