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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Sep 05. 2024

파국

영화 엎어졌습니다. 젠장...

시나리오 회의 끝.

SNS에는 다들 좋고, 잘된 이야기들만 올라오던데 나는 실패한 이야기를 올리게 됐다.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인사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3년 끌은 프로젝트, 서로가 최선을 다했던 것이 맞다. 그 세월 동안 나에게는 3화의 미완성 드라마 원고와 장편 영화 시나리오 하나가 남았다.

대표님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하셨다. 글쎄… 아무도 가해한 자는 없다. 그 순간 사무실에 '헤이 주드~'가 울려 퍼졌다. 지금 이 순간에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 실패에 슬퍼하기보다는 다음 작품 스토리가 떠올라서 막 쓰고 싶어 진다. 다행이다. 이게 나의 최고의 장점이기도 하고. 나는 나의 이런 어마어마한 회복탄력성을 사랑한다. 마음이 힘든데, 다음 할 일이 떠오른다. 그래서 힘을 다시 얻고... 그래도 하루 정도는 조금 침잠해 있는 게 내 인생과, 3년 간의 프로젝트에 대한 예의겠지.

어제는 회의 끝나고 잠들기 전까지 계속 이 기타곡을 들었다. 당연히 펑펑 울었다. ㅎㅎㅎ


https://youtu.be/6XQfL0gu1XU?si=Na6p2K6uu4qRx_9u

다들 한 번씩, 그냥 지나가지 말고 한번 들어보시길. 슬픈 일, 안 좋은 일 없는 사람도 들으면 그냥 마음 아련해져서 눈물 나는 연주들인데, 와, 내가 어제 이걸 듣는다는 건, 울고 싶은 아이 돌뺨따귀 날리는 일이었다.


이제는 앞으로 에세이 계약한 것, <오십에 시작하는 차박>과 <아저씨 도감>에 박차를 가하고, 이와 관련해서 떠오른 새로운 소재 시나리오로 써서 준비하려고 한다. 내가 나중에 그래도 앞날 챙기고 잘 돼서, 아이유를 놓친 박진영까지는 안 만들더라도 그냥 흐뭇하게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서면 좋겠다. 안녕히...



어제 영화 작업이 무산되면서, 또 한 명에게 몹시 미안스럽게 되었다. 그는 바로 3년 동안 드라마를 거쳐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기다려주셨던 우리 출판사 대표님.

처음에는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라는 가제로 좌충우돌 드라마 집필기를 책으로 내자고 제안이 들어와서 오케이! 를 외치고 시작한 것이 벌써 세 해가 넘어갔다.

아까는 전화를 해서 이거 원고 넘겨도 책으로 만들 수 있겠는지, 걱정스러워서 조심스레 물어봤다. 나도 글을 써서 돈을 벌지만, 출판사도 돈이 되는 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근사하게 '2025년 개봉! 커밍 쑨!' 아니면 '2025년 방영 예정!' 이런 타이틀을 띠지에 넣자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작업인데,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 참...

결론은 "원고 주세요."


이렇게 하반기, 혹은 내년 상반기에 국내 최초의 '실패기'가 나올 예정이다. (내가 크리스마스를 일 년 중 제일 좋아하니, 그때 내자고 제안했다. 크리스마스의 극악무도한 선물처럼... ) 다들 혈안이 되어 성공기를 낼 때, 우리는 '실패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보통 성공기의 맨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지금까지 졸저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부디 잊지 말 것은 내 다음번 주자는 바로 당신이라는 것이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여러분, 여러분의 앞날을 응원한다!'


그러나, 어쩌다 내 책은 이렇게 초라하게 끝날 것 같다.


'단언컨대, 나는 지금 당신들을 응원할 힘 한 톨도 없다. 그냥 나도 여러분과 똑같이 공모전 내고 똑 떨어지고, 기획안 깨지고, 대본 깨지고, 능력 없단 소리 들으면서 소주 먹고 처울고 그런 사람이다. 이번에는 이 책을 읽은 당신이 나를 응원해 주기 바란다. - 글쓴이 황섬'


아예 책 표지를 광활한 배추밭 사진 거는 것이 어떻냐고... 배추 포기도 위로 자라는데, 나는 침몰했다. 포기할 힘도 없다... 스타? 에라이~

책날개에 촌스럽게 저자 사진을 넣자고 했다. 조금은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고, 한 손에는 커다란 실패, 한 손에는 이불 꿰매는 대바늘 들고 있겠다고 했더니, 대표님 뒤집어지신다.


우리 착하고 좋으신 출판사 대표님은 너무 웃기다고 깔깔대시면서 국내 최초의 '실패기'를 만들어보자고 하시는데... 그냥 인생 이렇게 B급으로 가는 거다. 원고야, 너무너무 잘 써서, 이게 실패기야? 할 정도로 갸우뚱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목표다. 지금 내가 침몰하고 있는, 또 언젠가 표류하다 수면 위로 떠오를지도 모를 이 영화, 드라마라는 바다의 현실도 철저하게 조사해서 마지막 꼭지로 넣을 예정이다.


이번에는 당신이 나를 응원해 줄 차례가 왔다. 많은 응원 부탁 드린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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