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사 온 피자를 데워먹었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바질 페스토 향이 풍부하고 신선한 모짜렐라 치즈가 주욱 늘어졌다. 특히 썬드라이 토마토(말린 토마토를 오일과 향신료에 재워놓은 것) 풍미가 좋았다. 식구 많은 우리 집에서 금방 사라져 버린 피자가 금세 그리워졌다.
'가만. 피자빵으로 만들어 먹으면 되겠네. 재료 사서 잔뜩 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은데?'
아침에 입맛이 없는 아이들에게도 피자는 반가운 메뉴다. 시간을 보니 아직 밤 9시밖에 되지 않았다. 얼른 휴대폰을 열고 새벽배송 해주는 쇼핑몰 어플을 켰다. 호밀 식빵, 바질 페스토, 가장 중요한 썬드라이 토마토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빵모닝이라니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호밀 빵이라면 죄책감이 덜한 데다 향긋하고 몸에 좋은 바질 페스토와 토마토 조합은 정말 환상일 거다.밀려오는 행복감에 빵순이 얼굴에 웃음꽃이피었다.
일어나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찬 겨울 공기에 이불 밖이 위험해진지가 언젠데 이렇게 몸이 가벼울 수가?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에 나가 상자를 챙겨 들어왔다. 그런데, 어라? 선드라이 토마토가 없다. 대신 주문하지도 않은 땅콩버터 스프레드가 들어있었다. 땅콩버터가 웬 말이냐 실망감이 말도 못 했다. 아이들도 아침으로 피자 못 먹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얼른 냉장고에 있던 먹거리로 애들 입을 막았다. (정말 이런 순발력 어디 가서 쉽게 못 본다.) 아이들을 살살 다독여 학교 보내자마자 어플을 켜고 고객센터에 잘못 배송된 땅콩버터 사진을 찍어 올렸다. 간결하지만 예의 바르게 원래 주문했던 상품을 '빨리' 보내달라고 메시지를 썼다. 거대자본의 힘, 그들의 유통망이라면 잘하면 오늘 저녁 토마토를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루가 다 지나도록 상담원의 전화도 없고 댓글 답변도 없다. 이전에 똑같은 상황이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대응이었다. 하루를 더 기다렸다가 다음 날 불편 접수에 글을 한 번 더 올렸다. 이제는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나의 행복한 아침을 망치고 이틀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대응도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싱크대 한 켠에 가만히 앉아있는 땅콩버터를 괜히 한 번 째려봤다.
땅콩버터는 죄가 없다.
밤이 늦도록 답변은 없었다. 나는 정말로 화가 났다. 진실로 평화주의자지만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고객센터에 전화에서 큰 목소리를 내리라 다짐 또 다짐을 하고 잠이 들었다.
다짐이 무색하게 평온한 아침이 밝았다.
밤새 청순해진 뇌로 아이들 등교시키고 집안 일을 다 하도록 오배송 건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려고 현관을 열었더니 택배 상자가 놓여있었다. 토마토였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어플을 열어 보았다. 죄송하다는 길고 긴 메시지와 함께 마지막 내용은 번거로우시겠지만 오배송된 상품을 폐기 부탁드린다는 것이었다.
'폐기?' 내가 토마토에 열을 올리느라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실 나땅콩버터 엄청 좋아한다. 내입에 얼마든지 폐기할 수 있다. 성은이 망극하여 공손하게 땅콩버터 뚜껑을 열었다. 뚜껑 따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졌다.토마토로 피자도 만들어 먹고 사과에 땅콩버터 듬뿍 올려실컷먹었다. 그제야 배송비와 오배송된 상품 값까지 쇼핑몰 업체의 손해가 떠올랐다.피자를 못 먹어 서운했던 마음은 날아가버린 지 오래고 오히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