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열렬한 구독자가 둘이나 있다. 초고 노트를 굳이 찾아 읽고 브런치 발행한 글도 꼼꼼히 읽어주는 딸들이다. 글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후한 편이다. 내가 웃으라고 쓴 포인트에서 정확히 웃어주는데 아마도 10여 년간 합을 맞춰온 결과인 것 같다. 지난한 글쓰기에 구독자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독자님들께 수시로 냉정한 평가를 해달라고 조르기는 하지만 사실 평가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독자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
가끔은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왜 자기 얘기만 소재로 쓰냐던가. 내가 진짜로 이렇게 했냐고 의심하는 발언이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고 꽤 정직한 편이라 글의 내용은 대체로 맞다. 아이들도 내 설명을 듣고 나면 거의 수긍한다. 열혈 독자들은 그리고 내 글쓰기에 매우 협조적이다. 소재가 없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나를 보며 첫째가
"엄마. 가글액이라도 책가방에 쏟을까요?"하고 묻기도 했다. (정상가족에서 사고 담당하시는 분)
아이들이 나의 모든 글을 좋아해 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싫어하는 주제는 나의 우울증과 불면증에 관한 글이다. 나는 평소에는 명랑하지만 쉽게 우울해지는 사람이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나는 내가 우울기질을 타고났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 표현에 따르면 갑자기 말 수가 줄고 표정이 아주 못쓰게 됐다고 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어느 곳에도 마음 둘 데를 찾지 못했다. 대입이라는 과제가 오히려 나를 멀리 가지 못하게 붙잡아주었던 것 같다. 입시 기간을 잘 버텼고 대학 입학 후에는 꽤나 즐거웠다. 새로운 환경,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유흥을 즐기다 보니 우울감을 느낄 새가 없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취업, 결혼, 출산 등 인생의 변곡점을 만날 때마다 나빠졌다 좋아졌다를 반복했다. 결정적으로 무너졌던 게 코로나 때였다. 산후 우울증, 육아우울증도 버텨냈는데 코로나 때는 속수무책이었다. 불안으로 시작된 불면증, 과호흡과 공황발작,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고 약을 먹었다. 무기력은 나를 갉아먹었고 나는 안으로 안으로 침잠했다.
스스로를 건져 올리기 위해 글을 썼다. 오로지 책과 글이 나를 침대 밖으로 끌어내주었다. 책상에 앉으면 아픔과 슬픔의 감정이 뿜어져 나왔다. 무슨 글을 써도 눈물이 흘렀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 남편에게 받은 상처,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못했던 시간들이 종이에 글자로 내려앉았다. 글자 들을 손가락 끝으로 눌러 읽다 보면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쓰고 읽고 다시 쓰면서 이년 넘게 지속된 나의 글쓰기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해묵은 감정과 생각들을 배설하고 나니 잘 웃고 잘 먹는 날이 많아졌다. 거짓말처럼 밝은 글들이 써졌다. 글 속의 나는 명랑했고 긍정적이었다. 잘 버텨낸 나 자신이 매우 기특했다.
요즘도 나는 가끔 힘든 날을 보낸다. 호흡이 불안해지고 편히 잠들지 못하는 날이 꽤 있다. 그런 다음 날은 열심히 운동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다시 힘을 내기 위해서다. 글쓰기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으니까.
그렇게 쓴 글들을 보고 아이들은 말한다.
"엄마. 이 글은 노잼이에요."
"맞아요. 저도 그런 글은 제목만 보고 건너뛰어요."
열혈 독자 납셨다. 취향이 확고하시고 평가가 매섭다.